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관성에 갇힌 욕심과 지혜의 문턱
또 한 해가 간다. 그리고 다른 한 해가 온다.
어느덧 달력 한 장이 쓸쓸하게 보이는 시기. 창가에 걸린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는 두 개의 시간이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보내는 해(年)에게는 미련과 아쉬움을 담아 붙잡으려 하고, 새로 오는 해(年)에게는 헛된 기대와 불안을 걸어 미리 통제하려 합니다.
이맘때면 우리는 하루에 두 해(年)와 공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시간의 길이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심장 박동과 감정의 깊이는 그 공간의 폭과 길이를 아주 다르게 인식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데,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끝없이 두 손을 내밀어 잡으려 애씁니다.
떠나는 미련, 들여야 하는 불안
떠나는 해는 내가 소유했던 시간, 나의 흔적이 새겨진 낡은 초상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놓친 기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덩어리져, 우리는 그 초상을 차마 놓지 못하고 붙잡습니다. 이는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입니다.
반면, 새로 오는 해는 알 수 없는 여백의 땅입니다.
그 여백에 우리는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는 욕심과 기대를 심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지 못합니다.
이 두 해(年)와의 공존은 곧 인위적인 욕심과 자기애적인 자위(自慰)의 발로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저항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오만함 속에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떠나보내야 할 해를 붙잡으려 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들여야 하는 미래를 미리 재단하려 하는 이 이중성 속에서 평화는 사라집니다.
같은 물, 다른 그릇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이 시간의 강물은 결국,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속도로 흐릅니다.
노장 철학이 가르치듯, 우리가 애써 저항할 필요가 없는 순리(順理)입니다.
결국 이 같은 시간을 누가 다르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시간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담는 그릇과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미련을 끊기 위함이어야 하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불안을 잠재우고 현재의 발걸음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고독한 결단, 맑은 영혼의 자리
이 쓸쓸한 연말의 기운은, 우리에게 외부의 소음과 욕심을 걷어내고 내면의 가장 맑은 자리로 돌아오라는 요청입니다.
우리가 진정 놓아야 할 것은 떠나는 해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간에 대한 집착이며, 우리가 진정 맞이해야 할 것은 새로운 해의 계획이 아니라 새로운 순간의 담백한 수용입니다.
이 모든 고독한 성찰 끝에, 우리는 깨닫습니다.
미련과 욕심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오직 현재라는 순간에 집중하여 가장 충만하게 존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고요한 영혼의 자리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지혜의 문턱을 넘는 우리 스스로의 방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