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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랑 Mar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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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마틸다. 너에게는 내가 있어 다행이지 않니.

 너가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낮에는 어여쁘고 성실한 여대생이었다가는

 밤에는 어두운데도 골목을

 길고양이처럼 배회하다가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씻고 잠을 잘 때

 그래도 침대에 누워 내 두 파란 눈을 생각하지 않았니?

 한 번은 내가 담배를 사러 나가는 척 하면서

 몰래 너를 따라가서는

 숨어서까지 지켜보았던 광경이

 내 헐렁한 윈드브레이커를 걸친 채 어두운 공원에서  농구공을 튀기는 모습이지 않았니?

 그러나 너가

 달에 사는 누군가가 그 빛까지 점등해버린 것처럼

 새까맣게 어두워진 초등학교의 토끼 우리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 때

 순간 그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너의 앞에서 멈추었던 하얀 토끼처럼

 내가 그렇게 너의 앞에 뛰어나왔다면

 너는 나를 그 하얀 토끼에게 그랬던 것처럼

 꼭 끌어안을 수 있겠니?

 물론 너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런 때에 너가 나를 만난 것은

 단지 너가 어려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고양이도 없는 겨울밤에 농구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너는 모른다.

 자신의 밤을 그렇게 보내는 게 너에게는 나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깬 너가 물을 마시다가

 약의 부작용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껴서

 우당탕 하고 부엌에서 부딪혀 넘어져

 내 품에서 상처입은 물컵처럼 운다.

 너의 신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운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개가 죽은 아이처럼 운다.

 예전에 너는 그럴 때마다 숲속을 공원을 술집을

 골목을 눈 사이를 배회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겨우 떠오른 공기방울처럼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마음이 가라앉았겠다. 이젠 완전히 가라앉았다.

 집으로 가자.’

 너는 너의 인간적이고 헛된 슬픔을 잊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름 모를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틸다는 그 노래가 전혀 낯선 외국어인 것처럼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 옆의 창문 밖 하늘로는 별을 찾기 힘들었다.

 마틸다는 창문에 조용히 작은 귀를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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