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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Jul 26. 2022

아파트 욕실에는 왜 창문이 없을까?

숲세권 아파트 설계의 기록 3편

(이전 글: 이 땅에 무엇을 지을까요? 바로가기)


이번 글은 조금 상세하게 설계도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는 안방 욕실에 창을 냈을 뿐만 아니라 숲의 나무 한그루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경험을 주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는 솔루션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 대지의 조건을 입주자가 최대한 누릴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수익면에서 발주처에게도 무조건 유리한 제안이어야 했다. 1,2 센티도 아까운 아파트의 치열한 전용면적 싸움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되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던지는 첫 질문.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욕실에는 왜 창문이 없을까? 불필요한 공사비의 증가, 인접한 아파트에서 보이는 프라이버시 문제 또는 난방의 문제 등을 떠올려 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발코니 때문이다.  


  

‘아파트 설계를 잘한다’는 칭찬의 의미


아파트의 모든 발코니는 확장형으로 계획된다. 원래 발코니는 방과 거실의 문밖 공간이었다.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지만 처음부터 확장을 해서 전용면적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등기부등본에도 없고 세금도 내지 않는 면적을 내 것으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는가. 그러니 '아파트 설계를 잘한다'는 말은 곧 확장형 발코니를 최대한 확보해서 전용면적화 한다는 말과 동일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주방의 설비나 욕실의 설비가 있는 경우는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하다. 발코니를 포함한 서비스 면적에 주요 설비기능을 둘 수 없다는 규제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코니를 확장하기 전 방의 폭을 최소 2.1 미터로 규제해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코니를 없앨 경우에도 공간의 주요 기능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발코니로 확장할 수 없는 욕실에 창문을 두어 외기에 접하게 설계한다는 것은 '아파트 설계를 잘 못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기왕에 확장형 발코니를 두지 못할 바에야 창문 없는 평면의 한가운데, 외기에 접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욕실을 배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여러분 가정의 아파트 욕실에 창문이 없는 이유다.



숲과 경계를 이루는 D타입: 욕실, 거실, 부엌을 숲과 나란히


일반적인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이런 공간 구조가 아닌,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아파트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잠시 넣어두어야 했다. 게다가 거실 바로 앞에 숲이 펼쳐지는 도심의 아파트 설계라면 더욱 그렇다. 면적에 손해되지 않는 욕실의 창과 확장하지 않아도 되는 발코니, 거실과 식당의 조망까지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숲의 자연과 외벽의 콘크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답이 있지 않을까? 내부와 외부, 그 경계에 있는 창문과 발코니에 집중하면 숲을 향한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여기서 출발했다.



1. 초기안: 숲 조망에 집중한 D타입 평면 스케치



1. D타입 평면 스케치 초기안


우리는 4개의 타입 중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의 숲과 경계를 이루는 D타입에 집중했다. 남동 측의 작은 숲을 집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파트의 설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단순히 풍경으로의 숲이 아니라 경험하는 도심의 숲으로. 


초록을 평면 한복판으로 들여오기 위한 스케치의 첫 그림은 각 실의 위치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초기안(위 그림)을 보면 거실을 중심으로 나머지 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인 중심 공간은 위 초기안 1번의 식당이다. 그림에서처럼 식당 한가득 숲을 가져오는 창문을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우선 식당, 거실, 안방을 위와 같이 배치하고 언제나 주방 옆에 붙어 다니는 다용도실까지 고려하니 숲으로 열린 평면의 폭이 아까웠다. 다용도실에 할애할 만큼 넉넉한 조망권이 아니었다. 다용도실의 기능이 무엇인가? 아파트의 다용도실은 원래 보일러 공간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세탁공간이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다용도실이 주방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 세탁과 수납으로 쓰이는 공간을 반드시 주방 옆에 확보하기 위해 입주자는 많은 희생을 감수해왔다.


결국 우리는 불필요하게 커져 있는 주방 옆의 다용도실을 과감히 없애는데 합의했다. 대신 그 기능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제안했다. 현관에 들어서 좌측 중문을 열면 초기안 2번의 공간, 메인 화장실 바로 앞에 위치시킨 것이 세탁실이다.


다용도실의 기능은 크게 세탁공간과 수납공간이다. 우선 세탁공간의 위치를 현실적인 곳으로 제안했다. 집에 들어와 샤워하기 전 세탁기에 각자 옷을 집어넣는 간략한 동선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여러 벽면을 활용하여 수납공간 또한 희생되지 않도록 보완했다.


다음은 식당 옆의 3번 공간이다. 여기는 확장하지 않는 발코니와 보일러실이다. (아파트의 세대에는 화재 등 위급상황에 대비해서 법적인 피난동선을 둔다. 잠시 피해있는 대피공간이거나 바닥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하향 피난구가 있다. 이번 계획안에서는 하향 피난구를 계획했고 그곳은 확장이 안되는 발코니여야 한다.) 발코니를 가로방향 큰 폭으로 설치하지 않고 외기에 접하는 세로 방향 작은 폭으로 설치했다. 그렇게 찾은 숲으로의 조망이 주방과 작은 방에 할애될 수 있었다.

  

2% 부족하다 이건 아닌데?


이렇게 초록의 숲을 아파트의 평면 내부로 끌어들였다. 1차로 마무리된 평면을 3D로 올려 보았다. 거실, 안방, 주방, 식당, 작은방까지 거의 모든 실에서 숲을 느낄 수 있게 배치했으나 여전히 흡족하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단순히 풍경으로의 숲이 아니라 경험하는 도심의 숲'을 만들자는 처음의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생각했다. 숲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숲을 바라보는 행위가 몸의 어딘가로 깊이 들어와 긴장을 풀게 하고 힐링할 수 있게 한다면, 그리고 맨발로 데크에 덮인 이파리를 밟으며 차 한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비로소 도심의 숲을 경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두 가지 공간을 다시 계획했다.

안방의 욕조에 누워 바라보는 힐링의 숲이다.

숲의 나무 한그루가 침범해 들어온 발코니다.


하지만 초기 안에서 숲의 조망을 모두 사용했으니 계획안은 처음부터 다시 고민되어야 했다. 우리는 스케치의 첫 장을 다시 꺼냈다.  


2. 최종안: 나무 한그루가 거실로 들어온 D타입 평면 스케치

2. D타입 평면 스케치 최종안


안방 욕실을 숲의 조망을 위한 방향으로 우선 배치해보았다. 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위 최종안의 그림 1처럼 안방의 전면이 1.8미터 밖에는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욕실의 조망을 위해서라고 해도 안방의 창을 작은방 창 크기 정도로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숲의 조망을 위한 D타입의 안방과 안방 욕실은 포기 직전까지 갔다. 이때는 이미 A, B, C, D 각타 입의 경계를 결정하고 난 후였다. 지긋지긋한 면적 싸움을 마친 상태였으니 D타입과 그 아래에 있는 C타입의 경계가 이미 명확했다. 틀이 정해져 있는 평면 경계선 안에서 답이 없는 씨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D타입의 욕실을 C타입의 경계 아래로 침범해서 내리는 솔루션을 위 최종안 2번과 같이 제안했다. 그림 1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래쪽 C타입의 평면으로 욕실을 밀어 배치하고, 대신 늘어난 만큼의 면적을 다른 곳에서 블록처럼 맞춰 나가면서 해결했다. 마침내 욕조에 기대서 보는 팔 높이의 욕실 창문과 안방의 채광이 동시에 해결되었다. *수학 문제를 풀듯 어떻게 해결했는지 상세하게 읽고 싶은 분들은 계속 읽어 주시고, 결론으로 건너뛰실 분들은 [안방 욕실의 숲과 발코니의 존재감] 단락으로 넘어가세요 :)


수학 문제를 풀듯 퍼즐을 맞추며


아파트 설계의 절반은 면적 싸움이란 말이 있다. 정해져 있는 용적율에 포함되는 면적을 소수점까지 정확히 맞추는 것이 최대의 이익을 가져온다. 아파트 면적은 크게 전용면적, 공유면적, 서비스면적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공유면적은 계단실 등 주거외 면적과 중심선과 전용면적 사이의 벽체면적인 주거면적이다. 이때 한 곳의 전용면적을 키우고 다른 곳의 면적을 줄인다고 해서 합계가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벽체의 면적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을 움직이는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 솔루션만 놓고 보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C타입의 평면 구성을 침범하게 될 뿐만 아니라 D타입의 용적율과 전용면적도 늘어나는 바보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게다가 C타입의 방 옆으로 화장실이 내려오게 되면 그 영역(최종안 3번)을 ㄷ자로 공사를 해야 하는데 불합리한 평면구성이자 공사가 된다.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우선 늘어난 D타입의 전용면적을 전체적으로 줄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침실 2 옆의 화장실 덕트의 크기를 늘리고 (전용면적에서는 줄어들지만 화장실에서 선반으로 활용 가능하다) 침실 1의 벽을 왼쪽으로 10cm 밀고 부엌의 대신 늘어난 면적은 피난구로 표시된 (실질적으로는) 발코니를 키워서 해결했다. 어차피 여기는 전용면적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이쯤 되면 눈을 감아도 숫자들이 보인다. 벚꽃처럼 눈앞에 한가득 숫자들이 돌아다녔다.


다음은 C타입 방의 외벽선과 D타입 안방 욕실의 벽 선이 불합리하게 연결되는 지점(최종안 3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긋나는 벽 선으로 생긴 작은 부분을 욕실의 덕트로 활용했다. 불합리한 공간의 문제도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C타입 작은방의 창문도 더 최적화되었다. 보통 다른 환경이었다면 창문의 개방감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창문 너머 숲을 이용하면 무조건적인 개방감보다 숲을 액자(최종안 4번)처럼 끌어들일 수 있어 더 드라마틱하게 풍경과 하나 되는 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방 욕실의 숲과 발코니의 존재감


퍼즐을 맞춰 완성된 최종안은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욕실과 함께 자연 그대로의 안방 발코니(최종안 5번)를 가지게 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발코니는 반드시 필요했다. 이 공간은 확장형 발코니로 사라져서는 안되는 핵심적인 공간이었고 입주 후에도 사라질 이유가 없게 설계했다.


숲으로 향한 욕실과 거실 사이의 공간, 그곳은 2미터 폭의 발코니를 두기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물론 이 공간을 위한 면적 계산으로 하루가 필요했지만) 발코니가 없는 최종안 2번 공간을 생각해보자. 건축도면을 모르는 누구라도 그 비어있고 어중간한 곳을 채워 그리려 하지 않을까? 단순히 풍경으로의 숲이 아니라 경험하는 숲으로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스케치업으로 올려본 가상의 아파트 실내 공간은 사계절 변화할 산의 모습과 함께 유쾌한 웃음소리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숲으로 활짝 열린 곳에 놓인 식탁은 도서관이거나 카페로 항상 가족과 함께 하는 집의 중심 공간이다. 안방 욕조에 몸을 기대어 느끼는 힐링의 시간뿐이겠는가. 맨발에 닿는 낙엽은 3D가 아니라 곧 경험하게 될 눈앞의 공간이었다.  


  

반전 그리고 마지막 편 예고


이처럼 거실과 안방, 욕실을 새롭게 상상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수십 번에 걸친 설계 변경이 있었다.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점차 만족스러운 설계로 완성되면서 기존의 관점에 익숙했던 실무진들도 비로소 공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발주처의 팀장이 말했다. " D타입 이거 제가 하나 분양받아 볼까 해요."


하지만 여기까지 재미있게 읽어주신 독자들에게도, 우리 팀에게도 미안하지만 숲을 바라보는 D타입의 설계안은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가장 안정적인, 즉 발주처에게 가장 익숙한 설계안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이 새로운 접근이 더 큰 수익을 보장하는가?"가 마지막 의사결정의 가장 큰 기준이었음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작성하기 전에 나는 이미 채택이 안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게 되물었다. 구현되지도 않을 설계안을 왜 나는 댄스위드스페이스 시리즈의 첫 주제로 정했을까? 왜 나는 이 고단한 설득의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몇 개월을 계속했을까? 이 반전의 결론이 오직 수익에만 목적을 둔 발주처 때문이라고 쉽게 말해도 될까? 이 시장이 원래 건축사에게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시장이라고 남 탓하며 끝을 낼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의 경우 단기적인 분양 수익도 보장하면서 장기적인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도 상승시킬 수 있는 솔루션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어차피 분양이 보장된 프로젝트라면 가장 리스크가 없는 안으로 가자고 의사결정이 뒤집어지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이런 일을 처음 겪지 않았다. 아니 자주 겪었다.


지금껏 프로젝트에 쫓기며 한 번도 정리해보지 못한 대목이다. 이 반복되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끝없이 제안하고 있을까? 성공적인(가치있는) 건축물로 완성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잠깐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앞으로 이어질 글이 여러분과 함께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보너스 토끼굴

이 글은 댄스위드스페이스 워크숍의 산물이다. 무슨 워크숍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오가닉미디어랩의 링크 [워크숍 공간투어 @연희동]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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