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랑 Mar 29. 2017

11



 마틸다와 그동안 찍었던 필름들을 현상한 적이 있다.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검은 밤하늘에

 금으로 된 실반지를 꾹꾹 박아 놓은 밤이었다.

 그 실 같은 금반지 외에는 세상이 꺼멓게 익은 포돗빛 같았다.

 마틸다는 의자에 앉아 필름을 보면서

 어제 꾼 꿈을 다시 생각했다.

 핀셋으로 집은 인화지 끝에서 붉은 물이 똑똑 흘렀다.

 마틸다의 얼굴도 나의 얼굴도

 소년시절처럼 벌게졌다.

 붉은 방 안에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상자에 있던 필름들도 뭉텅이로 쏟아 놓고

 그 작은 갈색 칸에 담겨진 점 같은 얼굴들을 헤아리다가 함께 깊이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이미 아침이어서

 유리창 칸칸이 넘어온 햇빛에 수많은 필름들을 하나하나 비춰 보았다.

 마틸다는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두 유리창에 붙여 놓았다.

 리와인더를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돌릴 때에

 손가락 끝을 거쳐갔던 수많은 구멍들.

 적셔지고 말려지고 잘려질 때에도

 그 때 여름을 그대로 안고 있다가 빛으로 박제시켜 놓았다.

 겨울 햇볕만이 그 투명한 몸을 통과하면서 슬퍼하였다.

 커피도 식고 추워져서 조금 더 자고 나서

 우리는 약속시간까지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 공기를 모두 글로 쓰고 싶었다.

 마틸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을 다 읽었고

 언덕 언저리의 대리석 건물과

 눈 없이 태어난 고양이가 있었다.

 마틸다의 붉게 번진 입술

 눈이 나렸던 것을 기억하는 거리와

 아주 오래전의 기분을 울컥울컥 떠오르게 하는 책.

 차가운 이불 위에서 글을 썼고

 토끼 우리 앞에서 담배를 태웠던

 스타킹을 싫어해서 그녀의 발목이 시렸던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걸으며 입김을 내뱉던

 채 초록불이 되기도 전에 건넜던 도로가.

 비 오는 날이면 전깃줄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났고

 고양이 애옹거리는 소리에 괜히 뒤척이던

 괜히 낙엽 더미를 바스락 거리도록 세게 밟아보던 그 공기.

 노랗게 마른 잔디 위에는 고양아.

 온통 검던 엄마는 어디로 갔니.

 발소리를 아무리 죽여도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던

매거진의 이전글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