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

끝없는 바다 안개 뒤에 숨겨진 연민에 대하여

by 담우


어리석은 특권, 그리고 심연


인간은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바로, 스스로 잔인해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그 잔인함이 어디까지, 얼마나 깊이 갈 수 있는지를 목도해야 했습니다. 검은 바다 위에서 생존이라는 원초적 조건 앞에 내던져진 인간들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얇은 포장지를 찢어버리고 가장 추악한 본능을 드러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신을 도륙하는 그 광경은 공포를 넘어선 지점에 있었습니다. 극도의 잔인함은 감각을 마비시켰고, 나의 입가에는 헛웃음이 휘감았습니다. 그것은 기쁨이나 광기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추악함의 총량을 목격했을 때, 도덕적 저울이 부서지며 내는 텅 빈 소리, 비참한 깨달음의 웃음이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한, 살기 위한 추악함


그들은 단순한 쾌락 때문에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살인하고, 살기 위해서 살인했습니다. 이 역설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슬픈 지점입니다. 생존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괴물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비루하고 구차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그 추악한 행위 뒤편, 서늘한 눈빛 속에 숨겨진 연민을 보았습니다.


그 연민은 살인자가 피해자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닙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바로 그 순간, 괴물로 전락한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추악함은 본능일지언정, 그 행위를 수행하는 인간은 여전히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존재였기에, 그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은 잔인함과 공존했습니다. 그 간극에서 피어난 희미한 인간성이 바로 연민이라는 이름의 안개처럼 나를 찾아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안개


영화의 제목처럼, 인간의 잔인함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안개(海霧)였습니다.


해무는 수평선을 지우고, 방향 감각을 빼앗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 윤리의 기준이라는 ‘빛’을 모두 가려버립니다. 안갯속에서는 오직 '나'와 '생존'이라는 당장의 욕구만이 명료하게 남습니다. 인간의 잔혹성이 끝없이 확장될 수 있는 이유는, 이 해무 속에서 우리가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원초적인 짐승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해무는 잔인함을 감추는 동시에, 그 잔인함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고독과 고통마저 감춥니다. 우리는 그 안갯속에서 괴물들을 보았지만, 그 괴물들이 짊어진 인간이라는 숙명적 무게까지도 보았습니다.


그 밤, 나는 영화를 덮고도 오래도록 헛웃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잔인함을 증오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언제든 해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서글픈 인정이었습니다.



#영화 '해무' | 개봉 연도: 2014년/감독: 심성보/출연:김윤석, 박유천, 문성근, 한예리, 이희준, 김상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