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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귤 Jun 16. 2023

실수로 발견된 사카린처럼

제로 콜라, 제로 아이스크림, 제로 과자, 한국은 ‘제로 슈거’ 열풍의 한 가운데에 있다. 굳이 다이어트나 당 조절을 하지 않더라도 ‘제로’라는 말은 소비자에게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당류감미료 섭취를 자제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체중조절에 장기적인 효과가 없고, 당뇨나 심장병 위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나는 비당류감미료 안 먹어.” 하는 분이 계실까. 대한민국 국민 간식 뻥튀기에 은은히 감도는 단맛을 좋아하신다면, 우선 탈락이다. 가볍게 달콤한 맛에 ‘인간 사료’처럼 끝없이 집어먹게 되는 마력의 뻥튀기에는 인공감미료 사카린이 들어간다. 사카린은 설탕의 약 300배 가까운 단맛을 가지고 있는데 칼로리와 혈당지수는 제로에 수렴해 큰 인기를 얻었다.      


뻥튀기 오는 날  © 경기신문


1879년 여름, 존스 홉킨스 대학의 화학 교수이던 아이라 램슨은 제자인 팔베르크와 함께 유기화학 반응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연구를 마치고 허겁지겁 빵을 먹던 팔베르크는 그날따라 빵이 유난히 달다고 느꼈다. 빵만 단 것이 아니었다. 손으로 집어 먹는 무엇이든 맛이 달게 변하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팔베르크는 연구실로 돌아가 자신의 손에서 나는 단맛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렇게 발견된 게 바로 ‘사카린’이었다. 램슨과 팔베르크는 설탕을 의미하는 라틴어 ‘사카룸’에서 본 따 이름을 붙이고 특허를 등록했다.     


© 케미컬뉴스

화학 연구를 끝내고 손을 제대로 씻지 않은 채 빵을 먹은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손에 묻은 게 달콤한 사카린이 아니라 치명적인 독성물질이었다면 어떨 뻔했는가. 우리는 연구 중 목숨을 잃은 비운의 남성으로 팔베르크를 기억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팔베르크는 그 씻지 않은 손을 통해 세기의 발견을 했다. 인생이 참 그렇다. 연구 중이던 유기화학 반응은 어찌 됐을지 한 줄 찾기 어렵고, 사카린 특허로 떼돈을 번 팔베르크의 영웅담만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빵을 먹다 발견한 달콤함이 팔베르크 인생에 ‘진짜 달콤함’을 가져다줬다면서. 


이후 한참이 지나 한 캐나다 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사카린 연구 실험을 했는데, 방광암이라는 무서운 결과가 나왔다. 사카린은 순식간에 발암물질로 취급되어 규제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는 결국 연구진의 오류였다고 밝혀졌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사카린은 유해 식품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최근에 이미지를 조금 회복하는가 싶더니, WHO의 권고안으로 또다시 찬밥 신세가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실수로 발견되어 한 세기를 휩쓴 사카린처럼, 언제 마주할지 모를 내 인생의 달콤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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