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고추잠자리의 염장질

쏠로의 가을, 고대 황조가(黃鳥歌)를 부르다

by 담우

쏠로의 오후, 뜻밖의 방문객

10여 년 전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습니다. 집 앞에서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죠. 가을 들녘의 황량함과 고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쏠로'의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마치 운명처럼, 혹은 조롱처럼, 뜻밖의 방문객 한 쌍이 불청객으로 날아왔습니다.

내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두 마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그들의 정겨운 자태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나의 어깨는 순식간에 생명의 밀회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필이면 이 내 몸이더냐

나는 무려 고대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를 떠올릴 만큼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울사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21세기, 스마트폰을 든 쏠로에게 닥친 것은 바로 '고추잠자리의 염장질'이었습니다.

어찌 널디넓은 가을 들녘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이 외로운 이내 몸의 어깨를 선택했단 말인가.

나의 넓고 오지랖 넓은 어깨를,

사랑의 밀실로 착각한 모양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본 생명의 춤

그들은 한참 동안,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연애질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어 이 기이하고도 숭고한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확대된 그들의 사랑의 춤은, 극도의 고독 속에서 바라보는 생명체의 순수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얇은 날개와 섬세한 몸짓, 꼬리를 맞댄 완벽한 고리는, 나에게는 없지만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는 완전한 짝지음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고추잠자리의 염장질에 가을이 불타는구나 싶었지요.


묘한 온기와 쓸쓸함 사이

한참 동안 연애를 다 끝낸 후, 그들은 만족스러운 듯 유유히 날아갔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내 어깨에는 찰나의 온기와 쓸쓸함만이 희미하게 남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목격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외로운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치열한 생명의 섭리를 목격한 일입니다.

나의 외로움을 비웃듯 날아와, 나의 오지랖 넓은 어깨 위에서 삶의 진리를 보여주고 간 고추잠자리들.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가을이 불타는 것은 단지 단풍 때문이 아니라,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랑을 나누는 자연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나는 다시, 쏠로의 한가로운 가을 오후로 돌아왔습니다.

웃음이 났지만, 이제 그 웃음 속에는 고독과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글을 다시 정리하고, 사진 속 어깨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깨달았습니다.

보라색 꽃무늬가 가득했던 저의 남방이 아마도 그들에게는 가장 달콤하고 비밀스러운 밀회 장소로 보였나 봅니다.

하염없이 외로웠던 나의 어깨가, 그들의 눈에는 활짝 핀 유혹의 꽃밭이었던 것이지요.

쏠로의 가슴은 모르고, 고추잠자리만 알았던 사랑의 색깔이었습니다.



|담우의 노트| 이 글은 '담우의 기록 서랍'에 두었던 사진과 글을 가지고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