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의 도로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였다. 60킬로미터 내외를 오가며 계기판의 바늘이 중심을 잡고 있는 동안, 나는 캡슐에 갇힌 우주인처럼 지상의 시간을 떠돌고 있었다. 끈적한 붉은 과육 같은 석양이 앞 유리에 달라붙어 시야를 교란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의 저음이 차체의 진동과 섞여 골반을 타고 척추로 번져왔다. 나는 완벽히 밀폐된 공간에서 공허의 시간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예고도 전조도 없는 뜨거움이 목젖을 울렁이게 했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덜컹거리는 서스펜션의 충격처럼, 왈칵 눈물이 물리적인 타격으로 왔다. 시야가 일그러졌다.
어떤 비극적 서사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실연이나 바닥을 향해 가는 통장의 잔고를 셈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눈앞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하고 붉은 구체의 압도적 질량과, 좁은 차 안을 가득 메운 현악기의 공명이 고막을 타격했다는 감각뿐이었다. 그러나 몸은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수도관이 터지듯 눈물샘이 개방되었고,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키듯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비상등을 켰다. 똑, 딱, 똑, 딱. 규칙적인 점멸 음이 내 몸 안의 균열을 경고하는 메트로놈처럼 들렸다.
운전석은 기묘한 공간이다. 전면 유리를 통해 세상의 모든 풍경을 빨아들이듯 질주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이 고립된 속도 안에서 나는 사회적 가면을 벗는 것과 동시에 가면 안쪽의 맨살이 짓눌리는 경험을 한다. 나를 뜨겁게 만들곤 왈칵 솟아오른 이 슬픔의 성분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중력일지도 모른다. 가속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내 몸 어딘가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시간의 찌꺼기들이 원심력에 의해 솟구쳐 오른 것이다. 우리는 정지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전하는 별 위에 서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이곳에 붙들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걷는다. 그러나 가속과 감속이 반복되는 이동의 순간, 몸은 자신이 얼마나 불안정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감지한다.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빠르게 흘러간다. 침묵하며 뒤로 밀려나는 시간들. 붉게 타오르며 산화하는 석양,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표지판, 다시는 동일한 파동으로 돌아오지 않을 첼로의 선율. 우리가 '이동'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실상 무수한 '이별'을 전제로 한다. 나는 매 순간 무언가를 버리며 달린다.
그러므로 이 눈물은 슬픔의 배설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내 몸의 생리적 멀미였다.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위장을 조였다.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계기판 위에 선명한데, 마음은 잠시 멈춤을 갈망하고 있다. 도착하는 것보다 머무르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보다 돌아보는 것이 더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속도는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가지만,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든다.
도심으로 진입하자 정체가 시작됐다. 붉은 브레이크 등들이 혈관 속 적혈구처럼 길게 늘어섰다. 차가 멈춰 선 곳은 낡은 버스 정류장 옆이었다.
오른편 차창 너머로 한 사내가 보였다. 잿빛 점퍼, 구부정한 등, 허름하게 걸쳐 입은 외투. 한 손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정체불명의 봉지는 맥없는 손아귀에 매달려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사내의 시선은, 자신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날 버스가 나타날 도로의 끝, 그 소실점에 멍하니 박혀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사내의 정수리에 내려앉아 희끗한 머리카락을 비췄다. 차 안의 나는 따뜻하고 초겨울 창밖의 그는 추웠다. 나는 점멸하는 혈관속으로 흐르고 그는 멈춰 있었다. 유리벽 하나 사이의 거리감이, 그 비대칭적 온도가 서늘하게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누군가의 아버지인지, 고단한 가장인지 알 수 없다. 섣불리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겹쳐놓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감상은 타인의 고통을 쉽게 소비한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저 검은 비닐봉지의 무게가 내 핸들의 무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그가 삼키고 있을 저녁의 쓴맛이 내가 방금 흘려보낸 짠맛과 유사한 화학식일 것이라는 직감. 그 막연한 동질감에 목이 멨다.
어쩌면 그의 기다림은 버스가 아니라,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자신을 받아줄 아주 작은 안식을, 식어 빠진 순대나 몇 알의 귤이 들어있을지 모를 그 불투명한 봉지 안에, 그가 지키고 싶은 세계가 들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검은 봉지를 들고 정류장에 선다. 하루를 버틴 뒤 막차를 기다리며 삶의 무게를 잊고자 하지만 삶의 속도는 우리를 앞으로 몰아간다. 정작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는 것은 내면의 수위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신호다. 우리는 견고한 척하며 건조한 일상을 버티지만, 실상 우리의 내면은 찰랑거리는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쉽게 석양이라는 핀, 음악이라는 핀, 그리고 타인의 그림자, 굽은 등 그런 핀 하나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져 내릴 만큼 장력 가득한 표면 위를 걷는다.
신호가 바뀌며 앞차가 굼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미러 속 버스 정류장의 사내가 점점 작아졌다.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와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봉지 모두가 누군가의 식탁 위에, 누군가의 안식위에 안전하게 착륙하기를 기원했다.
눈물은 뺨 위에서 말라붙어 뻣뻣한 당김을 남겼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굳이 보는 이도 없으니 흐르는 눈물을 닦을 이유도 없었다. 타인의 뒷모습에서 내 생의 통증을 감지할 수 있다는 그것은 내가 아직 금속성의 부품으로 산화되지 않았다는, 여전히 물기를 머금은 유기체라는 서글픈 증명서 같았다.
어둠이 완전히 도로를 장악했다. 꼬리를 문 차량의 붉은 미등들이 쉼없이 앞으로 흐르는 강물같다. 저마다의 상념을 싣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저 많은 불빛들. 우리는 서로의 눈물샘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며,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속도는 우리를 분리하지만 동시에 연결한다. 각자의 캡슐 속에서 고립되어 있지만, 우리는 같은 도로 위를 달린다. 같은 신호등 앞에 멈춰 서고, 같은 석양을 본다. 서로의 얼굴을 모르지만, 서로의 무게를 안다. 이 역설적 연대가 도시의 밤을 견딜 만하게 만든다.
다만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속도의 성분에는 눈물의 염분이 섞여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뒤에 무언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실을 감각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