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녹여 티끌 만들기

부자 되긴 글렀네~

by Dami

어젯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더부룩한 속을 달래며

오늘 하루쯤은 굶어도 되겠다고,

아니 차라리 굶어야 마땅하다고

스스로에게 엄숙한 명령을 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딴청을 피워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를 (미국식 당근마켓) 넘기고 있었는데,

거기서 뜻밖의 얼굴들과 마주쳤다.


Precious Moments ('소중한 순간들'이란 뜻의) 인형들이었다.

개당 5불????

심지어 박스가 없으면 덩치 큰 것도 4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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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배의 더부룩함보다

기억 저편이 먼저 부풀어 올랐다.


유학 시절, 생일 선물로 처음 받았던 그 인형.

IMG_7607.jpg He's The Healer Of Broken Hearts"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자)


상처 난 하트를 들고 있는 소녀에게 소년이 반창고를 붙여주는 따뜻한 모습의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가 담긴 인형.


나는 그 인형을 거의 금덩어리 다루듯 아꼈고,

그 인형이 학생 신분으로는 선뜻 사기 어려운 고가품이었다는 걸 안 뒤

인형을 가보처럼 다루게 되었다.


내가 그 인형을 얼마나 아끼는지 눈치챈 친구들은

내 생일이 오면 다 같이 돈을 모아 인형을 들고 나타났고.

나의 컬렉션은 그렇게 조금씩 늘어갔다.


IMG_7608.jpg Love Is The Best Medicine" (사랑은 가장 좋은 약)

그 시절 나는 늘 돈이 모자랐다.

책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었고,

악보와 교과서는

왜 그리도 비싸게만 느껴졌던지

그래서 이 인형들 가운데

내 돈으로 산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IMG_7610.jpg Love Is On The Right Track" (사랑은 올바른 궤도에 있어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인형은 자연스레 잊혔다.

인형보다 더 이쁜 애들이 생겼고

어느새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내가 사랑했던 인형도,

LP판도, CD도,

비디오테이프와 DVD도

모두 박스에 담겨

집 안의 창고 한편에 자리 잡았다.


얼마 전 짐을 정리하다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몽땅 중고서점에 가져다주었다.

큰 박스로 두 상자.

백 편은 족히 될 소장품들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달랑 중고 책 두 권.

고작 12달러 값이었다.


LP판과 CD는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잘 있나 눈도장만 찍고

다시 덮어 두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었지만

내 10대와 20대를

통째로 붙잡고 있던 음악의 흔적이어서

버릴 수가 없었다.


인형은 다시 꺼냈다.

책장 위에 하나 둘 올려두자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조금만 더,

딱 몇 개만 더...


그때 알게 되었다.

이미 단종된 제품이고, 이베이에서는 중고로 거래되지만

새 제품보다 비싼 프리미엄이 붙어 몇백 달러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다 20~30 달러짜리를 발견하게 되면

보물이라도 건진 듯 기뻐하며 사 모았다.

그리고 꽤 오래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좋은 주식 싼 가격에 잡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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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페북마켓에서는 5달러라니.

세금도 없고,

심지어 택배비도 없다.


그동안 '싸게 샀다'며 흡족해하던 내가

순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처럼 느껴졌다.

억울함은 잠깐,

나는 땅에 떨어진 황금을 본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 오늘,

그 황금을 주우러

남편까지 대동해 다녀왔다.




4달러, 5달러라며

거져라며 좋아하던 인형들.

지불하려 보니 현찰다발이 제법 두둑했다


48달러.

반백 달러나 된다.

지금 환율로 치면

7만 원이 훌쩍 넘는 돈


집에 돌아와

한 보따리 인형을 펼쳐 놓고 보니

잘 샀다는 흐뭇함과 함께

이상한 씁쓸함이 함께 밀려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데

혹자는 남은 20-30달러를 모아

몇백 달러를 만들고,

그걸 다시 불려

몇천 달러를 만든다는데,


나는 오늘도

크지도 않은 나의 태산을 갈아서

쓸 수도 없는 티끌로 만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태산을 녹여 만든 나의 티끌들


돈을 못 모으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순간마다

스스로를 쉽게 설득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이 정도쯤은 괜찮을 것처럼,

작은 즐거움 하나쯤은

인생의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만한 자격은

내게 충분히 있다고

끝내 나를 변호해 주는 사람 말이다.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태산을 녹여

티끌로 만드는 데에는

대단한 재주조차 필요 없다.

이런 작은 자기 위로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부자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정이 많고,

절약하기에는

기억과 추억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하루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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