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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한 때 개 같은 내 모습 덕분에 녀석을 이해한다

분리 불안

by 단서련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나는 분리불안이 심한 편이었다. 같은 건물 1층에 엄마 약국, 4층에 우리집이 있었는데, 엄마가 붙박이장처럼 약국에 있어도 혼자 계단을 올라가 4층집으로 가는 걸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힘들어했으니 말 다했지. 커다란 강아지 인형을 안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해가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다가 혼자서 집까지 올라가는 일이 겨우겨우 가능해졌다.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보호자가 내 곁에 안 보이면 나를 둘러싼 시공간의 감각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귀가 먹먹해지면서 아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누가 옆에 있는지도 잘 안 보이고 심장이 시한폭탄처럼 쿵쾅거려서 내 안에서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 구깃한 종이처럼 내가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찌그러지다가 쫙 펼쳐지는데 아무도 안 움직이고 나만 남은 듯한 묘한 분위기는 어릴 적 나에게는 상당한 공포로 다가왔다.


이런 공포를 못 이겨내 만 4살 즈음에는 명일동에서 암사동까지 혼자 뛰어온 적도 있다. 큰 엄마는 아마도 화장실에 계셨었나 싶은데...낮잠에서 깨어난 내가 큰 엄마 집에 아무도 없는 거 같으니 화들짝 놀라서 뛰쳐나가버린 것이다. 어디로? 엄마 약국으로 ㅋㅋㅋㅋㅋ 무의식에 새겨진 어렴풋이 왔던 길을 본능적으로 기억해서 돌아갔는데 잘 도착해서 천만다행이다. 핫핫핫.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때 어른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여튼 몇 달전부터 우리 집에 아기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말티푸인데 유튜브를 보니까 이 녀석들이 분리불안이 다소 심한 종이라고 한다. 어릴 때 나를 보는 듯 하다.


쓰레기 버리러 잠시만 복도를 나가도 낑낑낑 난리나고 어디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당장이라도 펜스 밖으로 튀어오를 듯 용수철처럼 점프를 해댄다. 자기가 펜스보다 높이 점프해도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펜스를 넘어설 생각을 못한다. 너무 나 같은 모습 ㅋㅋㅋㅋㅋ


그래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많이 무섭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마음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고, 최대한 네가 무섭지 않도록 곁에 데리고 다닐게! 그리고 나도 예전엔 분리불안 심했는데 이제 다 고쳐졌어.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돌아다니고,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기며 살고 있어. 너도 그럴 수 있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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