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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May 26. 2022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서울 한복판 숲세권 아파트 설계의 기록 1편

2021 여름, 처음 가본 현장의 첫인상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하철역을 돌아 빡빡한 아파트 대단지를 걸어 올라갔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ㅇ산 근린공원이 눈앞에 나타난다. 손이 닿을 만큼 숲과 가까운 땅을 보며 머릿속에는 그림이 펼쳐졌다.  후로  매입부터 설계 완료까지  10개월여의 치열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글을 쓴다.


약 1년 전 건축주는 땅을 매입하기 망설여진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아무래도 좋은 땅이 아닌 것 같아요. 경사도 심하고 바로 뒤에 숲도 있어서 이 땅이 돈이 될지 모르겠어요. 포기할까 하는데 그래도 한번 와서 봐주시겠어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건축주의 얘기를 듣고 우선 부지를 확인하러 갔다.

[숲 바로 옆에 위치한 마름모꼴의 경사진 부지]

부지 자체가  프로젝트의 발주처 실무팀뿐 아니라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 모두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부지의 초입부터 끝까지는 심한 경사면으로 이어졌고, 후면은 숲으로 가려져 있어 개방감도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부지는 마름모꼴의 형태였다. 부지를 정리하는 토목공사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언뜻 보면 잘해봐야 다세대주택 3개 동이 빡빡하게 들어서면 다행인 부지처럼 보였다.


이런 경사진 부지가 값도 고가라니, 다세대주택 3개 동을 지어서야 수익이 나겠는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모든 단점들은 사실 장점이었다. 다른 도심의 사업지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장점 말이다. (모든 땅은 그만의 장점이 있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다.) 설계란 이런 장점들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프로젝트의 설계 콘셉트는 대부분 현장에서 정리된다. 현장을 걷고 둘러보며 현장만이 갖고 있는 환경에 집중하는 시간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부지의 단점이자 장점은 매우 명확해 보였다.


첫 번째 문제였던 부지의 경사면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이 경사가 없었다면 이번 사업의 수익은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용적율 200%라는 법규로 인해서 지상의 연면적은 대지면적의 두배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경사면 덕택에 용적율에 포함되지 않는 마치 1층 같은 지하층에 상가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수익은 극대화될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보통 램프(경사면)의 각도와 대지의 길이가 맞아떨어져야만 용적율에 포함되지 않는 마치 1층 같은 지하층을 형성할 수 있고 수익도 극대화된다. 현장에서 조사를 해보니 램프의 기울기는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는 1/12에 가까워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사면을 갖고 있었다. 또한 지하층의 층고를 4M 내지 5M로 계획한다면 상가가 접한 부지의 길이는 대략 50M에서 60M 정도가 되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기둥으로 형성되는 지하층 위에 벽식구조의 아파트가 올라가려면 일반 건축물보다 큰 사이즈의 보(기둥과 기둥 사이의 천정 부재)가 필요하고 4m 이상의 층고가 필요하다.


결국 램프가 시작하는 지점인 지하층 입구부터,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 도달하는 램프의 맨 마지막인 1층 입구까지를 계산해보면 안정적인 지하층의 층고를 확보할 수 있는 대지의 길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경사가 시작되는 초입에 지하주차장의 출입구를 배치해서 동선을 최소화하고 상가의 출입은 아파트의 출입과는 완전히 별도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 그만큼 수익에 유리해지는 것이다.


[사이트 분석] 경사로를 이용한 지하층 구성방법


두 번째, 숲과 인접한 비좁아 보이는 땅 또한 장점이었다. 사실 건축주가 분양성이 좋은 아파트보다는 다세대주택으로 사업을 검토하게 된 것은 까다로운 법규 때문이었다. 부지는 2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우리나라 건축법 중에 가장 규제가 심한 부지로 ‘정북방향 이격거리’라는 것이 있다. 북쪽의 인접대지경계선에서는 건물 높이의 반 이상을 띄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접한 건물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이런 환경에서는 주택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아파트를 지을 때는 북쪽뿐 아니라 창문을 내는 쪽으로도 이격거리를 띄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까다로운 법규에 해당이 안 되는 다세대주택을 계획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다세대주택은 북측이격거리 제약만 있다)

이 부지는 정확히 두 가지 문제를 다 안고 있었다. 아파트를 고려하기 어려울 만큼 좁은 땅이었고 이 정도의 면적에서 이격거리와 창문 쪽 거리까지 확보한 아파트 설계를 할 경우 각 실의 크기와 구성 등에서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데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부지의 북측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도로와 숲에 접해 있어 창을 내는 설계가 오히려 자유로웠다(참고로 창을 내는 방향으로 도로 쪽은 도로의 중심선에서부터 띄는 거리를 계산하고 숲이나 공원 쪽으로는 반대편의 경계선부터 거리를 계산한다). 그래서 정북이격거리가 확보되어야 하는 쪽으로 창문에 대한 제약도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결과 북측의 인접대지 쪽으로의 창문 계획만(인접지 쪽으로의 창문 크기는 0.5m2 이하 등) 유념한다면 충분히 아파트의 계획이 가능한 부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개방감이 없어 보이는 문제, 한 면의 조망이 숲으로 이뤄진 문제가 순식간에 장점이 되었다. 결국 이 부지의 단점이 이번 설계 콘셉트의 핵심으로 승격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열거해보니 건축사인 내게도 이 땅은 더없이 매력적인 땅이었지만 수익성 여부에만 국한시켜 땅을 평가하더라도 이 땅은 더없이 좋은 땅이었다. 이것이 건축주 실무팀의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물론입니다. 이 땅은 돈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잠재 고객들에게 건축주(발주처)의 브랜드를 명확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이렇게 건축주는 땅을 매입하게 되었고 나는 구체적인 설계를 착수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최종 결정된 설계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봤다면 설계 또한 새로워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과연 ‘수익성’에 국한되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에 익숙한 전통적 관점과 이 숲에 인접한 비좁은 땅을 새롭게 해석한 설계의 관점 사이에서 최종 의사결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 편에는 100번을 고친 도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윤우영 건축사

#댄스위드스페이스 #Dance with space

dancewithspace@naver.com


*20여 년간 건축사로 일하며 100여 개의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고통스러운 과정도 많았지만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 나는 여전히 설렌다. 이 글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건축사로 일하며 배우고 경험한 내 삶의 기록이다. 건축사로서 인생 2부를 시작하며 비로소 꺼내놓는 이야기이며 “경계없는 건축”으로의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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