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일
아침에 눈을 뜨고 아직 비몽사몽할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한다. 저널을 펴고, 오늘 기대되는 일과 걱정되는 일, 할 일을 적고 나서, 그제서야 잔잔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 이 시점에서는 꽤 자신감이 붙어있다. "왠지 오늘은 계획한 모든 것을 다 이뤄낼 것만 같아."
하지만 오후 3시쯤 되면 내 꿈은 허황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계획했던 일과의 반절도 채 끝내지 못하고 침대에 눕는 하루의 반복이다. 결국은 하고 싶었던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그것보다도 귀찮음과 핑계로 일을 미뤄버리며 흘려보낸 시간의 공허함.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면, 사실 너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거 아닐까?" 교환학생 때 만났던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100% T성향의 룸메이트가 했던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그때는 재수없다며 속으로 욕했었더라지. 그런데 지금은 뭔가 이해가 간다. 나는 무언가에 꽂히면 밤을 새며 열중하곤 하는데, 어떤 이유가 되었던 간에 핑계를 대며 하지 않는 일이라면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세뇌하고 있을 뿐은 아닐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언가에 꽃혀서 밤을 새는 경험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꺼내보지 않는 책 마냥 머리속의 아이디어로만 남아있는 버킷리스트만 쌓여간다.
야심차고 즐거운 시작.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하루의 끝. 딱히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분명 "하고싶다"는 생각의 불씨는 여전하다. 단지 막상 눈 앞에 두고 시작해보려니 무한한 시간과,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어지러운 생각의 나뭇가지 속에서 뭔지 모를 무언가가 나를 짓눌러 뒤돌아 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스스로가 거부하고 있다. 십년을 세번 살고서야 습관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보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뭐 그럭저럭 잘 굴러오면서 살았다. 도시도, 전공도, 직업도 뭐 하나 꾸준히 오래 붙들었던 것은 없지만 어찌저찌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것을, 아주 천천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마치 끊임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에 물을 조금씩 묻혀가며 모양을 잡아가는 것과 비슷했다. 실패하거나 아니었던 것들이 훨씬 많았지만, 성공하거나 좋았던 것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쌓여가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뭐, 원체 내가 욕심이 좀 많다.
살다보니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망설이는건 사실 완벽주의도 한 몫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도 내게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할까봐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거다. 만족? 누구의 만족? 내 스스로의 만족일 수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 "나 잘 살고 있다" 고 부모님께 증명할 수 있을 정도의 떳떳함, 수많은 창의적이고 대단한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만큼 해내고 싶은 욕심... 결국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두려움이다.
난 원체 자아가 비대한가 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서 모두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좋은 사람들과 경험을 통해 좀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 스스로 내면적으로 완벽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ㅎㅎ. 이제는 다시 한번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단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브런치 글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국어로 글쓰는 건 내가 가장 쉽게 하는 거니까. 아침에 물 한잔 하듯이 이것도 꾸준히 하면 습관이 들겠지. 브런치도 한 5년전에 가입해서 썼다 멈췄다 썼다 멈췄다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ㅋㅋ. 오랜만에 돌아오니 브런치는 브런치스토리가 되어있고, 과거에 썼던 글들은 침대 밑에서 찾아낸 꼬깃꼬깃한 종이 메모마냥, 누가 썼는지도 애매한 그런 감정만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 일주일에 두세번 글을 작성하는 걸 목표로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주제나 형식이 일정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울림을 주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보고 기록해 보려고 한다.
2025년 4월 2일
#기록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