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위의 담금질

기한이 정해진 성벽 아래서

by 담우

시한부의 안정, 유예된 삶의 현장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몸을 싣는 지하철은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첫 번째 의식이다.

공기업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은 달콤한 유혹이자, 동시에 내 삶을 가두는 투명한 격자무늬 철창이기도 하다. 어제와 똑같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나만의 일들. 나는 그 안에서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발을 놀리며 무한궤도를 달린다. 어떤 이는 그 궤도가 견고해서 부럽다 말하지만, 궤도 위를 달리는 이는 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때론 얼마나 숨 가쁜 유배인지를.


공기업이라는 견고한 요새로 출근하는 길은 매일 아침 낯설다. 사무실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이물감. 나에게 허락된 안정이란 '기한'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시한부의 평온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도 나는 남들보다 더 세차게 발을 굴리고 있다. 이 궤도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을 나를 연마하는 뜨거운 대장간으로 삼기 위해서다. 계약서에 적힌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일상의 시계추는 가혹하게 흔들리지만, 그 진동은 나를 무너뜨리는 파동이 아니라 내 안의 불순물을 털어내고 나를 더 단단하게 벼리는 망치질 소리에 가깝다.



각자도생의 풍경 속에 섬으로 남다


사무실 책상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십 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흐른다. '각자도생'이라는 날 선 단어가 일상이 된 시대, 사무실 책상 너머로 보이는 동료들의 등은 각자 하나의 섬이다. 우리는 같은 배에 탔으나 서로의 노 젓는 소리조차 외면한 채 자신만의 생존에 몰입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같은 시간을 소비하고 앉아 있지만, 나는 그 풍경 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채 겉도는 기름방울과 같다.


높디높은 현실의 벽은 나를 보호하는 성벽이 아니라, 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전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는 임시방편의 벽일 뿐이다. 누군가는 저 견고한 성 안으로의 편입을 꿈꿀지 모르나, 나에게 이곳은 내일을 위한 담금질의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한이 정해진 신분이라는 자각은 동료들과의 짧은 담소 속에서도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침묵하게 만들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안의 근력을 키우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실오라기 같은 빛을 낚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태로운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가슴 한복판에 품은 한 줄기 빛 때문이다. 하수구 철창 아래 갇혀서도 기어이 햇빛의 방향을 읽어내던 그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이 내 안에도 살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퇴근길 차가운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창 너머로 비치는 도시의 불빛들은 나에게 속삭인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치열한 투쟁 중이라고. 남들은 불안정한 비정규의 삶이라 말할지라도, 나는 이 불투명한 시간 속에서 나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영혼을 갈아 넣고 있다.



묵묵히, 그러나 뜨겁게


나의 투쟁은 화려한 승전보를 울리는 전쟁이 아니다. 내일 다시 출근할 수 있음을 감사해하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오늘 해야 하는 나만의 일을 정직하게 묵묵히 해가는 소리 없는 응전이다. 삶이 나를 쳇바퀴 속에 가두고 기한을 정해놓았을지언정, 내 마음의 지향점까지 규정할 수는 없다.


나는 오늘도 궤도 위에서 나를 담금질하며 하늘을 건져 올린다. 언젠가 이 기한이 다하고 스스로 이 문을 열고 나가는 날, 흔들리는 틈새에서 빛을 발견했던 이 치열한 감각은 나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비좁은 철창 사이로 기어이 고개를 내밀던 그 초록의 얼굴처럼, 나 또한 이 각자도생의 계절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기어이 나만의 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