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우영 Jun 13. 2022

“이 땅에 무엇을 지을까요?”

서울 한복판 숲세권 아파트 설계의 기록 2편

수많은 설계의 목적물 중에서도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주택(1)의 설계는 특별하다. 수익 극대화가 최종 목표이고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된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토지를 매입해서 주택을 짓고 분양해서 얻게 되는 수익 이외는 그 어떤 것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 숲세권 땅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겨우 1,150 ㎡ (350평가량)의 세모 모양의 까다로운 땅임을 감안하면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오로지 법규가 허용하는  최대의 면적과 수익 극대화라는 발주처의 요구에 집중한다면 누구나 다세대 주택(2)을, 그것도 한두 타입의 단위 세대 설계도면으로 일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 땅에 가능한 모든 경우의 공동주택 안을 초기에 검토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검토했던 안 중 3개의 안(3)을 예시로 들어본다.


오로지 땅의 형태와 기본 법규만을 가지고 배치한 평면


1안 - 다세대주택형 3개 동 배치안


우선 다세대주택 3개 동의 설계안은 대략 이런 모습이다. 3개 동이지만 계단실의 적정 구성으로 프라이버시도 어느 정도 확보된 안이다. 아래 배치도처럼 주택 3개 동이 마주 보는 경우 가장 프라이버시가 취약한 곳은 서로 창문이 마주 보게 되는 지점이다. 이곳에 공동 계단실을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을 설계해 최대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다세대 주택 3개 동 배치안]


2안 - 원룸형 아파트 1개 동 배치안


두 번째 비교할 설계안은 원룸형다. 세 가지 안 모두 주변 환경보다 효율을 강조한 것이지만 이 원룸형 배치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그렇다(계단실과 같은 공용면적 대비 최대한의 전용면적을 확보한 그림이다). 원룸형은 주된 거실의 창문이 하나로 구성된다. 이경우 가장 많은 세대를 확보하기 위해 동서남북 등 주변환경의 고려 없이 주택을 배치했다. 각 거실의 향이 동, 남, 서 제각각이다.


[원룸형 아파트 1개 동 배치안]


3안 - 투룸형 연립주택 1개 동 배치안


마지막으로 투룸형 연립주택 검토 안이다. 저층형 아파트의 장점을 살린 두 가지 타입의 공동주택이다. 다세대주택의 경우 한 개 동의 연면적이 660㎡(약200평)으로 제약조건이 있지만, 연립주택의 경우는 그런 제약조건이 없다. 한층에 보다 많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어 효율적이나 여전히 주변환경은 고려되지 못한다


[투룸형 연립주택 1개 동 배치안]


위 세 가지 검토 안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 팀이 그려서가 아니라) 물론 커트라인은 훌쩍 넘는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오로지 땅의 형태와 기본 법규만을 가지고 평면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본래 발주처는 이 세 개의 안에서 방향을 잡자고 했다.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쉽게 일할 수 있는 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장은 거기 만족하지 말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건축부지는 각각 유일하며 저마다의 의미와 건축사에게 주는 챌린지가 있다. 오직 현장을 방문해야 알 수 있는 것들, 방문한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경험과 상상이 있다. 30년을 반복했어도 새로운 부지와의 만남은 매번 그렇다.


어느 지점에 서자 초록의 잎들이 눈앞에 가득히


2021년 여름, 현장을 방문하여 주변을 둘러보고 곳곳을 걸었다. 주택이 들어선다는 가정으로 곳곳을 살폈다. 흥미롭게도 건물이 들어서는 방향에 따라 서로 완전히 다른 주변 환경을 갖고 있었다. 대지의 경사면 어느 지점에 서자 초록의 잎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고개를 돌리자 남쪽으로 막힘없는 도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아파트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의 도시 풍경이 그려졌다. 각각의 단위세대가 갖게 될 서로 다른 거실과 식당의 즐거운 풍경을 상상했다.


다세대주택 3개 동을 설계하기에는 아까운 땅이었다.

한 개 층에 몇 세대를 구성하든, 한 가지 타입이 아니라 이 특별한 조건의 대지에 놓여지는 세대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타입의 설계가 필요해 보였다. 입주자도 반가워할 일이지만 이 복잡한 설계가 결국 건물의 가치를 올릴 것이란 확신도 들었다. 그렇게 한 개 타입의 다세대주택을 제안한다면 수월했을 일을, 설계비를 4배로 청구할 수도 없으면서, 고작 28세대를 위해 나는 총 4개의 서로 다른 타입의 설계안을 제안하게 된다.


각 대지의 조건에 따라 제안된 4개 타입 28세대


대지의 조건에 따라 어떤 건물을 세울지의 콘셉트를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대지가 갖고 있는 특정지의 법규를 확인하는 일인데, 특히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이라면 법규를 토대로 최대의 면적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이곳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7층 이하), 용적율 200%이하인 토지였다.


주차목적으로 사용하는 필로티 구조(벽체 없이 기둥으로만 형성된 공간)로 1층을 가정하면 층수에서 제외가 되므로 결국 8층까지 가능한 지역이 된다. 또한 용적율은 대지면적 대비 지상의 연면적 비율을 말하는데 용적율 200%란 대지면적의 두배까지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얘기는 간단해진다. 지상의 가능한 총연면적을 계산하고 그 값을 7개 층으로 나누면 한 개 층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면적이 나온다. 단위세대의 전용면적이 약70M2 정도로 정해진 이유다. 또한 이번 현장의 대지조건은 1편에서 파악한 대로 까다롭다. 북동 측의 인접대지와 아파트 단지, 북서 측의 도로와 반대편의 아파트 단지, 램프를 따라 형성된 또 다른 도로와 개방감 있는 남서 측이 있다. 가장 중요한 남동 측으로의 숲속 조망까지 어느 것 하나 일반적인 것이 없는 대지였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한 결과 전용면적 약 70 ㎡의 총 4개 타입의 단위세대가 확정되었다. 한 층에 방 3개 30평형의 아파트 28세대다. 이 제안은 발주처도 꺼려할 정도로 복잡한 제안이었다. 성공적인 분양이 거의 확실한데 복잡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건축물의 가치를 크게 높여줄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4배 이상의 수고를 더해야 하는 내가, 발주처를 설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청에 따라 설계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였다.


4개 타입 단위세대 아파트 - 대지 환경 분석도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택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공동주택은 설계가 확정된 이후 입주자가 결정된다. 설계가 이뤄지는 동안 다른 용도의 건축물과 다르게 누가 주인이 될 것인지, 사용자가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는 모호함 때문에 보통은 분양이 보장되는 안전한 설계, 또는 익숙한 설계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위의 3가지 검토 안 같은 것들이다. 누가 사용할지 몰라 마음 편한 설계 과정일 수도 있고 누구인지 모를 건축주를 상상해야 하기에 그래서 더더욱 신경이 쓰이는 설계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가 수백, 수천 세대를 위한 것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주어진 대지의 주변 환경보다는 그동안 수없이 다듬어지고 검증된 한두 가지 타입의 단위세대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 30세대 이하 규모(이건 건축허가와 사업승인의 기준이기도 하다)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 특별한 아파트다.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택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수천 세대의 검증된 단위세대 하나를 집게로 뽑아서 이곳에 가져와 세운다 한들 주변환경과 어떻게 어울리겠는가?


3편 예고


“이 땅에 무엇을 지을까요?”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그 땅이 가지고 있다. 다음 3편에서는 오직 이 땅에서만 가능한 공간에 대한 경험,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민한 시간과 그에 따른 결과물을 공유할 것이다. 숲과 전용공간 간의 경계가 없는 설계를 제안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려웠다.


발주처와 관계자들의 피드백을 수렴하며 점차 완성도 있는 계획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길고 힘들었지만 어려운 관문마다 절묘하게 방법을 찾아내는 기쁨도 있었다. 그렇게 결정된  최종안을 마지막 편에서 공개하면서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하는 반전과 결론, 인사이트도 마지막 편을 위해  남겨 놓기로 한다.


윤우영 건축사

#댄스위드스페이스 #Dance with space

dancewithspace@naver.com




[각주]


(1) 공동주택:  건축물의 벽 · 복도 · 계단이나 그 밖의 설비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각 세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각각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을 말한다.

공동주택의 정의와 범위는 「건축법」과 「주택법」에서 정하고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공동주택 (토지이용 용어사전)


(2) 다세대 주택: 주택으로 쓰는 1개 동의 바닥면적 합계가 660㎡ 이하이고, 층수가 4개 층 이하인 주택을 말한다. - 출처 국토교통부


(3) 본격적인 설계를 진행하기 전 제일 먼저 규모 검토 단계를 거친다. 건축물 설계전 또는 부지 매입 전에, 어느 정도 규모의 건물이 들어설까 하는 사업성을 검토하는 단계를 말한다. 아래 3개의 안은 규모 검토 단계 후 상당히 설계가 진행된 그림들임을 일러둔다.


작가의 이전글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