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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Jul 25. 2021

신인류의 탄생,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 해석

출처 : 공각기동대

 모토코 소령은 9과 소속이다. 9과는 양지에 있는 6과를 대신해서 국가의 골치 아픈 사건들을 처리한다. (두 팀의 숫자가 6과 9인 것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토코는 인간의 기본적인 신체 현상을 겪기도 하는 기계의 몸을 하고 있다. 그녀가 그럼에도 9과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정부를 통해 의체 안에 고스트가 있음을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인 2029년에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짓는 유일한 기준은 의체 또는 신체 속에 존재하는 영혼(고스트)의 존재 유무이다. 영화는 모토코가 공인 프로그래머를 빼돌리려는 외교관을 죽이면서 시작한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국가 및 기업에게 필수불가결한 인력이 되었다. 인간의 고스트 또한 통신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서 이를 해킹해 조종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인간의 고스트를 해킹하는 인형사가 등장했다. 영화는 트럭 운전사를 통해 인형사의 해킹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프로그래머를 통해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얼굴도 비추지 않는 아내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해킹을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고스트가 해킹되어 거짓 기억이 심어져 이를 통해 아내가 아닌 정부 관계자의 고스트를 해킹하려고 이용된 것이었다. 그는 아내도 딸도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끔찍한 것은 그 거짓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거짓 기억 데이터는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거짓임을 영영 알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가 진실이라 믿고 살았다면 그 기억을 과연 그의 삶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를 본 모토코는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그녀도 어쩌면 그의 거짓 기억과 같이 한낱 데이터로 이루어진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뇌와 연결된 방대한 네트워크와 정보는 그녀의 자아를 형성시켰다. 우리는 또다시 궁금하다. 과연 그런 모토코를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일까? 그녀는 우연히 건물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어떤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자신과 너무 닮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그녀에게 의문의 의체 하나가 나타난다. 의체는 생산라인 해킹으로 인해 멋대로 만들어졌고 스스로 공장을 탈출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의체 안에는 고스트가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인형사의 고스트였다. 알고 보니 인형사는 외무성에서 외교 문제를 덮으려고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정부는 자신들의 어두운 이면을 가리기 위해 인형사를 없애려 했으나 자아가 생겨난 그는 의체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네트워크를 돌아다녔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의체가 존재한 적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의체는 단지 껍데기(shell)일 뿐이었다. 이미 인형사는 정부에 의해 형성된 네트워크와 정보를 기반으로 인격이 형성된 하나의 생명체이자 인간이 되어있던 것이었다. 그는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6과는 9과 몰래 의체를 빼돌리고, 모토코는 이를 추적하며 긴 전투를 벌이다 바토의 도움으로 인형사의 의체에 자신의 고스트를 연결하게 된다. 인형사는 자신과 닮아있는 모토코를 만나기 위해 자의로 9과에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네트워크를 통해 모토코를 알게 되는데, 자신이 그녀와 닮았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녀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체가 되었음을 인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형사는 자신에게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 생명으로서의 기본 프로세스가 없어 생명체로서 불완전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모토코에게 융합을 제안한다. 둘이 결합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생명체가 수시로 변종을 네트워크에 퍼뜨리길 원한다. 인간이 자신과 닮아있으면서도 개성을 가진 자손들을 계속해서 남기듯이 말이다. 결국 그녀의 고민과 갈등은 인형사의 제안에 안착하게 되고 바토의 도움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의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 그렇게 신인류가 탄생한다.     

 

영화의 중반부에 나오는 노래에서 ‘합일을 위해 천신이 강림하사 아침이 밝고 호랑지빠귀 지저귀나니’ 라는 가사를 통해 우리는 이 영화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번식과 비슷하게 모토코와 인형사는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융합하며 더 방대한 형태의 새로운 고스트를 가진 인간을 탄생시킨 것이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맞듯이, 모토코와 인형사는 새로운 형태의 인류를 탄생시키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껍데기 안에 갇혀 있던 모토코는 그것을 벗어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사족보행을 하던 인간은 두 발로 걷게 되었고, 이제는 신체라는 껍데기를 벗어나 네트워크 안에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가 ‘Ghost in the Shell’ 인 것은 껍데기(신체)가 아닌 영혼에 방점을 찍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끊임없는 발전 안에서 우리의 신체능력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미 스마트폰이 이미 우리 뇌의 일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에 이미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서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미래를 체험했다.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러한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딜레마는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공각기동대>는 인간의 정의를 확장하고 새로운 인류를 관객에게 제시하며 생각할 여지를 마련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 뒤를 잇게 될 인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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