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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Jun 16. 2021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아이다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혼을 위한 위로.

 우리는 삶의 길 위에서 늘 고민에 빠진다.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샛길로 빠져야 하는지. 하지만 그 모든 방법을 다 써봐도 지독한 삶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아이다호>(원제 : My Own Private Idaho)에는 길의 감별사이자 끝이 없는 길을 여행하고 있는 '마이크'가 있다.

출처 : 영화 <아이다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가 유독 툭툭 끊기는 느낌을 주는 것은 마이크가 앓고 있는 기면 발작증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기면 발작증이라는 설정이었을까? 그는 삶에서 고통스럽거나 불안한 상황이 올 때마다 잠에 든다. 그는 길 한복판에 서있으며 자신이 온 곳을 향해 돌아가는 것(엄마를 찾는 것)도 어렵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잠들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이 끔찍한 현실을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며 잠들어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을 어딘가로 이끌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스콧은 부유하지만 일종의 일탈로 길거리 생활을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느낌이 다른 마이크를 신경 써주고 어릴 때부터 학습된 친절함으로 약한 그를 돕는다. 스콧은 이 영화에서 마이크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유사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스콧이 그를 안고 있는 모습이 몇 번 나오는데 피에타상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스콧마저도 그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잠깐의 일탈을 마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동시에 길의 아버지였던 밥마저 죽음에 이른다.

영화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가다가 점점 극명하게 스콧과 마이크의 상황을 대조시키면서 계급의 문제로까지 확대해나간다. 모닥불 앞에서 처음으로 마이크가 사랑을 고백할 때는 가까워지고 싶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것 같다며 이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내지만 장례식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콧은 격식을 갖춘 아버지의 장례식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밥을 추모하는 길거리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관 앞에서 노래 부르고 슬픔을 토해낸다. 스콧은 멀찍이서 그 광경을 쳐다보기만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서 스콧과 마이크는 결국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스콧은 남자끼리는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이크는 그렇지 않았다. 스콧은 돌아갈 곳이 있지만 마이크에게 삶이란 차 없이 두 발로 도로 위를 서 있는 것과 같다. 심지어 언제 자기 자신이 그 길바닥에서 잠들지도 모르는. 그런 마이크에게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Have a nice day!")은 가장 축복 같은 일일 것이다. 그는 또다시 그만의 사적인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의 길 위에서 잠에 든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에게서 누군가는 신발과 짐을 털어가고 끝내 누군가가 그의 육신마저 차에 태우고 간다. 영화는 끝내 그 어떤 답도 주지 못하고 멀찍이 잠든 그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는 이 길이 끝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유는 그가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좌절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현실을 잊고 잠에 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스콧을 향한 그의 사랑은 무엇보다 순수했다. I love you. But you don't pay me.라는 대사는 그가 살아온 세상 안에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는 길의 감별사이며 그 길의 끝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고단한 그의 삶에 편히 잠들어 쉴 수 있는 휴식처라도 생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는 잠에 든다.
잠에서 깨면 그의 아이다호가 달라지길 바라며.
누군가가 자신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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