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량이 줄어든 게 아니라, 선이 생긴 것뿐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넓어지고, 점점 더 타인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멋도 모르고 내가 조금만 참으면 관계가 우호적으로 유지된다고 믿었다. 상대방도 그랬겠지만, 그땐 ‘참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며 나만의 기준과 선이 생기자 불호가 또렷해졌다.
이제는 누군가 그 선을 넘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참을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착하다는 것도 안다.
다만 내가 심리적으로 불편하거나 불쾌함을 느끼는 기준에 여러 개 걸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나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다. 계속 마주쳐야 하면, 결국 사소한 일에도 괜한 분노가 쌓인다.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을 인생에서 네 명쯤 만났다.
대학생 때 처음 만났으니 15년 남짓한 시간 동안 네 명이라면,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문제는 나 아닐까?’
가장 처음 분노를 느꼈던 사람은 대학교 동기였다.
처음부터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해질수록 알게 된 그의 대화 방식이 나를 지치게 했다.
칭얼거림, 혹은 투덜거림.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걸 표현하는, 어쩌면 그 나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흐릿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금세 잊는 편이니까.
다만 분명한 건, 그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그를 피하고 싶어 졌고,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를 마주치는 순간마다 이유 없는 분노가 치솟았고,
그는 그런 나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같은 대화 방식을 반복했다.
지금은 그를 자주 보지 않지만, 그 시절을 함께 겪은 친구들은 여전히 기억한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결국 분노로 바뀌었다는 것을.
그 일을 시작으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참을성은 점점 줄어들고, 끝에는 분노만 남았다.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하게 되는 내가 나쁜 걸까.
인성이 덜 된 걸까.
과연 나는 그들에게 분노할 자격이 있을까.
왜 나의 친절과 아량은 특정한 사람들 앞에서만 유독 빠르게 소진되는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 오래 참아온 나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불편함을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쌓여 어느 날 분노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묻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참아왔다는 신호는 아닐까.
물론 그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 역시 더 성숙해져야 하겠지.
그 과정의 갈피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못하게 된 이 변화만큼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로만 남기지 않고
함부로 나쁘다고 부르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