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도구와 글쓰는 마음에 대하여
핸드폰과 연결되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새로 샀다. 매일 써도 질리지 않을 검은색으로. 오직 글을 쓰기 위해서다. 잠깐 빌려 쓰던 하얀색 키보드는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 1년쯤 내 것처럼 잘 사용한 뒤였다. 그는 이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어 휴대용 키보드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어차피 쓰던 것 계속 써도 괜찮다고 몇 번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내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키보드가 필요했다. 내 키보드. 더 정확히는 내 돈을 주고 산 키보드가. 그렇지 않았다면 키보드를 쓰는 내내 빚진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 기분으로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을 쓰는 만큼은 온전히 나여야 한다. 생각은 물론이고 생각을 표현해내는 문장, 그리고 그걸 적어내는 도구도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한다. 나는 새로 산 키보드가 이런 글 쓰는 마음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무선 키보드 없이 과연 내가 글을 못쓰냐 하면 또 그런 건 아니다. 오며 가며 핸드폰으로 글을 자주 쓴다. 몇몇 글들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완성되었다. 그런 것 없이도 글만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초보가 연장 탓이나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놀림을 받더라도 키보드가 꼭 있어야겠다. 그건 전적으로 내가 글을 잘 못쓰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실력은 물론이고 글을 쓰는 행위에 아직 미숙하다. 핸드폰 메모 앱을 켜서 글을 쓰는 탓에 오타는 기본인 데다가 한 문장을 금세 적고는 수십 번을 다시 고쳐 써야 그나마 읽을 만한 문장이 나온다. 어떨 때는 완성된 글을 음절 단위로 완전히 해체하여 다시 재결합하기도 한다. 그런 작업은 예술이라기 보단 수술이다. 빠르게 환부를 찾아낸 후 (찾아낼 수 있다면), 그에 적합한 도구를 꺼내 환부를 도려내고 글을 살려 내야 한다. 워낙 대규모의 수술이라 이동 중인 십분 이십 분 사이에 끝낼 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수술대는 항상 카페나 거실 소파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가 된다. 이때 수술 도구로서 키보드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이전 하얀색 키보드를 쓸 때였다. 카페에 앉아 슬쩍 키보드를 꺼내놓고 마치 전업 작가라도 된 양 즐거운 착각에 빠진 적 있다. 글을 쓰기 위한 장비가 있다니, 이거 완전 프로 답잖아 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소리가 나게끔 키보드를 툭툭 두드려보기도 했다. 괜히 인상도 한 번씩 쓰면 좋다. 뭐랄까, 세상 담백하기만 한 글 쓰는 행위에 멋이 깃드는 것만 같았다. 글쓰기는 내가 아는 중 가장 멋진 일이지만, 나는 이를 '겉 멋' 이 아닌 '속 멋'으로 여긴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글쓰기는 세상에서 제일 겉 멋 들지 않은 활동일 것이다. 글쓰기엔 겉으로는 잡히지 않는 속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는 장면을 떠올리면 단촐하다. 딱히 장비랄 것도 없다. 음악 하는 사람처럼 커다란 악기를 다루며 고개를 끄덕이고 리듬을 탈 수도 없고, 멋들어지게 붓을 휘날리며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결과물을 말하자면,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것이 글씨다. 자세히 읽기 전엔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어 모두 똑같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무선 블루투스 키보드는 글을 쓰는 동안 묘한 만족감을 준다. 남들 보기에 멋있으라고 글을 쓰는 건 아닐 테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브런치에서는 나를 작가로 부른다고, 데미안이라는 필명을 검색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제일 먼저 나오고 검색창 맨 끝에서 발견되는 4명의 브런치 작가 데미안 중 한 명이 나라고,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것 보면 모르겠냐고 자랑하고 싶은 내 소심한 허영심을 채워준다. 나는 그것을 초보들의 특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초보에게는 장비를 자랑하며 우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나는 글을 쓴 지 이제 막 1년이 넘었다. 그 자격을 조금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친척형 중 굉장히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여러 분야의 취미를 누린다는 점에서 취미계의 전문가라 불릴만했지만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기 때문에 취미 초보이기도 했다. 그는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면 우선 장비부터 맞추었다. 야구를 시작할 때는 글로브와 유니폼을, 사진을 찍을 땐 비싼 카메라와 카메라 가방부터 샀다. 집 한 구석에는 항상 그럴듯한 장비들이 쌓여 있어 대충 봐도 어떤 취미를 새로 시작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새것처럼 깨끗한, 한눈에 보기에도 비싼 글러브가 눈에 띄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 시작한 거냐 묻는 내게 '아니, 이제부터 하려고'라는 멋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형은 이제 야구도 안 하고 사진도 찍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래도 나는 그의 기분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장비와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글러브를 끼고 유니폼을 입은 채 거울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들어선 첫 타석에선 아주 호쾌한 스윙을 날렸을 것이다. 내가 산 키보드는 비싸지는 않아도 글을 쓰기에는 충분히 좋은 장비다. 나 역시, 이제 시원시원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좋은 글을 쓰는 일만 남았다.
제일 먼저 '키보드를 산 일'에 대해 적어야겠다. 키보드를 주문하고 한참 동안 설레었던 이야기에 대해 써야겠다. 무얼 쓸까 고민했던 며칠간의 기다림이 마치 학창 시절 수련회 전날 밤 내일을 기대하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말해야겠다. 글은 쓰지도 않고 있으면서 일단 키보드를 받기만 하면 어떤 글이라도 전부 쓸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런 내용으로도 과연 글이 써질까 싶다. 역시 안 되겠지 싶다가도 마음을 다시 고쳐 먹는다. 지금 기분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또 써도 된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좋은 영감을 준다. 좋은 것에 대해서, 좋은 것을 그저 좋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키보드를 산지 한참인데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쓰려고 마음을 먹는 일과 쓰는 일 사이의 거리는 항상 아득히 멀고 나는 그 사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길 하나를 반듯이 내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자꾸자꾸 걸어가 길을 내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이 땅에는 길이란 건 애초에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도 나처럼 도구 같은 것이 있었을까. 그 도구를 들고 한참을 신나 했을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나는 오늘도 그 사이 길 하나를 내려 노력한다. 지름길이 아니라도 좋다. 만약 당신도 글을 쓴다면, 매일 쓰고 싶을 만큼 글이 좋다면, 계속 쓸수록 자꾸만 좋아진다면 내 마음을 분명 이해할 것이다. 나와 똑같은 글 쓰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나의 키보드, 부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