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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May 31. 2021

여행 인문학

질병의 역사와 여행의 변화


예상치 못한 코비드의 습격은, 벗어나고 싶은 악몽과 같은 나날을 안겨주었다.

이동 수단은 도보와 우마차, 여행을 떠나려면 안위를 걱정해 유서까지 써야 했던 과거였다면 작금의 COVID 19는 우리의 삶에 위협이 되지 않았을까?  교통 수단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에 따른 전파의 속도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삶을 위협하는 질병의 발생과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울음도  멈추게 했다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 회자되던 시대의 호환 마마는, 호랑이의 습격과 천연두를 칭했는데, 호환과 마마에서의 마마는 마마신이라 칭해지며 몸속에 들어온 신이 부디 아무 일 없이 나가주길 기원하며, 제를 올렸을 정도라고 하니, 마마신으로 불린 천연두의 위력과 그에 대한 공포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인류의 삶을 위협했던 페스트, 스페인 독감, 말라리아, 매독, 에볼라 바이러스, 한센병, 에이즈 등은 사망자 수에 있어서 전쟁과 비견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병마를 쫓아낸 후에도 오랜 시간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동반했다.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2천만 명에서 많게는 1억 명이라는 사망자의 비극을 동반했으며, 세균성 전염병으로 피부가 괴사 하거나 짓무르는 증상을 동반해 나병, 천형병 등으로 불리던 한센병은 병의 고통에 더불어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되어, 몸에 방울을 다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피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처로 짓무른 부위를 가리기 위해서 두건을 쓰고 다니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마귀에 씌웠다거나 저주받았다 해서 이유 없는 폭력과 살해의 위협에 노출돼야 했다. 무엇보다도, 병의 고통보다 주변의 몰이해와 차별이 더 큰 고통을 가중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발병한 에이즈는 현대의 역병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어떠한 질병보다도 인류의 삶을 파괴할 만큼 두려웠던 질병은 몸이 까맣게 타서 죽는다는 Black Death(흑사병), 페스트였을 것이다. 페스트는 설치류에서 생긴 바이러스로, 이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쥐벼룩에 의해서 전염이 되었다고 한다. 쥐벼룩이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며 전염을 확산시켰을 리는 만무하니, 결국은 이에 감염된 인간의 이동이 전염병을 확산시켰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최초 흑사병의 발병은 14세기로 발병지의 여러 설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최초 발병하여 몽골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침략하면서 창궐하게 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에는 전쟁 중, 흑사병에 걸린 병사들의 시신을 투석기에 담아 쏘아 올려 상대 지역으로 투입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세균전과 비교될 수 있응ㄹ 것 같다. 이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2천5백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차례 흑사병이 발병하고, 확산하면서 1억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하니, 당시의 사람들이 지녔을 전염병의 공포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당시에는 페스트의 발병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없었으므로 인해 거리의 부랑인이나 유대인, 한센병 환자들을 흑사병의 주요 원인으로 오도해 폭행하거나  학살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영토의 확장과 타민족의 굴복을 위해 자행된 역사 속의 전쟁은 빈번했던 전염병의 감염경로가 되었고 이에 따른 고통은 사회적 약자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중세시대 전염병의 확산과 전쟁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인 불안으로 인해 당시 사회에서는 현재를 즐겨라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미래의 불안으로 YOLO(You Only Live Once) 족이 되고, 한번 죽지 두 번 죽냐거나 또는 인생 별거 없다는 자조적 사조가 대세가 되는 일과 많이 닮아있다. 한편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가 늘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삶의 고통의 크기가, 외부적 현상에 의해 배가되는 현실이 착잡하게 다가옴을 피할 수 없다.

전염력의 강도나 예방과 치료에 있어 전 세계적인 논란을 지속해 온 2020년의 COVID 19는 극복 후에도 많은 면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 놓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차고 넘친다. 선택지 없이 일주일에 5일을 일해야 했던 근로 패턴은, 논쟁 중이었던 주 4일 근무를 가속하게 될 것이고, 얼굴을 마주해야 진행될 것 같았던 일들은, 원거리에서도 화상을 통해 처리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타인과의 신체접촉은, 주변 많은 사람의 일상적인 삶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같이 밥을 나누는 식구라 할지라도 사려 깊은 근신이 없으면 가족의 존립이 위태로워짐을 알게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상존하는 에티켓으로 남을 것이고 다시는 예전과 같이 격의 없이 따뜻한 포옹을 나누거나 손을 잡고 흔드는 일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풍경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회적 격리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는 WHO의 발표를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 속의 질병은 발생에서 확산까지 수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전 세계를 지구촌으로 엮어 일일 생활이 가능한 현재에 이르러 질병의 확산은, 단 며칠에 불과한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한 COVID 19는 불과 수일 만에 세계 각국에 확산하였음은 물론이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세계 곳곳에 2천만 명에 육박하는 감염자와, 70만 명을 넘어서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팬더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닫았던 국경을 열고, 멈춰 섰던 비행기는 운항을 시작하고 있다. 심지어는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을 향해, 자국을 방문 중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 시, 병의 완치는 물론, 그에 따는 피해 보상을 내세우는 나라마저 등장하고 있다. 국경의 개방과 관광객의 방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입은 피해가 큰 국가일수록, 인종 간의 차별과 불화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상수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여행객을 받아야만 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에 대한 고마움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경계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 자명하다. 이해와 존중이 전제되는 여행문화의 계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식 없이, 흔들리는 깃발을 따라 좌충우돌 소란을 일상으로 동반하던 무리의 여행에서, 오랜 팬더믹으로 인해 황폐해진 몸과 마음의 휴식에 더불어, 방문국 거주민의 입장에서 작은 움직임에도 배려가 필요한 이른바 Decent Trip(점잖고 아름다운 여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범했던 일상이 다시 평범해지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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