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이 빌런이 아니었다면

GV빌런 고태경을 읽고

by 데미안

내가 아직 사원일 적 받았던 수많은 오해 중 하나는 저거 뺀질뺀질하게 생겨먹은 게 일은 열심히 안 한다는 편견이었다.


어느 술자리였다. 사실 나 진짜 열심히 한다고 억울해하며 말하던 내게, 어떤 선배는 한참을 기분 나쁜 듯 침묵하더니 “사람이 겸손해야 돼”라는 말을 꺼냈었다. 마치 너는 그런 말 할 자격 따위 없다는 양.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그 선배는 나의 열심을 의심하기보단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되었다. 과연 그는 그때 내게 했던 말을 기억이나 할까. 그리고 알기나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이 열심이란 사실을.


소설 속 GV빌런 고태경도 나와 다름 아니다. 제대로 알지 못할 땐 꼰대 빌런으로 오해받았지만, 주인공이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할 시점엔 어느새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선배 영화인이 되어 있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이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사실은 대체로 우리 모두가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과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도 이해하고 싶다. 타인의 복잡함을 대면하고 끝내 이해하게 된다면, 그게 누구든 결코 쉽게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히나 가볍지만은 않은, 적절히 현실적인. 문학인척 힘주지 않지만 문장 사이사이에 벤 문학 냄새를 숨길 수 없는. 간만에 좋은 소설을 만나 틈틈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