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제는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by 김단아

민화를 좋아하게 된 뒤로,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할 일이 있고, 하루는 여전히 빠르게 지나간다.
민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느려지거나, 마음이 늘 고요해지는 일도 없다.
다만 아주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
민화를 더 이상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림을 보면 자꾸 묻고 싶었다.
이건 무슨 뜻이지, 저건 왜 저기 있지, 내가 이걸 좋아해도 되나.
이제는 그런 질문이 조금 줄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 오늘은 이 그림이 이런 얼굴이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민화는 여전히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설명을 붙이지도 않고,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어떤 날엔 눈에 들어오고, 어떤 날엔 배경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좋다.
항상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라는 점이.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게 된 건 민화 자체라기보다,
민화가 허락해 준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몰라도 괜찮고, 잘 못 봐도 괜찮고, 오늘은 대충 보고 지나가도 괜찮다는 태도.
그건 그림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민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괜히 설명을 덧붙이지 않게 되었다.
왜 좋은지, 어디가 대단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곁에 두고 싶은 그림.
자주 보지 않아도, 없어지면 허전할 것 같은 그림.
민화는 그런 쪽에 더 가까워졌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민화를 더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갑자기 붓을 들지 않아도 괜찮고, 전시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언젠가 어디선가 호랑이 얼굴을 보고 피식 웃거나,
잉어 하나에 괜히 힘이 나는 날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크게 좋아진 건 아니고, 조용히, 오래 좋아하게 된 쪽에 가깝다.
그리고 아마 이 정도의 좋아함이 가장 오래 가는 방식이라는 것도 민화가 슬쩍 알려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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