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r Man's Moody Blues
그는
몸을 비스듬히 활처럼 휘게 한 후 의자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눈은 감겨져 있었고 손 마디엔 이제 막 타기 시작한 듯 보이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겨울 바람이 천정으로부터 줄을 길게 늘어뜨려 낮게 매달린 백열등을, 같은 크기로 좌우로 움직였고 빛의 움직임에 따라 그의 얼굴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목의 울대를 움직여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을 나설 무렵 무심코 듣게 된 노래의 한 소절이 아마도 작심하고 그를 따라 나선 듯하다.
그녀는..
아주 가끔 그가 들려 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는 작은 입을 움직여 그가 지닌 사연을, 그가 지나고 있는 시간을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의 이야기와 바다에 살고 있는 괴 생명체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고, 얘기의 말미에는 그녀의 눈을 빈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사랑해"라고 얘기했다.
그는 가끔 시를 썼다. 그녀는 그의 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의 글에서 맡을 수 있는 그의 향기가 좋았다. 그 나이 대의 흥청거림과 경박함 없이, 많은 감정을 담은, 의미 있는 눈 빛으로 그녀를 바라 봐 주는 그가 좋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사랑이 그러하 듯, 그러니까 어느 날 그가 무심코 세상에 던진 날 선 파편 하나가 그녀의 모든 오감이 그를 향하게 만들었다.
그를 향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고, 각기 다른 극의 자석이 만나 인력을 형성하 듯 그렇게 만들어진 오직 그만의 자기장안에서 그가 이끄는 방향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랑은
어느 날
깃든 사랑은
봄날의 온순한 빛
생명의 찬가,
햇살과 함께
창틈을 파고 드는
봄비 젖은
흙의 냄새
이제 그녀는
그의 몸짓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몸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았다. 마치 밟혀 구겨진 우유갑 같았다. 건드리면 갑작스레 작아지는 연체 동물의 촉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뜩 웅크려진 어깨 위에 세상의 근심이란 근심은 모두 올려 놓고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었고, 늘 땅을 향해 떨궈진 고개와 둘 곳을 몰라 불안한 동공의 움직임은 그녀를 불안케 했다. 그가 지닌 가난은 암울했고, 그가 내뱉는 자학적인 말투는 그녀를 질식하게 했다.
그를 버리기로 했다. 깊고 깊은 그녀조차 알 수 없는 그녀의 어딘가 그의 낮은 음성, 섬세한 손 놀림, 빛나던 글의 향연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불편한 가난과 칠흑으로 점철된 그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그의 체취에 갇혀 지내기를 원했던 것처럼 다시, 어느 날 문득 그의 사랑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은
어느 날 사랑은
죽음의 노래
부활이 없는
일순에
삶의 빛을 빼앗는
절망하게 하는
빗나간 살의 저주
그는..
활처럼 휜 몸을 길고 지루하게,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탁자에 한쪽 팔을 세워 턱을 괴고 앉았다. 도심의 먼지와 뒤엉킨 빗물로 창밖은 그로테스크한 화폭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는 육감적으로 그녀가 그를 떠났음을 알고 있었다.
"오지 않을 거야"
그는 자조 섞인 말을 되뇐 후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의 움직임 사이로 낮게 흐린 창 밖의 풍경이 사라졌다 나타났고 그의 얼굴은 실내의 낮은 조명 탓에 일그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오지 않는다. 그의 불편한 예감과 그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남의 대부분이 이뤄진 이 어둡고 습진 카페의 한 구석에서, 그녀가 봄날 오후의 햇살처럼 하얀 치아 사이로 던져 주던 웃음과, 그녀의 가늘고 긴 옥수 사이를 뒹굴던 따뜻한 전등 빛, 그리고 "사랑해"라고 시처럼 읊조려 주던 그 시간들을, 세월이 가도 변치 않을 박제처럼, 그의 동공 깊숙이 담아 두고 싶었다.
집을 나서며 무의식 중에 듣게 된 노래 하나가, 떨치고 싶어도 종일을 그의 입 안에서 공 굴려지듯 그렇게..
Poor man's moody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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