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발칸반도의 나날
두브로브니크에서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라는 도시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날.
처음으로 든 생각은, 결국엔 내가 몬테네그로를 가긴 가는구나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혼자만의 작은 목표가 있었는데, 정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작은 나라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주일정도 머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 이유가 참 별 거 없는데, 왠지 모르게 나라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마침 지역 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딱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실질적인 휴식은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에서 이미 이뤄졌기도 하고, 여정 간에 워낙의 많은 계획 수정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포기해야겠다 싶었는데 또 결국은 이렇게 기회가 닿아서 오게 되었네.
두브로브니크에서 코토르까지는 그리 먼 곳은 아니었으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오갈 때와 마찬가지로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다 보니 중간에 겪는 입국 심사가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다. 심지어 탑승한 버스도 꽤나 노후했던지라 이동하는 데에 더 불편하더라. 결국 예정 도착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긴 했지만, 사실 이런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30분 정도면 늦은 것도 아니지 뭐.
왜 하필 코토르를 오기로 마음먹었는지 적어보자면, 거리상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적합하기도 했을뿐더러 사진으로만 봤을 때 올드 타운의 이미지가 강했던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머물며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끌렸고, 뒤쪽에 위치한 높은 지형과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의 조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은 약 4시간 정도였기에 가장 큰 관광 코스인 성벽투어를 가기로 했다. 사실 말이 성벽 투어지 거의 등산이나 다름없는데, 당일 아침 두브로브니크의 아침 날씨가 약간 쌀쌀했던지라 폴란드에서 추위에 대해 지독하게 겪었던 나는 차라리 조금 더운 게 낫지 싶어서 약간 싸매고 갔으나 이 선택이 이번 여행지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낮이 되니 한결같이 치솟은 온도와 습한 바닷바람이 부는 이곳은 반팔 반바지였어도 덥고 땀이 꽤나 났을 거 같은데 긴팔 긴바지는 정말 아니더라. 최대한 느긋하게 간다고 가는데도 땀이 뻘뻘 나더라.
그렇게 더운 날씨를 견뎌내고 거의 3/4 정도 왔을 때, 굳이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고민이 들었다. 성벽 정상은 꽤나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걸어 올라올 때의 가장 예쁘게 풍경이 보일 만한 곳에선 감상을 즐길 만큼 즐겼던 터인 만큼 이후 더 올라가는 건 순전히 정상에 대한 정복감을 위해서였다. 다만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결국 정상은 찍지 않고 내려왔다. 살면서 이곳을 다시 방문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면 어때? 내가 가고 싶지 않았는걸. 이미 만족스러울 만한 경험은 충분히 했기에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 여행이니까.
두브로브니크로 도착하고 난 뒤엔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성벽을 내려온 뒤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생소한 국가인만큼 이곳의 전통 음식 등을 체험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관광지라 그런지 근처의 지역은 하나같이 가격대비 평점이 너무 낮고 가격이 비싸길래,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흔하디 흔한 식당에 들어가서 피자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다만 오히려 기대가 적었던 편일까? 짧게나마 있던 코토르의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 이 식당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약 한 시간 동안 성벽투어를 진행하며 피로와 허기가 쌓였던 탓인지 이 간소한 식사조차 아주 맛있었고, 그러다 보니 술을 몇 잔 더 마시며 기분 좋은 알딸딸함까지 밀려왔다.
비록 혼자 온 데다 한국은 이미 밤늦은 시간이라 연락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옆테이블의 멋진 노신사분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휴양지로서의 느긋함을 제대로 즐겼다. 얼마나 이때의 기분이 좋았던지, 식당을 나오고 난 후에도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면서 도시를 배회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돌아가는 버스는 이곳에 도착할 때와 달리 크고 쾌적한 데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편하게 왔다. 역시나 귀찮은 입국심사를 거치던 중 버스에 타고 있던 이스라엘인 두 명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잡혀가게 되어 도착 시간이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크로아티아에 도착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까지. 이곳에도 참 짧지 않은 시간을 재밌게 있었다. 다음번에 가는 곳을 마지막으로 나의 이번 여행은 정말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후에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프랑스와 스페인을 방문할 예정일만큼 여행과는 또 느낌이 다를 테니까.
물론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그 도시를 간다면 어떤 기분일지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당장은 미리 걱정한다기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행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과장 없이 너무나도 행복했던 나라였다.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레브만 잠깐 보고 크로아티아는 크게 볼 것이 없다고 평가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뻔할 정도로 너무 마음에 드는 나라였어. 이미 몇 번이나 적고 또 적었지만 언젠가 꼭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도 나를 기쁘게 맞아주는 나라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