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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11. 2021

여행 인문학

영화로 읽는 여행 인문학

영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를 봤다. 개봉 당시 느꼈던 극장에서의 감동은, 세상 편한 옷차림과 함께  흔들의자에 앉은 체 3시간 가까운 재 탐닉에도 불구, 여전했다. 이 영화는 호주를 뿌리로 하는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과 배우인 바즈 루어만, 니콜 키드먼 그리고 휴 잭맨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였다. 호주의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를 보는 즐거움과, 신비로운 호주의 내면을 훔쳐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개봉 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 지루함 없는 정주행을 가능하게 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게 된 배경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한 틀 안에 살며 정주하게 된다. 영화를 통해서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던 주인공이 격변의 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격렬한 삶의 변화를 겪는 여정을 담고 싶었다. 삶에 있어서 지고의 가치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영화는,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를 상징하는 룰라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영국에서 부유한 삶을 누리던 새라 애쉴리(니콜 키드먼 분)는 호주에서 가축업을 하는 남편이 사업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호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오지에 갇히게 된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남편의 농장(벨기에 크기만 한)을 지키고, 1,500두의 소떼를 적기에 호주 군에 납품하기 위해, 길들여지지 않은 소 몰이꾼인 드로버(휴 잭맨 분)와 손을 잡게 된다. 드로버를 중심으로 한 소몰이꾼들이 합류하고 호기롭게 출발한 소몰이 길의 평화는 경쟁 목축업자인 카니의 도발에 역경을 겪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세대의 룰라를 통한 화해와, 전쟁의 광풍 앞에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가는 내용이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화해다. 무엇보다도 호주의 짧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정복자와 원주민 간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2시간 40분에 걸친 긴 이야기는 신비한 원주민(에보리진)의 정신세계를 바탕에 두고 펼쳐진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길 위의 대서사를 통해 시대가 피할 수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호주라는 거대한 대륙을 화폭으로, 치밀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 독백 “백인은 눈으로 보기만 할 뿐 깨닫진 못했다”, 백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몰랐다””마음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속의 룰라가 상징하는 “잃어버린 세대” 혹은”도둑맞은 세대”는 원주민 동화정책의 하나였다.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 자녀들을 빼앗아 강제로 특정 구역에 수용하거나, 백인 가정에 입양하는 등의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원주민의 문화 계승을 막고, 백인화를 위한 분리정책이었다. 이는 후대에 이르러 “잃어버린 세대( Stolen Generation)”라 불리게 된다. 약 70년(1900-1970년)에 걸쳐 자행된 백인화 작업은 1998년 이후 매년 5월 26일을 National Sorry Day로 지정하면서 잘못된 정책에 대한 사과가 표면화되기 시작해,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 정부의 캐빈 러드 총리가, 마침내 2008년 2월 13일 의회와 정부를 대표해 원주민의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공식 사과함으로써 진정성을 갖게 됐다.


원주민 소년 룰라는, 백인화 정책 추진을 위한 호주 경찰의 단속을 피해 엄마와 함께 저수조로 몸을 피하게 되고, 저수조에서 익사하며 생을 마감하게 된 엄마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룰라에게 새라(니콜 키드먼 분)는 오즈의 마법사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하게 된다. 룰라를 위로하며 함께 부르는 Over the Rainbow는 이어질 미래의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1,500여 마리의 소몰이 장면은 다듬어지지 않은 호주의 거친 자연미를 유혹적인 영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경쟁자인 카니 목장의 플래쳐가 소떼를 절벽으로 몰아 몰살하려는 음모에, 룰라의 할아버지 킹 죠지와 룰라가 신비의 힘으로 막아서는 클라이맥스를 보여 주면서, 버즈 루어만 감독이 영화 전면에 배치한 원주민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윈에 입성, 소떼를 무사히 해군 함에 안착시킨 새라 애쉴리와 드로버(휴 잭맨 분)는 둘의 사랑을 키워가지만, 룰라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다 결국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전황을 유리하게 전환시키기 위한 일본군의 다윈 공습 후, 룰라를 찾기 위해 폐허를 헤매 다니던 니콜 키드먼은 Over the Rainbow의 하모니카 선율에 이끌려 부두로 향하게 되고, 룰라와 드로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전쟁의 광풍과 백인 동화 정책에 의해 이별을 겪었던 룰라와 새라, 드루버는 역경을 겪은 만큼 더 견고해진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룰라는 할아버지 킹 죠지가 남긴 “이제 나의 여행은 끝났다”는 말을 뒤로하고 원주민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스토리의 배경인 Northern Territory의 다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보급기지였다. 일본의 다윈 공습은 진주만 공습에 버금가는 규모로, Bombing of Darwin으로 불리는 1차 공습 후 RAAF(호주 공군)의 전투기 31 대중 30대가 파괴되었으며 항만과 선박의 파괴는 물론, 236명이 전사하고 3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의 다윈은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로, 호주의 여타 주요 도시보다 아시아 국가들과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인구 규모 대비 아시아인의 거주율이 높은 곳이다. 다윈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원주민 보호구역(Arnhem Land)이 있으며, 인구의 약 10% 정도가 원주민이다. 다윈은 호주 근대사의  갈등과 화해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2016년, 7년간의 소송 끝에 호주의  맬컴 턴불 총리는 다윈 서쪽의 콕스 반도 내 676㎢ 면적의 땅 소유권을 원주민들에게 돌려주면서, 주민의 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다윈이 속한 노던 테리토리는 해안가의 땅을 포함해서 전체 토지의 40% 이상에 대한 원주민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윈 전경

 캥거루와 유칼립투스 나무 위의 코알라로 대변되는 광대한 호주 대륙의 깊은 속내에는, 대륙으로의 정착 과정에 진행된 이민족 동화 과정의 상처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힘에 의한  문화 말살 정책과 오로지 원주민을 순화와 동화의 대상으로만 본 호주의 식민 정책은, 현대에 이르러서야 과오가 인정되고 상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 100선에 선정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화 곳곳에 호주의 근, 현대사를 망라하는 아픔의 기록을 잘 녹여낸 작품이다. 

구성에 있어서 지루하다는 일부의 비평은 곳곳에 배치된 극의 긴장감이 대서사의 시간 놀음에 느슨해져 버린 탓이다. 다분히 다큐멘터리 적인 제목의 오스트레일리아는, 아름다운 영상과 최고의 배우를 앞세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적당한 속도로 잘 표현해 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아슬아슬함에 땀이 송글 거리는 류의 긴장이 배제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시간을 갖고 찬찬히 감독의 의도와 배우들의 열연에 빠져든다면 영화가 전달하는 깊은 메시지에 어딘지 모를 저릿함과 아련함이 남게 될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일은 좋은 책을 만나는 일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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