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위로,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알게 되었다.

4/10 16시 우영이형 건축학교 1회 차: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by 윤우영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3 001.jpeg 지하 1층 진입광장 – 순교자의 칼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다.
때로 사람보다는 말 없는 공간, 그 침묵의 위로가 절실한 그런 날이 있다.


좌충우돌 젊은 날의 위로는 입 무거운 친구와 적당량의 술이면 충분했다. 건축과 후배는 아니었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치기 어린 낭만 시절을 함께 보낸 후배와의 기억도 새롭다.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과 능글맞은 웃음으로 언제나 모임을 주도했다. 그런 긍정 마인드의 후배가 목소리를 깔고 ‘형 술 한잔합시다’ 할 때는 둘 중 하나였다. 실연이거나 철학 이거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그렇게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추임새가 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추임새도 귀 기울이고 상 대의 희로애락, 그 굴곡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밤새 포장마차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포장마차의 주황색 새마을천을 때려대던 빗소리는 정확히 기억난다. 무 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배의 세상은 그날 완전히 무너졌을 테고 옆자리에서 나는 어설픈 위로를 한답시고 주절거렸을 것이다.


등 뒤에서 투두둑거리는 빗소리에 묻혀 서로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다만 곰장어 가득한 유리 덮개 위로 흔들거리던 백열전구는 꽤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날 후배의 어깨를 다독인 것이 집에 가고 싶은 나의 손이었는지 소주였는지 혹은 포장마차의 빗소리와 백열전구였는지 알 수 없다.


그 후배는 이제 산에서 넘어지고 또 산에서 위로받으며 청춘을 지나 중년으로 가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누구에게나 위로가 절실한 그런 순간이 있다. 그 상대가 자신을 잘 모르는 친구라면 더 좋을 테고 또는 혼자만의 등산이어도 좋을 일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구구절절 설명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서소문 성지 박물관]은 소문내지 않고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가는 곳, 그곳은 내게 그런 곳이다.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4 004.jpeg 지하의 벽들이 보이는 공원


설득이 되지 않는 발주처 회장과의 회의였다. 이번 설계를 그만두거나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아야 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이 강요된 날이었다.
협력사인 인테리어 실장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고 이면지가 되어버린 스케치 안은 그나마 흔적으로라도 남았으니 다행이었다. 갑자기 다음 스케줄이 사라진 오후였고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낮술로 기분을 달래기엔 부담스러운 초여름 날씨였다. 전철을 타고 무작정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2019년인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 부러움과 충격에 한동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스케치가 한없이 부러웠고 걷고 걸어 내려간 지하에서 만난 하늘은 충격이었다. 그 후로 뭔가 갑갑하고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힘도 꿈도 없을 때면 이곳을 찾았다. 이곳이 나를 불렀다.


그날의 오후도 그랬다.
서울의 번잡한 소음 아래, 무의미한 성공을 위해 경적을 울려대는 도시 인들의 숨소리 아래... 지하로 내려간다는 일은 어쩌면 마치 두툼하게 둘러쳐진 탁한 무언가를 뚫고 코를 막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인들이 내뱉은 다듬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허리부터 차곡차곡 아스 팔트 위까지 쌓여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야 할 공간이고 가림막이다.


그날 오후, 침묵의 공간인 그 지하로 내려가고 싶었다.


서대문 사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신유박해(1801년), 병인박해(1866)를 거치면서 약 100여 년 동안 2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조선시대의 행형지(형 집행 장소)로 쓰이다가 이후엔 처형된 천주교인 44명이 성인으로 추앙된 천주교 순교지가 되었다.


하지만 격변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1973년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었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가 생기면서 사람들에겐 먼발치의 장소가 되어갔다. 게다가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이 들어서면서 점점 황량한 장소로 묻혀졌다. 서울역의 노숙자들만 찾는 그런 곳으로.


이렇게 갇혀있던 땅은 2014년 설계공모전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2014년 6월 설계를 시작해서 2019년 6월 개관에 이르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였으니 그 공들인 시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박물관의 모든 시설은 지하에 있다. 보이지 않는 박물관이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공원으로 조성된 부지면적 약 6,400여 평 (서울광장 크기의 약 1.5배)에 건물연면적 지상 1층, 지하 4층 약 4만 6천 m2 규모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이 약 6만 3천 Mm2이니 박물관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시설은 지하로만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이 세상에 공개된 후 공간을 소개하는 디자인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있다면 어딘가요'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호명했다. 하지만 내게는 위로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그런 공간이다.


침묵의 공간인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지상의 공원을 걷고 걸어야 한다. 물론 지하 주차장을 통하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번거로움 없이 곧장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상을 걷는 것은 곧 만나게 될 지하 공간에 대한 마음의 준비 시간이다.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하는 '마중'은 꼭 사람들 간의 몸짓은 아니다. 3월의 밤거리에 나가보면 안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거짓말처럼 풀냄새가 맡아지고 가장 먼저 봄을 마중 나온 바람이 귓가를 스쳐 간다. 지상의 공원은 조금 쓸쓸해 보여도 곧 만나게 될 지하 공간을 맞이하는 마음의 공원이고 마중의 공원이다.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3 002.jpeg ‘노숙자 예수’의 작품이 있는 공원)


평일 오후 2시의 서울은 숨찬 하루에서 한숨을 돌리거나 혹은 풀어진 오전의 넥타이를 다시 매고 야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모두 월말의 성 과에 다가가는 시간이다. 나 역시 밤낮, 3개월 동안의 스케치가 이면지가 되지 않았다면 모니터 앞에서 도면을 바라보고 있을 시간이다.


나는 지금 공원의 한가운데 있다.
조경 디자인이 잘된 공원이지만 어쩐지 스산한 풍경의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오래전 읽었던 최인훈의 '광장'이 이런 모습이었을 까. 물론 196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분단 현실에 대한 소설이지만 '광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황량함이 떠오르는 오후 2시의 시간이다. 아무 도 없는 광장에 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함 같은.


지상에 있는 박물관 건물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실뿐이다. 지상의 공원은 역사적인 장소가 갖는 무게감과 상징성으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인적이 드문 공원은 적막하다. 오차 없이 매만진 잔디와 삭막한 도시 풍경이 잠시 잊힐 만큼 초록도 적당하다. 하지만 그늘 없는 초록에 몸을 기댄 사람은 없다.


이래 가지고는 위로를 받기는커녕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기 위한 마중의 시간이다. 걷고 걸었다.


그렇게 공원 한켠에서 캐나다 작가인 ‘티모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라는 작품을 만났다. 사람의 심장을 가진 순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얇은 담요를 얼굴까지 덮어쓰고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모습인데 담요 밖으로 나온 그의 발등에 못이 박혔던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은 로마교황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벤치에 누운 노숙자의 발 옆으로 한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 가만히 앉아서 발등에 슬쩍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이 남자에게도 지금은 위로가 필요하겠구나.
위로라는 말은 격려와 응원,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과는 다른 말이다.


위로는 가만히 있어 주는 일이다. 전력질주를 멈춘 어느 날, 가만히 있어 주는 친구의 손길이 그리고 가만히 나를 감싸주는 공간이 그렇다. 그런 위로가 필요하다.
이제 조금씩 황량한 광장이 지하로 내려가기 위한 마중의 공간이 되고 있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으면 드문드문 지하에서 올라온 벽들을 만나게 된다. 가까이 가도 그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는 높이의 벽이다.
햇빛은 벽 넘어 침묵의 공간으로 쏟아져 내려가고 다듬어지지 않은 지 상의 모든 단어들은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이제 박물관으로 진입하게 된다. 경사로의 양쪽 벽면은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벽체로 되어 있다. 시선의 맨 끝에 도착하는 박물관의 출입구를 향해 오직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걸어오느라고 고생했다며 이제 눈 감으면 침묵의 지하 공간 그곳으로 안내하겠다며 걱정 말라며 그렇게 오직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건축가는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는 사람의 공력을 생각하며 붉은 벽돌을 선택했다. 심지어 콘크리트 벽체도 한 번에 쏟아부어 만든 형체가 아니다. 요철 모양의 거푸집 사이에서 굳은 콘크리트는 매끈했으나 요철의 모서리를 정으로 잘게 부순 흔적이 있다. 거친 질감의 콘 크리트 벽체는 비로소 붉은 벽돌과 함께 공력의 시간을 가진 모습으로 태어났다.


문득, 누군가를 만나 일이든 사랑이든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간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붉은 벽돌과 회색 콘크리트마저도 어느 순간 한 곳을 바라보기 위해선 스스로 깎고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일과 사랑은 오죽하겠는가. 시간의 공력이 담긴 두 물성의 모습이 양쪽에서 나를 안내한다.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 모서리에 손을 댔다. 십수 년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시멘트 가루가 손에 묻어난다. 시간이 먼지처럼 남아있다. 소실점의 끝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4 003.jpeg 지하 경사로의 콘크리트 벽체


콘크리트 벽체의 안내를 받고 내려간 경사로의 끝에는 붉은 벽으로 둘 둘러싸인 진입광장이 있다.
하늘은 열려 있고 붉은 벽 너머로 하늘과 함께 고층빌딩이 중첩되어 보인다. 지하의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 열린 공간이다. 바로 이 공간 이 관람객을 맞는 박물관의 첫 모습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곧장 박물관으로 진입하면 이 광경을 만날 수가 없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했던 공원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지상에 있었다. 반드시 지상의 공원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고작 4 미터를 내려왔을 뿐인데 순식간에 다른 세상이다.


박물관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충분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다. 서너 시간 전 10층 회의실의 그 참혹했던 공기는 지상 어딘가에서 더 이상 따라 내려오지 못하고 사라졌다. 진입광장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알 수 있다. 죽일 듯한 눈빛으로 주고받던 악다구니들이 결국 붉은 벽 위의 한낱 웅성거림이었음을.


진입광장에서 올려다본 빌딩이 몇 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반듯하게 나눠진 창문의 모습은 선명하다. 저 창문 안에서는 지금도 이러지도 저 러시도 못하는 수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다. 환호를 지르거나 고개를 떨구거나 서로의 등을 바라보고 있겠지. 어차피 지나갈 모든 일들이라는 걸 지하 광장에 서서 보고 있다.


지하 1층 박물관의 홀은 층고가 다소 낮아 보인다. 손을 들면 천정의 마 감이 만져질 정도이다. 100만장 가량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박물관은 사람의 손으로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공력으로 인해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다. 성지 역사박물관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도 왠지 어울 리는 작업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층고가 낮은 홀의 천정도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벽에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천정으로 흐르는 연속성 덕분에 낮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붉은 벽돌 한 가지 재료로 건물 내외부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치장하지 않고 오직 공간이 만들어 내는 감각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겠다는 뜻이다. 꾸밈이 있다면 그림자뿐이다. 붉은 벽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작고 큰 그림자에 눈길이 멈춘다.


홀에서 약 40미터 정도의 좁고 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서 만나는 곳은 ‘성 장하상 기념성당’이다. 박물관에 들어오기 전 진입광장이 지하 1층, 이제 또 다른 경사로를 따라 지하 3층까지 내려가게 된다. 이곳에 선 매일 미사가 진행되는 곳이고 여느 성당과 같이 고해소도 마련되어 있다.


고해소로 가는 길을 유심히 보면 붉은 벽돌을 쌓은 방식이 다른 걸 알 수 있다. 돌출되고 들어간 벽돌의 두께 덕분에 벽에 드리워진 음영이 다르다. 그 다른 음영은 발길을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벽을 파서 세워둔 순교자의 모습은 그림자 덕분에 유난히 형형하다. 순교자의 모습에 드리워진 벽돌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두고 있다.


지하 3층, 그곳에 위로의 공간이 있다. 어둡고 긴 경사로를 따라 어딘가 로 계속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공간.
언젠가 어둠 속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다. 설치미술가 ‘제임스터렐’은 어둠 속에서 오직 촉각만으로 작품을 보길 원했고 어느 순간 서서히 그의 작품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둠은 언제나 마음 깊은 곳의 내밀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누군들 그런 무언가가 없겠는가. 서로의 얼굴이 밝게 보이는 공간에선 차마 꺼내지 못하는 무언가. 말없이 사라지던 용기도 희망도 비로소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살아난다.


골목을 돌 듯 몇 번이나 어둡고 긴 경사로를 내려간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비로소 지금까지 걸으며 느껴왔던 모든 촉각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곳이 지하 3층 위로의 공간이다.
그곳은 마치 벽장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동화처럼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의 한 페이지이다. 어두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 맨 끝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
알 수 없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4 005.jpeg 어둠 속 정육면체의 경사로

다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그런 공간 앞에 서게 된다.
빙빙 돌아서 내려온 지하의 그곳은 ‘위로와 위안’을 뜻하는 콘솔레이션 홀이다.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빈 공간으로 들어가 보면 그곳, ‘콘솔레이션 홀’ 은 조선시대 이 땅에서 목숨을 다한 과거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안과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이다.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텅 빈 공간이니 올려다봐야 천정이 어디쯤 인지 알 수도 없다. 사방이 막혀 있지만 투명하다. 빈 공간에 서 있지만 모든 공간은 나를 향해 집중하고 있다. 오직 나만을 위로하기 위해 이 빈 공간이 이곳에 있는 것만 같다.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5 006.jpeg 콘솔레이션 홀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5 007.jpeg 콘솔레이션 홀

몇몇 방문객들이 있지만 상관없다. 어떤 공간은 소란스러움이 정이 되지만 또 어떤 공간에선 침묵을 지키는 게 암묵적인 룰인 덕분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양 위로의 공간을 만끽하고 있다.


지하로 오기 위해 걸었던 지상의 공원 어디쯤에선가 시작된 자연광이 ‘콘솔레이션 홀’의 한가운데를 가느다랗게 비추고 있다. 모르고 지나갔던 공원의 어딘가에 지하로 통하는 빛의 길이 뚫려 있었구나.
그 작은 통로로 지상과 지하 두 공간이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


그 공간 어디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를 받게 된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검은 벽은 바닥에서 어른의 키만큼 떠 있다. 앉아서 눈길을 돌리면 바닥과 벽 사이로 내가 앉아 있는 이쪽 공간 건너편으로 로 무언가 또 다른 광경이 보인다.
콘솔레이션 홀로 들어오기 전의 긴 복도, 외부에 맞닿은 긴 복도는 천정에서 바닥까지 창으로 되어 있다.

‘콘솔레이션 홀’의 복도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세계다. ‘하늘 광장’이다. 지상에서 땅을 움푹 파서 지하 3층의 바닥이 훤히 드러나도 록 만든 커다란 중정이다. 지하에서 만나는 외부공간이다.


문을 열고 나가 만나는 하늘광장은 지하에 있지만 지하가 아닌 말 그대로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다. 18미터 높이의 벽과 바닥이 온통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면을 마주한다. 단 한번 도 지하에서 이런 공간을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모든 붉은 벽돌은 외장재였다. 고딕성당의 고풍스러움도 붉은 벽돌에서 나왔고 강남 교보문고의 당당함도 그 붉은색의 외장재에서 나왔다.
하지만 하늘광장의 붉은 벽돌은 완벽한 내장 마감재였다. 방안에 하늘을 품기 위한 마감재였다. 한 장 한 장 쌓아가며 만든 붉은 방에는 하늘 이 가득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맑은 날에도 그 모든 하늘은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누군가를 위해 붉은 방 안에 있었다.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붉은 방을 가득 메운 하늘이 오직 나를 위 해 쏟아져 내리고 있음을 안다.


콘솔레이션 홀의 바닥에서 시작된 가늘고 긴 생명선은 하늘광장의 바 닥까지 연결되어 있고 순교자 44인을 형상화한 '서 있는 사람들'이란 작품은 침목을 활용해서 디자인했다. 기차가 수천, 수만 번 지나가며 그 무게를 견딘 침목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간을 그렇게 견디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6-02-22-08-35-25 008.jpeg 하늘광장의 붉은 벽과 하늘


빈 공간이 이토록 아름답고 경건하고 또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힘들 때마다 이곳을 방문하곤 했는데 얼마 전엔 붉은색의 중정에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걸 목격했다. 디자인된 하나의 공간이 자연을 만날 때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말 없는 지하의 공간이 내게 위로와 위안을, 그리고 삶의 영감을 주고 있다. 나는 지금 침묵의 공간 안에 서 있다.
침묵은 소리가 없는 조용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침묵은 모든 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공간은 나의 시간을 바라보고 나의 단어를 바라보고 나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침묵의 위로 속에 있다.


물론 그 오후의 하늘광장이라고 누군가의 사라진 꿈과 힘을 다시 불 불러오진 못할 것이다. 다만 꿈과 힘을 사라지게 한 힘들고 편협한 언어들이 별거 아니라고는 얘기해 주고 있다.
일상을 회복하는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 그곳 붉은 벽돌 위에 있다.


*우영이형의 건축학교 1회차, 4월 10일 오후 4시에 윤우영 건축가와 함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갑니다. 이 공간을 듣고 느끼고 나만의 공간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오후 4시-6시,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해주실 분들은 여기서 신청해세요. https://forms.gle/X8TWDWn5rPW4QMj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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