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판 불변의 법칙

머리 말고 분칠해도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by Dami

오늘 댓바람부터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고 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본판을 바꾸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을 설쳐가며 새벽같이 일어나

머리에 고데기를 말고,

얼굴에 분칠도 하고,

사진발 잘 받는 옷을 골라 있었다.


이 정도 정성이면

면허증 사진쯤은

사람처럼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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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영하 18도)

사진 찍는 카메라 옆에서는

히터 바람이

선풍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리고,

포즈를 잡아볼 틈도 없이


끝났다고

가라고 손짓한다.


억울해서 잠깐 망설였지만,

찍소리도 못 하고

조용히 물러섰다.


운전면허를 총괄하는

관공서 MDV는

묘한 곳이다.


창구 직원들은

옆 사람과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며

여유가 넘치는데,

정작 긴 줄 서 있는 사람은

부를 생각을 않는다.


마치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인내심 훈련장 같다.


'한국 공무원 같았음

이건 민원 폭탄감인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다 보니

결국 내 차례가 오긴 온다.


이름 철자,

생년월일,

주소 확인.


그리고 사인.


모든 게

너무 순식간에 끝났다.


잠시 후

임시 운전면허증을 받았는데,


아뿔싸~


잘 나온 얼굴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몸무게 칸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현재 몸무게보다

무려 12kg이나

더 나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때 시작된 일이었다.


파운드가 뭔지, 피트가 뭔지 감도 없던 시절.

서류를 작성하다가 몸무게와 키를 쓰는 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옆 사람 종이를 슬쩍 보았다.

나랑 체격이 비슷해 보였다.

‘뭐, 이쯤이면 되겠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베껴 쓴 숫자가

무려 24년 동안

단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살아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운전면허증에 몸무게와 키를 적어야 한다는 사실부터가 꽤 충격이다.

가만히 상상해 보시라.

주민등록증에 몸무게와 키를 쓰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렇게 순순히 펜을 들 수 있을까.


게다가 단위가 파운드와 피트다.

미터와 킬로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건 신체 정보라기보다

추리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숫자가 틀렸다는 사실보다

묘하게도,

사진 속 얼굴과

그 몸무게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이 면허증으로

의심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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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전면허증 사진 하나에도

이쁜 내가 있기를 바란다.


조금 더 나아 보이고,

조금 더 젊어 보이고,

조금 더 괜찮아 보이기를 희망하면서.


하지만

서류 속 숫자와

사진 한 장이

내 삶을

대변해 주지는 못한다.


사진은 마음에 안 들어도,

몸무게는 많이 억울해도,

DMV를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였다.


다음 갱신까지

4년.


그땐

기적 말고,

그냥

히터 바람만 덜 불어고

카메라를 제대로 응시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참~~

꼭 기억하고

몸무게 바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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