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길위의 당신에게 전하는 말

by Damian

길위의 당신에게


어떤 이들은 고요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는 소란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배낭을 든다. 이유가 무엇이든,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상처는 이별일 수도 있고, 상실일 수도 있고,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신처럼 숨기고 지냈던 그 상처는, 여행지에서 종종 삶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철학으로 바뀐다.

여행이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브락삭스가 알을 깨고 나오듯 이미 깨져버린 익숙한 내면의 공간을 벗어나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 ‘삶’, ‘사람’, ‘시간’ 같은 것들과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서 필연적으로 나의 삶이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이는 우리에게 이 낯선 환경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타지에서 우리는 늘 ‘왜’라는 의문 부호를 달고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 문화가 다른 곳, 익숙하지 않은 '그' 길 위에서 타인 앞의 나를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던질 질문은 “나는 누구지?” 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비로소 내 삶에 대해 독립적이고도 진지하게 마주하고 앉아 철학적 사고를 시작하게 된다.


상처 입은 마음은, 감각에 민감하다. 바람의 온도, 해가 비치는 방향, 바람에 묻어 오는 냄새 한줄기에도 마음은 쉽게 반응한다. 적응을 위해, 방어를 위해 열려있는 오감은 동시에 삶의 미세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

“이 거리의 저녁은 참 넉넉하구나.” “저 아이의 웃음은 때없이 맑구나.”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그런 깨달음은 상처를 밀어내지 않고, 상처와 함께 걷게 해준다. 치유의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다.


여행은 그래서 도망이 아니다. 더 가까이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멈춤이다. 우리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익숙한 곳에선 보이지 않던 내가, 낯선 곳에선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조금 울고, 조금 웃고, 조금 숨을 고르게 된다.


만약 지금, 마음이 지쳐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말 하나만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여행은 당신을 치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을 다시 당신 앞에 데려다 줄 것이다. 그 길의 끝, 낯선 골목 어귀에서 오래 잊고 있던 당신의 빛나는 눈빛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면, 여행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