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첫 문장을 쓸 때 생각할 3가지

- 문장보다 먼저 마음이 있어야 한다.

by 담은

글을 쓰겠다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 줄도 못 쓴 날이 이어졌다.

커서는 화면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허공 위로 손가락을 까닥 대고만 있었다.


책상 앞에 앉는 것부터 큰 결심이 필요했다.

"오늘은 꼭 써야 해"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겨우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막상 새문서를 열고 나면

매번 그때부터 막막함이 밀려와서

뭘 써야 할지 몰랐다.


내 마음은 분명 쓰고 싶다고 난리법석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고,

어떤 말을 먼저 건네야 자연스러울지 몰라서

오랫동안 빈 종이만 흘려보냈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에 깨달았다.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게 아니라,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걸.



처음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것은 어떠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들만 쓰는 특별한 기술도 아니다.

그저 나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도

조금은 편하게 마음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은 팁이다.





1. "지금 내 안에 가장 선명한 장면은 무엇인가?"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잡아둔다.

꼭 정돈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흩어진 파편처럼 스쳐가는 기억의 조각이면 충분하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뛰던 골목길.

침묵만이 가득했던 저녁 식탁 위.

퇴근길 버스 창문 너머로 흐르던 풍경.

친구가 툭 던졌던 무심한 한마디


이렇게 하나의 장면만 선명히 잡아도

글은 거기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문장은 정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단지 지금 나를 멈추게 하는 그 순간을

진심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예 : "그날, 식탁 위에는 대화 대신 된장찌개의 김만 아지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면이 분명하면 문장은 저절로 따라온다.




2. "지금 이 글을 쓰려는 감정은 어떤 색인가?"


감정은 문장의 결을 바꾼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감정으로 쓰느냐에 따라

글은 완전히 다르게 쓰인다.

슬픔은 문장을 느리게 흐르게 만들고,

분노는 짧고 날카롭게 뱉어낸다.

그리움은 세세한 기억들을 붙잡게 하고,

서운함은 문장마다 작은 쉼표를 남긴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으로 이 이야기를 쓰려는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장은 저절로 감정에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예 : "오늘따라, 유난히 그 사람 목소리가 그립다. 차갑고 무뚝뚝했던 말투까지도"

감정이 분명해지면 글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잡힌다.




3.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가?"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 글의 온도와 말투가 달라진다.

편한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 떨듯이,

오래전 어린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듯이,

혼자만의 일기를 쓰듯이,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건네듯이.


이렇게 상대를 정하고 나면 첫 문장은 훨씬 명확해진다


예 : "어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네가 무너지지 않아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마음속에서 '누구에게 쓰는지'만 분명해져도 첫 문장의 방향이 뚜렷해진다.





첫 문장을 쓸 때 꼭 멋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글을 시작하는 힘이다.


선명한 장면하나,

지금 마음을 채우고 있는 감정 하나,

그리고 가장 먼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 한 명.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내 마음속에서 뚜렷해지면

문장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글은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뿐이었다.




� 오늘의 실습 과제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장소, 시간, 분위기를 포함해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예: “늦은 오후, 혼자 버스를 탔던 순간. 사람들 틈에서 유난히 조용했던 내 마음.”

지금 내 감정은 어떤 색인지 써보세요.

예: 회색의 무기력, 붉은 분노, 파란 고요 등

이 글을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에게 건네는 첫 문장을 직접 써보세요.




� 오늘의 질문 리스트

지금 내 머릿속에서 가장 또렷한 장면은 어떤가요?

그 장면에 담긴 감정은 어떤 느낌인가요?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려 하나요?

이 글을 가장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 앞이라면 어떤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첫 문장은 글을 잘 쓰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문장은 가장 나다운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 나다운 한 줄이 나의 첫 문장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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