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in the anger
그는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자랐다. 화염은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았고, 더욱이 대상은 구분하지도 못했다. 습기 어린 새벽녘에도 거센 불길을 피해 셀 수 없을 만큼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서는 새로운 사람인 양 살았다. 화상 자국이 없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고 불길이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가야 했다. 상처에 상처가 덧입어 통증도 무감각해질 때쯤 그는 불길이 닿지 않을 곳으로 영원히 도망쳤다. 혹시나 옷소매에 잔불이 옮겨 붙을까 두려웠고, 소중한 걸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때는 말갛고 추운 새벽이었다.
그는 활활 타는 불길이 싫었다. 다 태워버리고 재만 남기는 불길을 닮고 싶지 않았지만, 불길은 불씨를 남겼고 결국 그는 불꽃이 되었다. 마른 장작 같던 마음은 쉽게 불꽃을 뿜어 냈고 그 스스로도 쉽게 꺼트리지 못했다. 모든 걸 다 연소시키고 꺼질 때즘 그는 이미 화마(火魔)가 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분명 생생하고 맑은 꽃이 되고 싶었을 텐데, 어느새 주변을 다 태우고 이내 자기도 태워버리는 불꽃이 되어 있었다. 그는 뜨거웠지만 사람들은 불꽃만 봤고, 그럴수록 불꽃은 파란빛을 띠었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그는 새벽에 걷고 또 걸었다. 춥고 습기 어린 새벽이 그에게는 간절했다.
그는 소중한 걸 다 태워버리기 직전 젖은 장작을 만났다. 태우려고 해도 타지 않는 사람, 옮겨 붙지 못하게 길목을 막는 사람. 그 사람은 천천히 발화점을 찾아주었고 불꽃이 그의 전부가 아니라고도 말해주었다. 모두가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쯤 두고 살고 있으니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가끔은 꽤 따뜻하기도 해 온기가 전해진다고. 얼마 후 그 사람은 떠났지만, 그의 불 길 중간에는 젖은 장작더미가 가득 쌓였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하루를 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따뜻했고 편안했다. 그때는 생생하고 맑은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