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와 얼굴의 잘못된 만남

상상은 드라마, 결과는 현실

by Dami

아무래도 이번 생에

잘 나온 운전면허증 사진

가질 수 없는 물건인 것 같다.


정말이지

머리를 쥐 파먹은 듯 잘라 놓고서..


내일 운전면허증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방금 떠올렸다.


잊고 있었다.

아주 잠시나마.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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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앞으로 4년은 버텨야 한다.

4년이다.


계절로 치면 16번의 계절이 바뀌어야 하고,

인생으로 치면

사람 하나가 철들 시간이다.


지난번 면허 사진을 찍을 때도

나름 간절하게 부탁했고

사진사는 내게

"오늘 베스트 샷을 찍어줬으니

너 사진 보면 기절할 거야." 하며

엄지 척을 해 줬다.


그리고 난 기절했다

다른 의미로.


3주 뒤

우편함에서 면허증을 꺼내 듣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었다.


사진 속 인물은

나도 아니고

내 조상도 아니고

어디서 많이 본

중국인 마약 딜러 같았다.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이다.

은행도, 병원도, 관공서도

다 이걸로 해결한다.


하지만 나는

그 6년 동안

정말 중요한 일에는

여권을 꼭 챙겨서 갔다.


나임을 증명할 길이 없어서...


그래서 이번에는 결심했다.

진짜 이쁘게 제대로 찍자.

그리고 오랜만에

미장원을 찾았다.


적지 않은 돈을 내는 자리인 만큼,

거울 앞에 앉는 순간

마음은 이미

달라진 나를 향해 가 있었다.


머리칼 없는 신랑의

소소한 대리만족을 위해

오래 붙잡고 있던

긴 머리를 내려놓고,


드라마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상큼한 여주인공을

잠시 상상해 본다.


준비해 간 사진 한 장.

그 속의 여주인공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고,

내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상상보다 빠르다.


가위를 쥔 손과,

그 가위를 받아내는

이 얼굴이 만나


결국 완성된 모습은 --

호박에

괜히 줄만

하나 더 그어

놓은 꼴.


그냥

그대로 있을 걸~


분명 비슷한데,

완전히 다르다.


이게


가위의 문제일까,

아니면

끝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이 얼굴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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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얼굴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내일

면허 사진을 찍고,

앞으로 4년 동안

다시 여권을 들고 다닐지,


아니면

매번 애써

'나'임을

증명하던지.


이번 생에

잘 나온 운전 면허증은

아무래도

전생에 큰 덕을 쌓았어야 가능했던 것 같다.


늦었다.

이미 이번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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