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니?
SNS를 들여다보면 내가 초라해진다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여행, 맛집 사진이 많더니 이제는 맛있고 영양 많은 집밥 사진이 올라온다.
다들 얼마나 부지런한지 하는 것들도 많다.
긍정적인 자극에서 머물면 좋은데 '나는 뭐하는가?'라는 질책으로 이어진다.
똑 부러진 삶, 행복한 시간임을 알려주는 다양한 사진에 어느새 나와 비교를 한다.
비교는 금물이라지만 몰려오는 감정을 알아차리는데 몇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SNS 사진과 글은 잘 지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러다 문득 질문을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별일 없는 것?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그렇다면,
'지금 행복하니?'
'언제 행복하니?'
불행하지는 않지만 지금 행복하지는 않은 애매한 때도 많다.
돈을 조금 더 벌면, 일을 성취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 순간이 와도 크게 바뀌지 않아 실망도 한다.
행복은 조건의 완성으로 만들어지는 필요충분 요소가 아닌가 보다.
행복이 무엇일까? 도대체 언제 행복감을 느끼는데?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찾았다.
첫 번째는 감사의 발견이었다.
감사를 표현하면 지금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환된다. 그러면 똑같은 상황도 만족감이 늘며 종전보다 행복하다.
며칠 전 딸아이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 통증에 아프다면서도 딸아이는 싱글벙글했다. 당장은 퉁퉁 부어 전보다 안 예쁜데 자신의 눈이 종전보다 커졌다는 사실 한 가지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수술 결과에 대한 걱정도 있을 법한데 초 긍정이다. 분명한 것은 눈이 커질 것이기에 그 기대감 하나로 만족한고 말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감사와 행복이 가득했다.
시각이 바뀌면 행복감이 높아진다. 그러면 이후 감정이나 행동도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 결과를 만들게 된다.
리더십 코치인 윤스키의 저자 강의에서 전한 사례이다. 자신의 웃는 모습을 싫어하며 냉소적인 친구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생각을 이렇게 바꾸었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포용력을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는데, 기도 응답으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고. 그러니 그 친구는 자신의 포용력을 넓혀주는 귀한 존재이니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천사일 수도 있다고.
행복을 선택한다는 말은 이런 사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두 번째는 사람과의 연결감이다. 언제 행복한지를 묻는다면 결국 사랑, 이타심과 관련이 있다. 조용한 시간 혼자 있는 시간도 행복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다시금 누군가를 찾는다. SNS를 들여다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테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들어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해 다른 이를 찾는다. 오프라인이 만남이 제한적이자 온라인에서라도 만나려는 노력이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결국 '나'란 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으면 존중, 인정, 배려가 전해질 때 행복하다는 감정이 스며든다. 이타심으로 누군가를 돕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행복감을 만든다.
잘 산다는 것은 감사, 연결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무엇에 감사하고, 누구와 연결되었는지를 확인하며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