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대포항

늦가을 밤바다의 정화 의식

by 담우

일상의 반대로, 공간의 변화를 갈망하며


"공간의 변화는 동기부여를 유발하고 동기부여는 공간의 변화를 창조한다."

이 오래된 명제가 심장을 쳤습니다.

가을의 끝자락, 모든 것이 건조하고 멈춘 듯 느껴지는 일상이라는 껍질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바다가 절실했습니다.

이성적 판단을 뒤로하고, 무작정 일상의 정반대로 나를 던졌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속초의 바다는 칠흑의 장막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밤바다의 거친 숨소리와 그 특유의 짠 내음이 나를 유혹하였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속초해변에서

나는 수년간 세속에 찌든 사기 덩어리들을 검은 너울 속으로 토해내었습니다.

그 격렬한 토악질에 검은 파도는 하얀 포말을 뿜어내며 격하게 화답했습니다.

그것은 질책이 아닌, 기꺼이 나를 안아주고 정화해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았습니다.



불 꺼진 항구, 술나방들의 연대


자정 너머의 대포항은 스산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개발의 과욕이 남긴 쓸쓸한 불빛만 항구를 비추는 듯했습니다.

텅 빈 공간에서,

나는 마치 술나방처럼 새벽의 유희를 갈망하는 존재를 기다린 듯 불 켜진 작은 횟집에 낚여 들어갔습니다.


낯선 새벽의 유희에 흥분한 한패의 일행이 걸쭉한 농담과 함께 밀려들어 왔습니다.

"가을걷이 끝내고 바깥 놈 버리고 나왔다"는 유쾌한 고백과, 여름에 담가 둔 복분자술을 꿰찬 그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 낯선 시간과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술잔은 파도처럼 넘실거렸고, 익명 속에서 나누는 연대는 가장 진실했습니다.

모든 물회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질 필요 없었기에, 그 짧은 동거는 가장 자유로웠습니다.



물회 한 그릇, 푸른 파도의 재촉


새벽의 격함이 끝난 뒤, 아침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했습니다.

새벽의 일탈을 넘어선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나는 복분자술이 왜 그렇게 달고 좋았는지, 그 깊은 해방감을 깨달았습니다.

뱃사람들의 거친 속을 풀어준다는 물회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속초해변 아침 바다


새콤달콤 아삭아삭 쫀득쫀득 미끌미끌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감각의 향연!

한 그릇을 뚝딱 들이키고 국물에 공깃밥까지 말아 넣으니, 밤새 토해냈던 세속의 독 대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아침 바다는 여전히 푸른 파도를 밀어내며 하얀 너울을 뿜고 있었습니다.

나를 토해내고, 다시 생명의 물을 채운 채, 나는 홀로 그 잔잔한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의 공간은 변했고, 새로운 동기부여가 창조되었습니다.




*담우의 노트 : 일상의 반대로 움직였던 그 작은 일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