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내 영혼은 길 위에서 깨어난다

배짱이 커플의 『튀르키예 & 그리스 여행기』

by 조르바와 춤을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 여행 중에 흘러나온 메모의 조각들이다.

지도 위의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

그때마다 겸손의 무게 추가 하나씩 늘어난다.

여행이란, 낯선 것을 사랑하게 되는 연습이다.


이번 여정의 이름은 “에게해 여행(Aegean Sea Travel).”

23일 동안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일곱 도시를 돌았다.

이스탄불, 괴레메, 안탈리아, 이즈미르, 아테네, 크레타의 하니아와 이라클리온.

그중 여섯 도시는 에게해를 둘러싼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냄새도, 물빛도, 역사의 질감도 바다를 닮은 곳이다.


이스탄불은 고대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오스만 제국의 심장으로 뛰었던 도시다.

안탈리아와 이즈미르는 각각 리키아와 이오니아 문명의 중심지였고,

그리스의 아테네는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원지였다.

크레타의 하니아와 이라클리온은 미노스 문명의 터전, 유럽 청동기의 첫 숨결이 깃든 곳이다.

괴레메를 품은 카파도키아는 내륙의 예외처럼 자리하지만,

신비로운 기암의 계곡 속에서 동로마 시대의 숨결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비행 편 문제로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를 놓쳤지만 괜찮다.

완벽한 여행은 없고, 미완의 여운이 다음 여정의 배낭을 꾸리게 하니까.


우리는 여행지의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명소의 이름보다 사람의 표정, 인증 사진보다 바람의 느낌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는 호텔 대신, 가능한 현지 주택가의 에어비앤비로 정했다.

주방이 있고, 세탁기가 있고, 창문 밖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집.

며칠이라도 그곳의 공기를 함께 마시며 살고 싶었다.


아침마다 동네 어르신들은 골목 카페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세상을 논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해 질 녘까지 소리친다.

시장에는 제철 과일과 활기로 가득하고,

버스는 혼잡한 도로를 비집고 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그들의 하루에 잠시 빠져드는 것, 그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나톨리아와 에게해의 역사를 훑고,

오르한 파묵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장을 쫓았다.


카잔차키스는 젊은 시절 이런 글을 만났다.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을 행복할지어다.

집에서 기르는 소처럼 1년을 살기보다는 하루 동안이나마 들소가 되리라."


카잔차키스의 가슴을 뛰게 했던 글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

이번 여행은 카잔차키스와 동행이었다.

젊은 시절, 그의 배낭에 단테의 <신곡>이 함께 했다면,

내 배낭 속엔 카잔차키스의 <내 영혼의 자서전>과 <지중해 기행>이 함께 했다.


어느 날은 식탁 위에 와인을 엎질러 책장이 붉게 번졌다.

그의 영혼과 내 여행이 한 잔의 와인으로 섞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을 병에 담아 두고 싶을 때가 있다.

빛, 냄새, 바람, 웃음,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금세 사라지지만, 글로 남기면 향기가 된다.


이 기록은 지나간 순간의 잔향을 담아두려는 마음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음 여행의 단서가,

나에게는 다시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되기를 바라며.



아테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앞,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한 버스킹 장면





** '배짱이 커플'은 '배짱 있는' 커플을 뜻합니다. 물론, '베짱이 근성'도 갖고 있습니다.

** 앞으로 여행의 하루하루를, 24회차로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