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영혼의 단짝이 되어간다는 것

by Dana Choi 최다은

* 이 매거진에 나오는 글은 감정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이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어떠한 화려한 솜씨나 힘 있게 들어간 스킬 하나 없이 서툴게 표현한 글인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글. 어떠한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러운 흐름 같은 것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이 굳이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처럼 느껴지는 것.


최근에 어떤 구절을 보았는데 어디서 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너의 가장 뛰어난 섬김을 기억하노라 너는 아무 불평이 없었고 나는 네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절대자와 나와의 관계가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눈빛만으로도 우린 알아요~ 세상에 태어나 그런 관계 한 명을 만난다면 더 이상을 바라는 것이 욕심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조차 모를 때가 많은 나의 마음을 애쓰지 않아도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지금 결혼을 한 부부라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부부가 그러한 관계를 꿈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표현 soulmate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영혼의 단짝.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글과 나 자신'이, 절대자와 내가, 나와 남편의 관계가 모두 그러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후의 이중성

나는 강아지 같은 남자가 좋았다. 실제로 남편과 연애할 때 이상형이 ‘강아지 같은 남자’라고 전달한다. 지금 생각하면 개념을 옆 나라에 던져버린 오만 망측한 발언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상대를 동물로 간주하며 그의 인권을 유린하겠다는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한. 설상가상으로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고백이다.


주인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서 조용히 앉아있는 '순복적'인 존재 강아지. ('순복적'이란 순종적이고 복종적인 내가 지은 단어). 나는 남자라는 존재를 강아지에 비유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존재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충만한, 세상에 이런 대책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데.. 그런 자가 바로 나임을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남편은 나를 만나 결혼하기 직전까지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며 정말 애교 많은 강아지 인척을 한다. 실제로 멍멍 거리며 지랄 맞은 나의 모든 감정변화를 모두 수발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지랄병을 어떻게 성질 한 번 내지 않고 모. 든. 순. 간 나에게 철저하게 '순복' 하였던가! 연기가 오스카 아카데미 대상을 받아도 부족한 글로벌 수준급이었는지 순진한 내가 속았는지 둘 다였는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은 나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편의 마음은 나도 모른다. 그도 나처럼 무언가에 심히 뒤집혀 이성을 홀딱 빼앗겼는지도?


결혼 후 '순복적' 강아지는 날카로운 이빨을 과감히 드러내고 원래의 본성을 꺼내기 시작한다. 매 순간 으르렁 거리며 표효하는데 '인생은 뒤통수를 맞는 것'이라는 드라마 대사답게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한 채 혼돈과 흑암이 존재하는 블랙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다. 나의 귀여운 강아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생애를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



불완전함과 불완전함의 만남 그 비극의 시작

'지배하려는 자'와 '그를 지배하려는 자'가 만난 시작은 흡사 쥬라기 공원을 연상케 한다. 신혼부터 티라노사우르스 두 마리는 매우 강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똑같이 미숙하고 이기적인 울트라 초특급 끝판왕들의 만남이 성사되었기에 가능했다 싶다. 각자의 부모님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보여 주었나?) 악의적인 민낯을 모두 드러내고야 만다.


남편은 의견 충돌을 기꺼이 치열하게 겪더라도 모호한 태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회피하고 싶은 문제, 두려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나에게 끊임없이 나의 결점과 결함을 대면하게 만들어 나를 쉴 새 없이 괴롭혔다. 미치도록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나는 이제야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한 그의 문제 또한 나를 완전히 무너지게 하였는데 지속적인 절망과 실패라고 느끼는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스스로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 모든 혼란을 환란과 고난을- 죽음까지 생각했던 - 삶의 끝이 없는 문제에 대해 직면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는 바로 그 혼돈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주1).



혼돈과 무질서에서 빛을 발견하기까지

먼저 나는 이 결혼을 지켜 나갈 것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물을 것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그 누구의 탓을 하지 않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문제를 직면하면 나의 결혼의 불행은 남편의 탓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명확해 지자 눈앞의 현실이 -심지어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혼돈이라는 무질서-에서부터 새롭게 창조되는 빛을 만나게 되는 기적을 경험한다. 바로 소망이 생긴다는 것.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나니[롬 4:18]


불행과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정확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주2). 현실을 무시하고 혼돈을 회피하는 것은 미래를 혼탁하게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로 밖에 설명되지 않으니까.


미숙함을 인정하면 누구나 미숙함을 바로잡고 채울 수 있다(주3). 결핍과 결핍, 불완전함과 불완전함, 미숙함과 미숙함이 만나 그토록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이유는 미숙함을 인정하지 못했던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혼 10주년이 지난 지금 겨우 알아가고 있으니까.


어느 부부도 예외는 없겠지만 미숙함의 정도가 클수록, 성질머리가 더러울수록, 교만과 오만의 강도가 높을수록 절대자는 당신에게 강력한 사포를 허락한다. 배우자를 ‘천국을 위한 사포’라고 비유하는데 나는 매우 '굵은 사포'를 만났다고 한탄했던 시간을 겪으며 한 가지 철저히 깨달은 것은 깎여야 할 것들이 꽤나 단단하고 뾰족하였기에 '굵은 사포'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굵은 사포'는 불행과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위장된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하나의 가정은 작은 천국이다

오랜만에 청첩장을 꺼내 보았다.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이란, 당신의 배우자가 해가 갈수록 당신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


하나의 가정은 작은 천국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가장 좋아할 존재는 바로 악마이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제일 바라고 있는 존재가 존재하기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살아있는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기 마련이다. 삶은 인위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유지된다(주4). 부부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 가정에는 어떠한 생명도 없는 것이다. 과거의 10년은 관심이 지나쳐 서로에게 맹렬히 저항하고 물어뜯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맹수와 같은 방법은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 지혜롭고 온유한 방법을 알아가려 애쓰고 있는 것이니까.



영혼의 단짝이 되어간다는 것


절대자에게 아무 불평이 없었고 절대자는 네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관계.

나의 마음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는 관계.

어떠한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러운 글과 나와의 관계.

꿈만 같은 이상적인 관계는 이러한 치열하고도 투쟁적인 시간 속에서 깎여 나가는 그 모든 시간의 증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오랜 시간 거친 파도에 깎여 기암절벽을 이루는 장관을 바닷가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의 꼿꼿한 도도함과 웅장한 위엄에 감탄하는 것일까? 장대한 세월에, 거세고 심한 파도에 오랜 시간 침식되는 시간들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빛나는 가치를 발현할 수 없다.



나는 꿈이 있다. 이 모두를 이루고 싶은 꿈이다. 욕심이 많은 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굳이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것들을 위해 말이다.





주1,2,3,4) 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2018, 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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