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위에서 배운 생존의 문법
이 글은 몇 해 전 텃밭을 가꾸다 마주친 방아깨비 한 쌍의 기록입니다.
텃밭의 가을볕 아래, 기묘한 장면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커다란 몸집의 방아깨비가 제 몸 절반만 한 작은 방아깨비를 등에 업고 풀잎 위를 조심스레 거닐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겨워, 새끼를 등에 업고 어디론가 향하는 헌신적인 어미의 나들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자연의 진실은 나의 서툰 짐작을 비웃듯 다른 이야기를 건네왔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동행이 아니라, 종족의 내일을 잇기 위한 암수의 치열하고도 은밀한 '밀회'였다.
암컷이 수컷을 등에 업고 사랑을 나누는 방아깨비 특유의 행태는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상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끌고, 큰 존재가 작은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간적 정의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밀회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러한 우월적 자만심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저들에게는 저들만의 질서가 있고, 수억 년의 진화를 통해 완성된 가장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생존의 문법이 존재한다. 인간의 잣대로 저들을 인식한 것은 명백한 나의 오류였다.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행태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들의 움직임은 나름의 이성적 행위이자 고도의 생존 전략으로 다가왔다.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몸을 겹치고, 서로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며 가을볕 아래를 유영하는 모습은 그 어떤 이성의 행위보다 숭고해 보였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육체적 조건과 생존의 방식 안에서, 그들은 최선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방아깨비'라는 그 정겨운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모습은 가을날의 공기처럼 투명하고 따스했다.
방아깨비의 밀회를 엿본 이 인간을 탓하지 않길 바란다. 그 찰나의 목격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편견이라는 빗장을 열고 보니, 텃밭의 작은 곤충 한 마리도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아무쪼록 저 방아깨비의 바람대로 그 일생을 아무 탈 없이 다하길 빌어본다. 자연의 신비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가 '요상하다'고 고개를 돌리는 그 지점에서, 가장 정직하고 강인한 생명의 노래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에필로그
몇 해 전, 작은 텃밭을 일구다 우연히 마주했던 '방아깨비의 낯선 밀회'.
처음에는 그저 요상한 모습에 발길을 멈췄으나,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는 인간의 서툰 잣대로는 결코 다 읽어낼 수 없는 숭고한 생존의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나의 편견을 내려놓고 본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정교했습니다. 밀회를 나누던 그 방아깨비 한 쌍은 나에게, 타자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도 어느 풀숲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사랑하고 살아내고 있을 그 작은 생명들에게, 그날의 깨달음을 빌려 고마운 인사를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