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

고요한 우연 도서 리뷰

 첫째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청소년 문학에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 문학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생활하는 환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잘 안다고 오판했던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저 가볍게 쉬이 읽히는 분야가 아니라 청소년을 키우고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크고 작은 감정의 돌덩이들이 좁디좁은 내 마음속에 하나씩 자리 잡는 무거운 여운들이 남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4월의 초록을 닮은 표지가 인상적이었고,『고요한 우연』이라는 제목이 궁금해지던 즈음 우연한 기회에 문학동네에서 진행하는 교사리뷰어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인공 수현이는 머리가 좋지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그렇지만 크게 모자란 부분도 없는 아주 보통의 아이다. 보통의 아이가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글이나 매스컴들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과 결과에만 집중되어 있는데 반해 이 소설은 그저 평범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나간 점이 인상 깊었다. 큰 사건도, 임팩트 있게 보이는 장치도 없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수현과 지아 생각은 오래도록 계속됐다.

     

"나는 범인을 색출해서 다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아침 일찍 등교해 아무도 모르게 친구의 책상을 깨끗이 치우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답답하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이게 내 방식이니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돕는 방법이 미련스러워 보이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묵묵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용기 내어 돕는 수현이가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의 시선과 알려진 후 본인의 안전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관하지 않고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일곱,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지아, 내 친구 서지아."       

   

그런 수현 옆에 친구 지아가 있다. 수현이가 저만의 아름다움으로 반짝이는 빛을 내는 보석이라면 지아 또한 결은 다르지만 역시 보석일 것이다. 또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청소년기에 수현과 지아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좋은 관계임이 틀림없고 수현조차도 인생의 행운이라 믿는 지아가 있어 읽는 내내 둘의 관계가 참으로 귀하게 다가왔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여러 사건과 갈등, 요즘 아이들이 지내는 환경은 생각보다 무섭고 불안하고 위험하다. 남학생들의 서열, 여학생들의 감정싸움, SNS 상에서 괴롭힘 등. 미움받을 이유는 충분하고, 괴롭힐 권한이라도 부여받은 양 악랄한 방법을 일삼고, 자신의 일이 아니면 그만인 일상 속에서 수현이처럼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가 있고, 지아처럼 믿고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음을 알려 준다.   

   

내가 만난 아이들 역시 눈에 띄지 않지만 평범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아이들이 일상에 그저 묻혀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보석 같은 아이들이 더욱 반짝거릴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더욱 크게 떠야겠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존재만으로도 이미 빛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지루해 보이는 일상들이 너희가 치열하게 지켜낸 평범이고 감사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첫째의 초등학교 졸업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