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그리다 보면 붓이 생각보다 정직한 도구라는 걸 알게 된다. 연필처럼 지우개로 슬쩍 없앨 수도 없고, 디지털 펜처럼 되돌리기도 어렵다. 붓은 한 번 닿으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종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남아 있다. 그래서 붓을 잡는 순간부터 그림은 손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손보다 마음의 이야기를.
붓은 손을 숨겨주지 않는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 선이 굳고, 마음이 급하면 선이 흔들린다. 손목이 긴장하면 붓끝이 말을 안 듣고, 숨이 가쁘면 선도 덩달아 짧아진다. 가만히 보면 붓은 그림을 그리는 도구라기보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중계하는 장치에 가깝다. 오늘의 컨디션, 오늘의 마음, 오늘의 조급함이 전부 붓끝으로 흘러나온다.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는다.
처음엔 이게 꽤 불편하다. 잘 그리고 싶은데 자꾸 들킨다. 마음을 숨기고 싶은데 붓은 그런 데에 전혀 협조적이지 않다. 그래서 민화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난히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천천히 그리세요." “숨부터 고르세요.” 그림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전부 사람 얘기다. 천천히 그리라는 말은 조급함을 빼라는 뜻이고, 숨부터 고르라는 말은 자신을 너무 앞세우지 말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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