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자, 문명의 속삭임을 들으러

1th. '서울'에서 '이스탄불'로

by 조르바와 춤을


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 걸까.
저 땅은 무슨 오묘한 기운으로 수메르, 앗시리아, 미노스, 바빌로니아, 미케네 같은 초기 문명을 꽃피운 걸까.
저 땅에 가면, 그곳의 붉은 흙먼지를 밟으며 돌기둥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문명의 첫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1.

하루 전, 지방에서 올라와 묵은 숙소는 고시원 수준이다. 방이 좁아서 에어컨을 틀면 금세 기온이 내려가고, 끄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더워진다. 인천공항에서 오전에 뜨는 비행기를 타려면 지방 사람들은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매년 더위는 야금야금 온도를 올리며 끈질겨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과 등 쪽의 침대 시트가 땀에 젖어 있다. 새벽에 J가 에어컨을 끈 모양이다. 우리가 가려는 지중해 지역도 '여름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유례없는 에어컨 판매량을 기록 중'이라는 뉴스가 심심찮게 TV 전파를 탔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5시 50분.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서울역 서쪽 동네에는 아직 1980년대 잔상이 남아 있다. 오래된 간판의 기사 식당과 낡은 상점들 사이로 '매주 수요일은 12시~2시까지 무료 이발을 해드립니다'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낡은 건물 2층에 위치한 미용학원이 학원생 연습용으로 '공짜 헤어컷'을 해주는 것이다. 그 풍경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른 아침, 서울역 근처 사거리
영종도를 건너며 바라본 여명


2.

이번 여행은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출국 사전 수속을 밟아 보기로 했다. 수하물을 먼저 부치고, 출국 심사까지 미리 끝낼 수 있다. 게다가 공항에서 전용 보안검색대를 이용할 수 있어 'ㄹ' 모양으로 구불구불 대기 줄을 서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다. 실제 해보니 편하다. 편리와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는 확실히 선진국이다.


3.

비행기는 한 시간 지연되었다. 놀랍지도 않다. 경험상 해외 항공편은 제시간에 뜨는 경우보다 더 늦는 경우가 많다. 공항 대기실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로 나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햇빛을 머금은 금속 몸체가 반짝이며, 이내 굉음과 함께 하늘로 몸을 들어 올린다. 수백 톤의 쇳덩어리가 바람을 타고 떠오른다. 이 광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단순한 이륙이 아니라, 인간의 꿈이 실제로 떠오르는 장면 같다. 중력을 거슬러 비행의 길을 찾아낸 인간의 도전이자,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적. 어쩌면 우리의 여행이란 그 기적 위에 몸을 실어,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모험인지도 모른다.


인천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4.

나는 왜 이번 여행을 튀르키예와 그리스로 정했는가.

유년 시절, 즐겨보던 소년 잡지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사진과 함께 여러 신들의 이야기, 사라진 아틀란티스의 비밀에 대한 글들이 실렸다. 중학교 시절에는 세계사 교과서 초반부에 언제나 그리스의 문명과 정치, 철학이 주름을 잡았다. 그리스는 대단한 역사를 지닌 신비스러운 땅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유적들의 상당수는 지금 튀르키예가 자리한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해안에 로마의 흔적과 겹쳐 빛나고 있다.


하지만 40대 이후, 본격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그리스는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의 뒤쪽으로 밀려났다. 역사적 의미와 과거의 유적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끌어당기지 못했다. 뉴스와 동영상으로 접하는 그리스 거리는 실업자와 노숙자로 넘쳐났다. 유적지 주변의 노점상들조차 생계를 위해 조상의 유산을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거리의 벽에는 낙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라피티가 어수선했다. 내가 알게 된 그리스 근현대사와 현실은 신전들의 기둥 사이로 사그라드는 흐릿한 석양이었다.


5.

한때 인류 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리스는, 근대에 이르러 오히려 가장 많은 굴욕을 겪은 나라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수백 년을 보낸 뒤 어렵게 독립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독립 이후에도 정치는 늘 불안했다. 왕정과 군사 쿠데타가 번갈아 나라를 흔들었다.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점령은 또 다른 치욕이었다. 많은 이들이 저항했지만, 그 뒤엔 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는 이념의 전쟁터가 되었다. 형제가 서로 총을 겨누는 비극을 겪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정치의 혼돈은 계속되었다. 1960~70년대의 군사정권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했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었던 이 나라가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의 어둠 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자유란 피로 쓰인 단어다."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는 군사정권 시절 투옥되며 이렇게 썼다. 고대 아테네의 민회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던 그 광장은, 20세기에 와서는 침묵의 광장이 되어버렸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도한 복지와 부패한 정치, 회계 조작으로 인한 국가 부도 위기. '돼지들(PIGS)' 중 하나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 유럽의 부끄러운 나라로 낙인찍히며, '민주주의의 고향'은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다. 난 낙서가 그려진 대리석에서 인류 영광의 흔적을 더듬고 싶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의 현란한 스토리와 2500년 전 반짝이던 그리스 문명은 더 이상 내게 여행의 추동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6.

국가의 쇠락과 수치는 튀르키예가 한 수 위일지 모른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땅은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제국이었다. 오스만튀르크는 동서양을 잇는 거대한 문명을 세웠다. 이스탄불은 황금빛 돔이 빛나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국의 끝은 늘 부패와 오만에서 시작된다. 19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은 서구 열강의 먹잇감이 되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은 '병든 사나이(The Sick Man of Europe)'라 불리며 천천히 무너져갔다.


제국의 몰락 뒤에 남은 건 혼란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영토를 잃었다. 연합군의 점령 아래에서 민족의 자존은 짓밟혔다.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세속주의와 이슬람, 서구화와 전통 사이에서 나라는 끝없이 흔들렸다. 20세기 후반의 군부 쿠데타와 언론 탄압, 그리고 소수민족 갈등은 튀르키예의 민주주의를 깊게 훼손했다.


21세기 들어서도 그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튀르키예의 대통령, 에르도안은 한때 이 나라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는 국가의 중심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언론은 침묵했다. 사법은 권력의 시녀가 되었다. 반대의 목소리는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경제는 그의 고집 속에서 무너지고, 통화 가치는 끝없이 추락했다. 튀르키예는 더 이상 제국의 후예가 아니었다. 튀르키예 역시 불안한 정국 상황을 감수하며, 낯선 이슬람 국가로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7.

반전의 도화선은 찬란했던 역사의 흔적에 '최초의 기원'이 덧붙여지면서였다. 몇 해 전, 인터넷 뉴스에서 '인류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게 한 유적'이라는 기사를 만났다. 이름은 낯설었다. 괴베클리 테페. 스톤헨지보다 6천 년 앞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 그 짧은 기사 몇 줄이 내 안에 어떤 불씨를 댕겼다.

사진 속의 거대한 돌기둥들은 사막의 바람 속에서 신비로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농경도 시작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거운 돌을 세워 하늘을 향해 기도했을까. 먹고사는 일보다 먼저, 그들은 이미 신을 상상했다는 사실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 걸까. 저 땅은 무슨 오묘한 기운으로 수메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같은 초기 문명을 꽃피운 걸까.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 인류가 처음 정착하고, 처음 도시를 세우고, 처음 문자를 만들어낸 그 땅. 그리고 서쪽 에게해에서는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이 궁전을 세우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 성벽을 쌓았다. 청동기 시대의 빛나는 문명들.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된, 신화와 역사가 뒤엉킨 그 땅.

저 땅에 가면 그곳의 붉은 흙먼지를 밟으며, 돌기둥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문명의 첫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가보자! 가서 그 땅의 흙을 만지고 대기의 공기를 호흡해 보자. 그 땅에서 자란 올리브를 맛보고,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들의 삶 속에서, 문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먹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 중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되는, 1만 2000년 전 신전 괴베클리테페 유적.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출처: 헤럴드경제)


8.

아시아 동쪽 끝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지나 아시아 끝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가는 비행은 길었다. 약 11시간의 비행은 '아시아가 정말 큰 대륙'임을 실감케 했다. 3시간도 안 돼 엉덩이가 저려왔다. 중간중간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몸을 푼다. 기내 스크린은 '고도 8,500미터. 기온 영하 56도'를 알리고 있다. 밖이라면, 저 온도에서 인간은 몇 분 만에 체온을 잃고 호흡조차 힘들다. 생존은 불가능하다. 기내의 얇은 창문 하나가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늘 긴장과 경이가 공존한다.


시내 스크린에 뜬 비행경로와 외부 온도 안내


9.

어떻게든 시간은 간다. 몸을 뒤집고 말기를 몇 번,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공항의 규모는 여전히 크다는 느낌부터 든다. 인천공항보다도 넓고, 화려하다. 인천공항이 큰 규모에 비해 효율적 설계와 편의 시설로 칭찬받는다면, 이스탄불 공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답게 크지만, 동선은 길어 이동하다 보면 피로감이 느껴진다.


이스탄불 공항 / 수하물 찾는 곳


10.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스탄불의 윤곽은 거대했다. 인구 1,600만의 유럽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유럽 대륙에 자기 영토의 3%를 걸치고 유럽의 일부라며, EU 회원국 자격을 주장한다. 거대 목마를 밀어 넣어 차나칼레 트로이를 정복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 교훈을 이 땅은 잊지 않았나 보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이름을 세 번 바꾼 이 도시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탐욕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움켜쥔 도시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유일한 관문이자, 동서 교역로와 남북 해상로가 교차하는 결절점이었다. 이곳을 지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도시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물자의 흐름·군사의 이동·문명의 접촉을 통제하는 권한을 손에 넣는 일이었다.

로마는 이곳을 제2의 수도로 삼아 제국의 수명을 연장했고, 비잔틴은 난공불락의 성벽과 해협을 방패 삼아 천 년을 버텼다. 오스만은 이 도시를 차지함으로써 제국의 중심을 발칸과 중동, 지중해 세계로 확장했다. 해협을 통한 통행세와 무역 이익,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섞이며 만들어낸 상업·금융·기술의 축적은 이스탄불을 늘 부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혜택은 언제나 위험과 함께였다. 모든 길이 이곳을 통과한다는 것은, 모든 야망 또한 이곳을 향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역사는 그래서 번영의 기록이자, 끊임없이 침략과 공성을 견뎌낸 지정학의 최전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시내로 접근할수록 교통 혼잡은 상당하다. 서울도 이 정도는 아니다. 자동차로 이어진 거대한 흐름이 서로 얽혀, 혼탁한 강처럼 보인다.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 이곳의 도로 확장 역시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도시의 조명과 도로 가로등마저 흐릿해, 도시는 창백한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다. 빌딩과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 중간중간 첨탑을 치켜세운 모스크가 솟아 이 도시의 종교적 색채를 드러낸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이스탄불 저녁의 교통체증


11.

날씨는 의외다. 한국과 비슷하다. 이맘때 이스탄불은 늦여름의 열기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낮 기온은 25도 안팎, 아침저녁은 선선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습기를 머금지만, 한국 여름처럼 찜통은 아니다. 습한 여름에 시달리고 온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기후였다.


이스탄불 여행의 중심지로 불리는 탁심 광장에 내려 숙소로 향한다. 도로와 인도는 다소 거칠다. 도로 일부는 패어있고, 골목 안의 풍경은 어수선하다. 중간에 만난 식료품 상점의 진열 과일들은 그리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도시의 전등 불빛이 밝지 않다. 그래서인지 원도심은 오래된 도시의 고풍보다는, 먼저 낡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여행 첫날의 여정과 피곤이 겹쳐서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첫인상은 60점 근처를 오르내린다. 미리 살펴봤던 여행 후기에서 어떤 이는 이스탄불을 '낭만의 도시'라 하고, 또 다른 이는 '혼란과 소음의 덩어리'라고 적었다. 이스탄불은 내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 궁금하다.


이스탄불 여행의 교통 중심, 탁심 광장


12.

숙소는 3층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캐리어도 도시의 습기와 매연을 마셨는지 처음보다 무겁다.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손잡이라도 미끄러져 놓치면 뒤에 따라오는 J는 중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병원에서 여행을 시작할 수는 없으니 손아귀에 힘을 단단히 준다.

숙소는 적당하다. 침대, 주방, 욕실 그리고 발코니. 에어비앤비에서 사진으로 본 것과 일치하니 됐다. 바닥에 캐리어 자리를 잡고 지퍼를 연다. 장시간 숨을 참았던 캐리어가 일시에 한숨을 내쉬듯 벌어진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나니 피곤이 밀려온다.


13.

하지만 바로 잠을 잘 수는 없다. 내일 아침식사를 위한 간단한 식재료를 미리 사놓아야 한다.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숙소 주변을 둘러보러 나선다. 탁심 광장 쪽 호텔 거리 중간에 우리나라 슈퍼를 닮은 작은 마트가 보인다. 피곤한 가운데도 상점의 물품과 분위기가 궁금해 눈이 커진다. 우유, 요거트, 치즈 등 유제품은 상점 규모에 비해 많다. 몇 가지 정육이 진열된 곳에는 양, 소, 닭고기는 보였으나 돼지고기는 없다. 햄과 소시지 코너에도 돈육 가공품이 없다.

'이슬람 국가 맞구나.'

이곳에서 돼지고기는 금기 중 하나다. 꾸란은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다. 종교적 이유도 있지만, 중동의 뜨거운 기후에서 돼지고기는 쉽게 상하고 병을 옮긴다. 금기가 생존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경우다. 대신 닭고기로 만든 소시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500ml 요거트와 1리터 우유 1병, 계란 10개 들이를 같이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 우리를 화들짝 놀라게 한 의류상점 마네킹


기내식을 계속 받아먹어서 그리 배고픈 것도 아닌데, 사 온 식재료를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맛이 궁금해진다. 시식을 해보기로 한다. 일단 J가 궁금해하는 요거트부터 개봉해 한 입 떠넣는다. 우리나라 요거트에 비해 산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간이 나도 모르게 찌푸려진다. 닭고기 소시지는 식감이며 맛이 돼지고기 소시지에 미치지 못한다. 튀르키예 첫 음식 시식은 다소 실망이다. 하지만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우린 아직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본 것이 아니고 그저 마트 상품을 맛본 것이니까. 게다가 피곤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여행지의 첫인상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선입견이 앞서면, 도시의 진면목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감정과 판단이 흐려진다. 오늘의 피로가 내일의 새로움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자리에 든다. 만약 기대와 다른 풍경을 만난다 해도, 그것은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뜻이다. 기대와 다른 모습을 만나는 일도 여행의 일부다. 힘들었던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모든 경험은 이야기가 된다. 이번 여행도 분명 그럴 것이다.


'잊지 말자. 내가 웃어야 세상이 웃는다.'





** '에게 해 여행' 루트 :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7개 도시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경로

에게 해 여행 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