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지난 10월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종합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우 겸 화가인 정은혜 작가. (사진출처=연합뉴스)



- 장애인 노동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본다면 -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하루 종일 동굴 같은 방에만 있었어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사진출처=네이버이미지)



지난 10월 30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의 언니 역을 맡으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배우이자 화가 정은혜 씨가 참고인으로 증인석에 서서 말했다.
화면 속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당사자로서 꺼낸 고백이었다.

그의 20대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동굴.

방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고립이 깊어질수록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
정은혜 씨에게는 조현병이,
어머니에게는 뇌졸중이 왔다.

장애인 한 사람의 고립이 가족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적 현실.
이는 결코 한 가정만의 비극이 아니다.



정은혜 작가 자화상 (사진출처=네이버 예술작품)



그러나 2019년,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월급을 받고, 스스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제 가족이 제 덕에 살고, 엄마도 제 카드를 써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가족들에게 당당히 결혼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정은혜 작가 유튜브 채널 캡쳐 (니얼굴_은혜씨 Eun hye)



아침이면 남편과 함께 출근해 동료들과 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먹고, 강의를 하고,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예전에는 청소 일을 했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 강의하는 강연자로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은혜 작가 유튜브 채널 캡쳐 (니얼굴_은혜씨 Eun hye)



정은혜 씨는 국감장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제 삶을 바꿔 놓은 일자리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우려를 덧붙였다.
“예산이 줄어 없어질까 봐 걱정돼요.”

동굴 밖으로 나온 삶이, 다시 정책과 예산 때문에 사라질까 두렵다는 고백이었다.



정은혜 작가 유튜브 채널 캡쳐 (니얼굴_은혜씨 Eun hye)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쉽게 배제되는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 일자리에서 장애인은 단순 생산 노동자가 아니라, 권익옹호 활동, 문화예술 창작, 인식개선 교육과 강의등을 통해 비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임금을 받고 사회에 기여하는 명백한 노동이다.

다수 장애인 단체들은 말한다.
“노동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최근 장애인고용공단 서울본부 앞에서 열린 제3회 전국장애인노동자대회에서도 같은 구호가 울려 퍼졌다.
효율, 생산성, 수익성이라는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구조 속에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시작도 전에 기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복지 혜택이 아니다.

“시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국가가 권리를 근거로 일자리를 보장하라.”

"그리고 정권이나 예산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법으로 보호하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선임 동료상담가로 활동하는 장수만 씨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다. 과거에는 돌봄을 받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다른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상담가로 일을 하고 있다.
취업 정보를 연결하고, 고용공단과 연계하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한다.

작년 12명이던 참여 인원은 올해 25명으로 늘었다. 주 15시간 근무, 월 79만 원. 숫자로 보면 분명 진전이다.

그러나 하루 3시간, 주 15시간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장애인들은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으니,

일을 할 필요 없지 않나? 라는 의문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장애인 중 생계급여 수급자들은 오히려 수급비가 깎이며 역효과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말한다.
“하루 6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일해야 진짜 자립이 가능합니다.”

보건복지부의 재정지원 장애인일자리 사업은 고령,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주 14시간으로 제한한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법적으로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되어

주휴수당 없음,
연차 없음,
퇴직금 없음,
근로지원인 배정 불가.

즉, 일은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반쯤만 인정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그 민간단체는 다시 장애인 노동자를 1~2명씩 여러 기관에 나눠 보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서류상 고용주는 위탁단체지만, 실제로 출근해 지시를 받는 곳은 또 다른 기관이다.

문제는 이때 발생하게 된다.
임금, 근무환경, 차별과 괴롭힘, 안전사고 같은 문제가 생기면
어느 쪽도 선뜻 책임을 지려고 나서지 않는다.
“고용은 우리가 했지만, 일은 저쪽에서 시킨다”
“우리는 그냥 함께 일할 뿐, 고용주는 아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정작 당사자인 장애인 노동자는
자신을 지켜줄 주체를 찾지 못한 채 회색지대에 방치된다.





상위 20대 기업 중 13곳이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3.1%)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1.95%. 현대차는 매년 후퇴.
법을 지키지 않아 낸 고용부담금만 900억 원대.
말하자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비용”을 매년 지불하는 셈이다.

CSR, ESG를 말하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책임은 미루는 현실.
장애인이 민간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름만 존재하는 제자리 걸음 정책일 뿐이다.

보통 이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 문제를 왜 비장애인이 책임져야 합니까?”

사회에서 연대란, 나와 무관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의 나를 위한 안전망이다.

장애인 복지가 좋은 나라일수록
비장애인의 삶도 함께 좋아진다.
미국과 북유럽이 그 예다.



정은혜 작가 유튜브 채널 캡쳐 (니얼굴_은혜씨 Eun hye)



“운이 좋아서” 가능한 삶은 권리가 아니다.

정은혜 작가가 국정감 감사에서
“저는 운이 좋아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많은 발달장애인 친구들은 아직 기회가 없어요.” 라고 말햇듯이

운이 좋아서,
좋은 부모를 만나서,
좋은 공무원을 만나서,
의지가 강해서,
특별한 스토리가 있어...

그런 모든 조건이 붙어야만 가능한 삶이라면,
그건 권리가 아니다.

권리는
누구에게나
어느 지역에서나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설명 없이 보장되는 삶이어야 한다.

2025년 지금, 한국 사회는 장애인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출근길 시민 불편의 원인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비용 항목으로?

이 질문들은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한다.

“장애인의 일자리를 정말 ‘권리’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에 대한 답이
누군가의 동굴 같던 방을 다시 열어젖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고,
다시 문을 잠가버리는 냉혹하고 슬픈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서 권리는 ‘운이 좋았다’는 말이 앞에 붙는 삶이 아니다.
조건과 설명이 필요 없는,
그냥, 마땅히 보장되는 삶이어야 한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당연히,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장애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동을 걱정하지 않고 거리를 다니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사회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방향이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다음 시대의 기준이다.



정은혜 작가 유튜브 채널 캡쳐 (니얼굴_은혜씨 Eun 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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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참고]


•니얼굴_은혜씨 유튜브채널 @_caricatureartisteunhye7869

•국회 유튜브 채널

•국회_의회법률정보포털

•연합뉴스, 내외경제TV, 카톨릭평화방송/신문, TV조선, 경향신문, 한겨레, 오마이뉴스, 인사이트, 이데일리,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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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경상 매일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