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a discovers Mar 22. 2023

술 취한 아저씨의 코골이, 3시간의 Flixbus

2023년 3월 22일의 기록

11:00 AM Amtsalon Berlin (Charlottenburg Berlin)
Free Entry
European Month of Photography


종종 “무엇 무엇의 달”을 주최하는 베를린. 과제니 귀차니즘이니 해서 통 밖을 안 나갔더니 몰랐는데, 베를린을 떠나기 산책 중 알게 되었다. 3월 내내 베를린 한정이 아닌, 벨기에와 베를린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유러피안 사진 월간. 미로처럼 여기저기 들어갈 문, 올라갈 계단이 많은 5층짜리 전시관에 들어갔다. 콜라주, Mixed Reality, 영상 등 다양한 기법으로 촬영한 사진들이 인상 깊었다.


잘 찍은 사진을 보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과감하거나 창의적인 구도로 작품을 만들었지, 감탄스럽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사진도 본질적으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가 아닌가. 스윽 지나가면서 보는, 입장료 무료인 전시회에서조차, 왠지 모를 이유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당신에게 손을 뻗는 작품들이 항상 있지 않는가? NFT도 그렇고, 인터넷 속 작품의 빠른 전달, 복제, 도용이 많아진 세상.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게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누구의 기억을, 누구의 소유와 통제 하에, 보며 감정을 생성하고 소비하고 있을까? 뤼네부르크로 돌아가는 길 비는 시간의 여유를 활용해서, 우연히 발견한 이 작은 보석이 가져다준 생각을 길게 음미했다.


13:00 PM
Berlin Central Bus Station → Hamburg Central Train Station → Lüneburg


오랜만에 베를린을 길게 즐겼지만, 이제는 방학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베를린과 뤼네부르크는 두 번 환승을 사이에 둔 거리다.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름 독일까지 같이 왔는데 쑤시는 몸과 이 주간 생활했던 흔적을 잔뜩 담거나 뺀 캐리어를 끌고 연착되는 기차 전광판을 황망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마다 괜히 원망스럽다. Deutschbahn을 타고 이동하면 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10유로 이상 가격 차이가 나고, Flixbus 정류장이 더 가깝기도 해서 요즘은 종종 Flixbus를 애용해서 왔다 갔다 한다. 와이파이가 더 잘 터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버스이다 보니 몸이 좀 더 고되긴 하다. 이번에는 좀 더 특히 힘들었는데, 오후 한 시부터 뭘 마시고 그렇게 취한 건지 골골대다 결국 쿨쿨거리기 시작한 아저씨의 술냄새 섞인 숨결이 원래 있는 차멀미에 더해 나를 정말 고통스럽게 했다.


집에 돌아오니 5시 반, 룸메이트들은 방학 막바지를 모두 집에서 보내고 있다. 문이 단단히 잠겨있고, 공기는 어둡고 나무냄새가 났다. 또 한동안 외롭겠군 쓸쓸한 마음과, 개강 준비를 해야 하는 바쁜 마음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일요일에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