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울리는 이모, 이모를 닮아가는 엄마

이모에게 (2)

by 단해



안녕,이모

일기장에만 적어두던 어린 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 흘러간 건 흘려보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이제야 마주하게 된 사실들이 나를 많이 아프게 해. 지금이라도 그때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서, 이 편지를 다시 이어 써.

중학생 때였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갈 곳이 없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화장실 칸 안에 숨어 있곤 했어. 그 시간도 충분히 버거웠지만, 사실 나를 더 겁먹게 했던 건 학교보다 집이었어.

그 무렵부터 엄마는 자주 울었지. 집 안에는 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이모의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고 엄마의 울음이 가득했어. 그때면 오빠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문을 잠갔어.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전화가 끊기고 나면 아이처럼 펑펑 우는 엄마를 달래는 건 늘 우리의 몫이었어. 엄마는 곧 이 집에서 쫓겨날 거라며 짐을 싸야 한다고 말했지. 어린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어.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울어야 하는 건지, 이모는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때부터였을 거야. 분위기를 살피고, 불안을 삼키는 게 습관이 된 게. 거절하지 못하고 늘 눈치를 보며 사는 지금의 내가, 사실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됐어. 나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나를 가장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모는 종종 말하지 "니 아빠 같은 사람 만나지 마“ 하지만 이모, 아빠를 만난 것도, 이혼도, 가난도 내 선택이 아니었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나에게 왜 그 모든 결과와 비난이 돌아와야 했을까.





불안이 일상이 되었을 즈음, 엄마는 한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어. 낯선 사람이 집에 드나드는 게 불쾌해 일부러 늦게 들어오면, 엄마는 가장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밀어냈지. “차라리 나가서 술집 여자나 돼라.” “너랑 나랑 같이 죽자.”


그 와중에 가장 버거웠던 건 이모의 명령이었어. 엄마의 연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모는 나에게 이렇게 시켰지. “그 아저씨가 네 허벅지를 만졌다고 말해.”


그게 나쁜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난 이모에게 싫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모, 그 순간의 나는 이모의 조카였을까. 아니면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증거였을까.



나는 그렇게, 불쌍한 엄마를 울리는 이모와

그 상처를 그대로 나에게 쏟아붓는 엄마 사이에서 조금씩 나를 잃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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