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에게(1)
안녕, 이모
요즘 내 마음에는 31년 동안 눌러 담아온 감정들이 한꺼번에 넘쳐나고 있어. 어디에도 놓을 데가 없어, 용기를 내 이 편지로 이모에게 말을 건네.
내 생의 가장 짙은 첫 번째인 기억은 이별이야. 어디론가 떠나는 차 창 너머로 아빠에게 울며 인사하던 그 장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감당하기엔 세상이 통째로 뒤바뀌는 일이었지.
전학 간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며 한부모 가정에게는 손을 들어 다른 종이를 받아 가라고 했어. 그게 결핍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손을 번쩍 들었지. 그때부터였을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나는 조용히 외톨이가 되었어.
오빠 역시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집에 돌아오곤 했고, 그 시절은 지금까지도 우리 남매 안에 차갑게 남아 있는 기억이야.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집에서도 계속됐어. 헤어진 줄 알았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거야. 그때부터 우리는 매일 밤 기이한 이별을 해야 했어. 아빠는 "오늘이 정말 아빠를 보는 마지막 날이다"라며 오빠와 나를 데리고 나가 울면서 맛있는 고기를 사 먹였지. 우리는 목이 메어 펑펑 울며 그게 마지막인 줄로만 알고 아빠와 인사를 나눴어. 하지만 다음 날 눈을 뜨면 아빠는 집에 있었어.
왜 우리는 매일 밤 세상이 무너질 듯 울며 이별하고, 다음 날 아무 일 없듯 그 절망을 번복해야 했을까. 어린 나는 그 혼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몰라 자주 길을 잃었어.
아빠는 가족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이자, 끝내 갚지 못한 빚 같은 존재였을 거야. 엄마의 돈을 들고 사라진 뒤에도, 아빠는 어느 날 동네의 한 모텔로 우리를 불렀어.
에어컨이 있으니 시원하다며, 잠깐 쉬다 가라는 이유였지. 어렸던 나는 오빠의 손을 잡고 낯선 건물의 문을 열었어. “애들이 올 곳이 아니다, 돌아가라”며 막아서는 주인아저씨 앞에서 나는 “몇 호에 우리 아빠 있어요. 아빠가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라고 말해야 했어.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들이 왜 그곳에 들어오면 안 되는지조차 알지 못했어.
이모, 나는 내가 그 상황들을 선택한 적이 없어. 내가 고른 엄마 아빠도, 내가 결정한 이별도 아니었지.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했을 어린아이였을 뿐인데, 내 어릴적 기억들은 매일 밤 반복되는 이별로 채워져있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보다, 혼자 방 안에서 글을 쓰며 감정을 쏟아내고 기록하는 일이 익숙해진 게. 지옥 같은 하루를 버텨내는 일은
결국 오직 나 혼자만의 몫이라는 걸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버린 게 말이야.
이모, 나는 이제 이 오래된 기록들을 꺼내어 이모에게 말해주고 싶어. 이제야 겨우 나를 지키기 시작한 서른한 살의 조카가 건네는 첫 번째 안부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