봄은 언제나 달력보다 시장 어귀에 먼저 도착해 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향긋하고 달달한 딸기 향이 훅 끼쳐온다. 납작한 소쿠리에 수북하게 쌓인 딸기들이 쏟아지는 봄 햇살 아래 붉게 반짝인다. 그 곁엔 언 땅의 흙 내음을 아직 머금은 냉이와 달래, 쑥이 수줍게 몸을 맞대고 있었다. 겨우내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속에 웅크리고 숨죽여 있던 생명들이 별안간 터져 나온 것처럼, 잿빛이던 시장 골목이 순식간에 연둣빛 설렘으로 물들었다.
그 소란스럽고 환한 봄의 한가운데에서 봄동을 만났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그 이름처럼, 넓적한 잎이 바닥을 향해 넉넉하게 퍼진 채 소담스럽게 쌓여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맨몸으로 이겨내느라 겉잎은 짙고 투박해졌지만, 그 거친 잎을 가만히 들춰보면 겹겹이 품어온 샛노란 봄빛이 층층이 숨어있다. 거친 시절을 견뎌낸 것들만이 품을 수 있는 비할 데 없는 달큼함. 이맘때면 으레 홀린 듯 손이 가는 이유다. 올해도 어김없이 속이 알차게 여문 봄동 한 소쿠리를 까만 비닐봉지에 꽉꽉 눌러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툭툭, 시든 겉잎을 떼어내고 흐르는 찬물에 서너 번 흔들어 씻어 낸다. 맑은 물속에서 파릇하게 살아난 잎사귀들을 말갛게 씻어 올려 채반에 밭쳐 물기를 탁탁 털어낸다. 먹기 좋게 숭덩숭덩 잘라 큰 볼에 담고, 고춧가루 한 숟갈과 멸치젓, 향긋한 파, 고소한 참기름, 그리고 통깨를 듬뿍 뿌린다. 잎이 상하지 않게 손끝으로 어르고 달래듯 버무리면, 매콤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달큼한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고 주방 가득 짙은 봄 냄새가 피어오른다. 때마침 밥솥에서는 구수한 김이 뿜어져 나온다. 갓 지어 윤기가 흐르는 하얀 밥 위에 붉고 푸른 봄동을 듬뿍 얹고, 참기름을 한 바퀴 빙 두른다. 숟가락을 들어 쓱쓱 비벼내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봄이 내 숟가락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크게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무언가 달라졌음을 혀끝이 먼저 알아챘다. 분명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봄동은 여전히 아삭했고, 양념도 훌륭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무언가 하나가 빠진 아쉬운 맛이었다. 맛있었지만 어딘가 비어버린 낯선 맛.
사실 마늘이 빠져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이 더 이상 마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편이 맞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이후로 내 건강은 점점 악화했고, 한국인의 밥상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인 마늘이 최악의 알레르기 식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요리할 때면 으레 한 숟갈 푹 떠 넣었던 그 알싸하고 맵싸한 자극. 미각을 단숨에 깨워주던 그 강렬함이 사라지고 나니, 봄의 맛도 길을 잃은 듯 무언가 밍밍해졌다. 수십 년을 기억해 온 익숙한 맛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은 이름 붙이기 힘든 애틋함과 서글픈 맛이 되었다.
어쩌면 봄동 비빔밥의 그 알싸함은 단순한 마늘 맛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봄이 오면 늘 그 맛이 곁에 있었고,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그 자극이 혀끝에 닿아야 비로소 겨울을 끝내고 온전한 봄이 시작되는 것 같았으니까. 나이와 건강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의미일 것이다. 소리 없이,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던 당연한 것들이 자리를 비우고 낯선 결핍과 마주해야 하는 일.
하지만 입안에 감도는 낯선 담백함을 천천히 씹어 삼키며 생각했다. 비록 강렬한 한 조각이 빠진 봄동 비빔밥일지라도, 나는 오늘 내 두 발로 시장 골목을 걸었다. 봄바람이 실어 나르는 달콤한 딸기 향을 맡았고, 내 손으로 싱싱한 봄의 조각을 골라 왔다. 주방에 서서 잎을 씻고 양념에 무쳐 내 손으로 나를 위한 따뜻한 한 끼를 기어코 차려냈다. 먹고 싶은 것을 내 손으로 요리해 낼 수 있었다. 내 건강에 서글픈 제약이 생겼을지언정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다정하게 돌볼 생명력을 쥐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시고 감사한 일이다.
자연의 봄도 매년 완전히 같은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 어떤 해는 벚꽃이 피자마자 얄궂은 봄눈에 일찍 져버리고, 어떤 해는 매서운 꽃샘추위가 유난히 오래 머물러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래도 잊지 않고 봄은 온다. 조금씩 달라진 채로, 때로는 서툰 모습으로. 그러나 어김없이 자신의 때를 잊지 않고 기어코 찾아온다.
올해 내 식탁에 오른 봄동 비빔밥도 그랬다. 내가 알던 과거의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봄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었다. 톡 쏘는 마늘이 사라진 덕에 봄동이 품고 있던 본연의 달큼한 즙은 오히려 더 맑게 다가왔고, 갓 짜낸 참기름은 한층 더 깊었으며, 문밖에서 스미는 바람에는 여전히 시장에서 맡았던 딸기 향이 묻어 있었다.
결여가 찾아왔지만, 내 곁엔 아직 잃어버린 것보다 누릴 수 있는 온전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텅 빈 것 같았던 마음의 모서리를, 소박하지만 다정한 봄동 비빔밥 한 그릇이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건강의 계절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기어코 다시 봄은 올해도 내게 당도했다.
봄은 올해도 왔다. 나는 그것을, 기쁘게 먹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2월에 많은 이슈가 있었어요. 자가면역질환 약 부작용으로 혈압이 높아져 혈압약에 적응하느라 두통을 이겨내야 했고요. 또 1호와 2호가 출가하여 각자의 학교로 떠나는 바람에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답니다. 그 와중에 현장이 준공되어 준공문서와 결산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답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순식간에 사라진 2월이었습니다. 3월도 어찌어찌 비리비리하게 지내다 보니 벌써 중순이네요. 앞으로는 건강도 챙기고 글도 쓰며 힘차게 또 살아보려고 합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너무 늦지 않은 밤에 담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