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투헬이 첼시에 부임한 이후 프리미어리그의 판도가 급변했다. 램파드 체제에서 4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던 첼시가 투헬 체제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부상한 것이다. 흔들리던 수비력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빌드업 상황에서의 안정성도 확보됐다. 그야말로 팀 전체의 사이클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첼시가 맨시티, 맨유, 리버풀과 더불어 프리미어리그의 우승 후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투헬의 전술적인 유연성이 한몫을 차지한다. 백쓰리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이고 탄탄한 골조는 투헬이 왜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고 불리는지 증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지난 12일 새벽(한국 시간)에 펼쳐진 아스톤빌라 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단에 게시된 사진을 보라.
아스톤빌라 전에서 첼시는 후방 빌드업 시에 5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배치한 1-3-2 대형을 형성했다. 찰로바-T.실바-뤼디거가 최후방, 사울-코바시치가 3선에 위치한 형태였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지난여름 이적 시장에서 임대 영입한 사울의 선발 출장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아스톤빌라는 전방 4명의 선수가 첼시의 후방 빌드업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구조를 취했다. 잉스 -> 뤼디거, 왓킨스 -> 찰로바, 맥긴 -> 코바시치, 램지 -> 사울로 나눠진 1 vs 1 형태로 말이다. 또한 T.실바가 전진하거나 롱볼을 때리려 할 때 잉스 혹은 왓킨스가 앞선에서 압박하는 상황도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첼시는 아스톤빌라의 전방 압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울이 상대가 시행하는 압박 템포에 전혀 대처하지 못했고 찰로바와 뤼디거의 전진도 비교적 제한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물론 코바시치와 T.실바가 클래스를 보여주면서 1 대 0으로 전반을 마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경기 양상은 백중세로 흘러갔다.
이에 투헬은 후반 시작과 함께 부진했던 사울을 제외하고 조르지뉴를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다. 그뿐만 아니라 코바시치를 좌측 측면 부근으로 한 단계 전진 배치하면서 후방 빌드업의 형태를 전환했다(코바시치 전후반 터치맵 참고). 따라서 후반전 첼시의 후방 빌드업은 1-3-1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전개됐다.
한편 조르지뉴가 중앙에 위치하고 코바시치가 좌측에 편향된 동선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우측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파생됐다. 이 공간은 이날 우측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던 지예흐를 통해 커버할 수 있었다.
전반전에는 우측 하프스페이스를 점유하며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거나 우측 윙백 오도이와 부분 전술을 수행하는 비율이 높았던 지예흐지만 조르지뉴의 투입과 코바시치의 이동에 따라 역할에 변화가 발생했다. 조르지뉴가 상대의 강한 견제에 시달릴 때 지예흐는 우측 공간으로 내려와 팀의 후방 빌드업에 힘을 보탰다(지예흐 전후반 터치맵 참고). 이는 첼시의 후방 빌드업 체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T.실바, 조르지뉴에겐 지예흐라는 선택지가 추가되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귀결됐다.
이처럼 투헬은 아스톤빌라의 강도 높은 전방 압박에 고전했던 흐름을 깨기 위해 즉각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조르지뉴의 투입, 코바시치의 전진, 지예흐의 후진은 전반전에 불안했던 첼시의 후방 빌드업 체제를 안정세로 바꾸는 묘수로 작용했다.
어쩌면 사울을 빼고 조르지뉴를 투입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울과 조르지뉴를 바꾸는 최적의 타이밍에 결단을 내리고 이 과정에서 코바시치와 지예흐의 역할에 변화를 준 것은 투헬의 역량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1-22시즌의 시작점부터 첼시의 풍성한 스쿼드와 투헬의 전술적인 능력이 최고의 시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인플루언서 팬하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