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 저, 박철홍 역 / 나남
주변에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지지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 역시,
내가 궁금해하고 의문 시 여겼던 것들을 아주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이론가 및 사상가를 만났을 때다.
존 듀이(John Dewey)는 내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 그리고 예술을 풀어나가고자 했던 방향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존 듀이는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교육가로서 미국의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 pragmatism)와 민주주의의 사상적 뼈대를 세우는 데 기여를 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교육'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이외에도 인식론, 미학, 예술, 윤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오늘 소개할 책,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듀이가 미학과 예술에 관해 저술한 책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예술을 전공으로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예술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주장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무엇보다도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기존의 예술 관련 종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나라 예술 정책과 기조의 변화에 존 듀이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본다. (물론 그의 취지와 의도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거리가 많지만... )
이 글에서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바탕으로 존 듀이가 바라보는 예술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다음의 그림을 살펴보자.
그림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즉, 해당 그림에 대한 정보(누가 그렸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어떤 미술사조인지 등)가 많을수록 작품을 잘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그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보고 그림을 본다고 해서, 그림으로부터 무언가 더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그림에 대한 정보를 찾고 알아두는 것은 다소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림은 느낌이지!'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정보 없이 그 그림을 온몸으로 부딪혀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뒤샹의 <샘>과 같이 난해한 작품을 만나기라도 하면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 있어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몸으로 부딪혀 느끼고자 하는 것도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듀이는 예술에서 '미적(심미적) 경험'을 강조했다. 듀이는 모든 경험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그 생명체가 사는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다. 내가 그 사람과 만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세계관과 '그'라는 세계관이 서로 만나 상호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듀이는 예술작품과의 만남 또한, 나와 예술작품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긴밀한 상호작용이며,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하나의 경험', 곧 '미적 경험'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듀이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이라는 경험은 단순히 한 개의 경험하고는 구분된다. 그것은 다양한 요소들이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통일체를 이뤄 다른 경험과는 구별되는 그것만의 자족성, 독특성, 완결성을 지니며, 심미적 성질을 띠는 경험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하나의 경험'은 찾아볼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매일 반복되는 '식사'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남아있는 '그 식사'는 다른 날의 '식사'의 경험과 다르다. '그 식사'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식사였을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그 장소에서 들었던 식사였을 수도 있다. 어떤 배경에서든 '그 식사'가 구별될 수 있는 까닭은 그때 상황의 다양한 요소들이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되고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경험'은 다른 일상적 경험과 구분되어 개인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경험'은 '그 식사', '그 폭풍', '그 깨어진 우정' 등과 같은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단일한 특성을 갖는다. 하나의 경험이 이와 같은 단일한 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경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경험 전체가 하나의 독특한 질성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 <경험으로서의 예술 1>, 92p.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술작품과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경험', 곧 '미적 경험'에 이를 수 있을까?
듀이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의미 있게' 볼 때 비로소 진짜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한다고 보았다. 이때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지각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재창조'의 행위를 필요로 한다.
참된 의미에서 감상자가 예술작품을 제대로 '지각하기' 위해서는 감상자도 자기 자신의 경험을 '창조'해야만 한다. 감상자가 경험을 창조하려면 감상자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예술가가 경험한 것에 필적할 만한 경험을 해야 한다. (...)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이러한 '재창조'의 행위가 없다면 그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작품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 <경험으로서의 예술 1>, 124p.
듀이는 재창조의 행위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의 훈련을 통한 지식과 기술의 연마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미적 지각은 진지한 훈련 없이 특별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예술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훈련은 단순히 예술작품에 대한 지식의 습득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지식과 나의 경험, 그리고 그 두 가지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재창조하는 통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듀이의 예술론은 비단 우리가 어떻게 예술작품을 봐야 할 것인가에 한해서만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듀이는 '하나의 경험'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술에서의 미적 경험을 다루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듀이는 미란 우리의 일상적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고급스러운 것이나 매일의 삶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과정을 거쳐 완결된 경험에 들어 있는 질적 특성이 명료하고 강렬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미는 일상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이과 같은 관점은 예술에서의 경험이 일상의 경험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이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적 경험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듀이의 교육 철학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으로, 듀이의 교육 철학에서 '경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교육에서 '가르침' 보다 '배움'과 '성장'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지속적인 배움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질 높은 '경험', 곧 '하나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교육의 경험은 창조적 삶의 경험으로써 인간의 성장을 설명하고, 그 성장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듀이는 교육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하나의 경험'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 '예술에서의 심미적 경험'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교육에서의 질성(quality)적 사고라든지, 경험의 재구성, 창조적 지력 등 자신만의 독특한 개념들을 효과적으로 펼쳐 나갔다.
듀이의 이론적 관점은, 예술과 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예술이 기존의 장르, 주제 중심에서 벗어나 '사고'의 개념으로 확장시켜 논의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예술이 아닌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적 사고'를 가르치고,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듯이,
예술 장르가 아닌 '예술적 사고'를 가르치는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듀이의 이론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