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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Sep 10. 2021

여행예찬 - 여행에 관한 정의

[단비글] '여행'

요즘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자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이다. 몇 년 전 노래를 지금 다시 소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어디 가까운 곳 하나 가는 것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의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는 면세점 쇼핑을 하려고 무착륙 비행을 한다지만 나는 요즘 그저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비행기에 오르고 싶은 맘이 피어난다. 오죽하면 내가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매체 언론에서 취재차 멀리 부산이나 제주로 갈 수는 없는지 아이템을 생각하곤 하다가도 매일 발표되는 네 자리 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를 보고 그 마음을 꾹꾹 누른다. 


여행은 단순히 멀리 떠나 무엇을 보고 듣고 먹고 하는 일이 아니다. 삶이라는 긴 여행 속에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은 변화를 갈망하는 이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멀게는 바다 건너 타국부터 가깝게는 서울이나 근교를 떠나는 일 역시 여행이다. 정주는 안정을 주지만 끝내는 지루함을 느끼게 하고 제자리에 갇히게 만든다. 일상의 반복은 내 안에 에너지를 차츰 소진하게 하고 지치게 한다. 한곳에 머무르며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끈덕지게 해내는 일 역시 필요하지만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책이나 신문 등을 통한 간접 경험도 좋지만 자신이 직접 날 것을 보는 일과는 다르다. 여행은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온전하고 깊은 이해를 돕는다. 


근대문학을 읽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 작가의 생가나 문학관을 찾아다니는 게 내 여행 주요 패턴 가운데 하나다. 가까이는 서울, 양평, 멀리는 부산, 군산 등과 같은 지방에 있는 문학관까지 찾아다녔다. 군산에 있는 채만식문학관에서 오래전 읽었던 소설 ‘탁류’의 문장을 필사했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학관 한 편에 앉아 하얀 원고지를 한 칸씩 채워나가면서 나는 위대한 글은 아니어도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또 한 번 마음 먹었다. 윤동주, 황순원, 채만식, 김수영, 김정한 등 한국 문학사에 오래도록 남을 작품을 쓴 여러 작가들의 흔적이 남은 곳들을 다니며 텍스트를 다시 한 번 깊이 읽었고, 책 너머의 것들을 배웠다. 작가의 생가나 문학관,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방문하는 일은 내 독서의 한 단계다.        

   

여행은 일상을 떠나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넘어 익숙함에 가리어져서 못 본 것들을 보게 한다.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유독 혼자 떠난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홀로 떠나는 일은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함께 떠난 이와의 추억으로 남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보게 한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조건 없는 환대는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낯선 도시 속에서 이름 없는 이들은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들은 내게 환한 미소로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여행지를 추천해준다.      


처음 혼자 멀리 여행을 한 것은 스물한 살 겨울 현해탄을 건너 떠난 여행이었다. 많은 준비 없이 떠난 그곳에서 길을 헤맸을 때 먼저 다가와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던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 패스를 잃어버렸을 때는 자신의 돈으로 선뜻 내가 머물던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밥까지 사줬던 이도 있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혼자 떠난 여행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여행을 통해 오롯이 혼자 여행하는 법을 배웠다. 어딜 가든 홀로 떠난 여행에서는 주로 걸었다. 걷다보면 나 말고 주변을 볼 수 있었다. 행복한 얼굴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 손을 잡고 걷는 이들의 모습 등 그 속에서는 과거의 내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일상 속 내 고향에서는 평범하다고 느끼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같은 한국 땅이었지만 결코 같은 곳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관심 많은 세상이 더 넓게 펼쳐졌다. 현대인은 이웃에게 관심을 두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여행지에서 느낀 것들은 내 삶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아닐까? 전염병 상황이 안정되면 당장이라도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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