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h. 이스탄불(2)
이곳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고대 신화에서 제우스가 사랑한 여인 이오가 암소로 변해 건넜다는 길이기도 하고,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이 태어난 자리이기도 하다.
이 짧은 해협 위로 수천 년의 시간과 문명의 무게가 겹쳐 흐른다.
피곤했는지 푹 잠들었다. 중간에 한 번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다시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이곳 시차는 한국보다 여섯 시간 느리다. 곧 익숙해질 것이다. 5시 50분, 새벽을 가르는 첫소리가 들려온다.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알림, 아잔(Adhan)이다. 이슬람의 하루는 이 소리로 시작한다. 아침 첫 기도, 파즈르(Fajr)가 일출 직전에 울리고, 기도가 끝나면 해가 떠오른다. 튀르키예에 머무는 동안 알람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잔의 음색은 노래 같으면서도 노래가 아니다. 음악처럼 리듬이 있지만, 그 속엔 세속의 감정이 없다. 목소리는 울림과 떨림 사이를 오가며 공기를 흔든다. 한 음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음이 밀려오고, 그것은 마치 바람에 실린 기도처럼 도시 전체를 감싼다. 음성은 높낮이를 바꾸며, 골목과 지붕 위를 스치고, 숙소의 창문 틈새로까지 파고든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 소리를 듣는다. 저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아마도 위대한 알라의 권위를 선포하고, 인간의 복종을 명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울림 속엔 명령만이 아니라 평온함도 섞여 있다. 밤을 견뎌낸 모든 존재들에게 '이제 깨어나라'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아잔의 목소리는 그렇게 경건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도시의 아침을 깨운다.
아잔의 끝자락이 멀어질 즈음, 방 안의 공기는 서서히 진동을 멈추고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여운은 여전히 낮게 울린다. 문득 한국의 산사에서 들었던 염불 소리가 떠오른다. 닮은 듯 다른 두 소리. 둘 다 구도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아잔이 세상을 깨우는 외향의 소리라면, 염불은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내향의 소리다. 이스탄불의 아잔이 알라 앞에 세상을 일으킨다면, 산사의 염불은 나를 다독이며 안으로 이끄는 소리다.
발코니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이스탄불은 생각보다 언덕이 많다. 숙소가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멀리 도시의 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진다. 불규칙하게 놓인 집들의 벽은 흙빛, 회색, 그리고 붉은색의 조합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굴뚝이 솟아 있다. 오른편으로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이 보인다. 아잔이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던 건 바로 그 탁심 모스크가 숙소와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도시 위로, 서서히 빛이 번진다. 옅은 새벽빛이 회색 건물 위를 어루만지고, 지붕 위의 비둘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슬람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며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까? 아잔을 들으며 눈을 감고 카바를 향해 기도할까, 아니면 이 소리를 일상의 배경음처럼 흘려보낼까. 만약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느낄까? 아니면 익숙함 속에 무뎌질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해는 7시나 되어서 얼굴을 드러낼 모양이다. 생각보다 일출이 느리다. 공기는 차고 바람은 다소 센 편이다. J는 춥다며 이불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 '해가 뜬 후에 나가자'고 한다. 주변에 달릴만한 곳이 있어야 할 텐데, 구글 지도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달리기 코스를 발굴하는 것은 내 몫이다. J의 하루 컨디션은 아침 조깅을 시작점으로 한다. 50점에서 하루를 시작하느냐, 80점에서 시작하느냐는 달리기 만족도에 달렸다. 일단 탁심 광장 옆에 작지만 푸른 공간, 게지(Gezi) 공원을 점찍어 둔다.
날이 완전히 밝기를 기다렸다가, 달리기 복장으로 나온 J와 나는 현관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공중에서 흩날리듯 내리고 있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빗방울을 얼굴에 묻히고 나서야 아무 말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공기도 차가운데, 비를 맞으며 뛴다는 건 무리다. 첫날부터 조깅이 무산되다니. 여행이 시작부터 삐그덕 소리를 낸다. 운동복 차림 그대로 식탁에 마주 앉아 힘없는 미소를 주고받는다. 밖에서는 도시의 아침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시간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결국 우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달리기는 어렵겠지만 동네 정찰도 할 겸, 내일 아침 달릴 만한 코스를 미리 살펴보기로 한다. 탁심 광장에서 갈라타로 이어지는 도심이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하다. 비는 그쳤다가 다시 내리길 반복한다. 도심을 대략 훑어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스크다. 규모도 크지만, 도시의 배경 속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남다르다. 거의 500미터마다 하나씩 서 있는 거대한 돔과 미나렛은 각 구역의 이정표이자 정신적 중심이다. 탁심 광장의 왼편으로 모스크를 지나 오른편으로 돌면, 자연스레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Caddesi)로 이어지는 구조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풍경이 확 달라진다. 유럽의 대도시 중심가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 양옆으로 의류, 신발, 액세서리 매장들이 줄지어 있고,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는 브랜드 로고들이 반짝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스티크랄 거리의 아침,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젖은 돌바닥이 희미한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내 옆을 스치는 노인의 굽은 어깨에는 긴 봉 끝으로 커다란 바구니 두 개가 매달려 있다. 안에는 구운 빵들이 가득하다. 구부정한 등에서 세월과 노동의 무게가 느껴진다. 바구니가 흔들릴 때마다 빵 냄새가 퍼지고, 그 냄새가 비 냄새와 섞여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 뒤로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우산을 쓰고 걸어간다. 조금 떨어진 모퉁이에는 꽃장수가 서 있다. 손이 시린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는 색색의 꽃수레 옆에 서서 하늘을 본다. 물기 어린 도로 위에 붉은 장미, 노란 해바라기, 파란 국화가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꽃과 아저씨의 대비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지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생업의 고단함이 보인다. 이스티클랄 거리는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현실의 체온이 섞여 있다.
갈라타 다리가 시야에 들어올 즈음, 빗방울이 다시 흩뿌리기 시작한다. 금각만(Golden horn bay) 입구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한강보다 훨씬 좁지만, 역사와 사연은 훨씬 깊다. 금각만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한 천혜의 항만이었다. 비잔티움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도, 오스만 제국이 천년의 제국을 완성한 것도 모두 이 만의 품 때문이었다. 전쟁의 배들이 드나들었고, 상인들의 언어가 부딪혔으며, 종교와 문명이 서로의 어깨를 스치며 통과해 간 곳.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의 관문이었던 이 좁은 물길에는, 수천 년의 왕국과 제국이 흘려보낸 숨결이 지금도 잔잔히 떠 있다.
날씨가 흐리고 이른 시간이라 낚시꾼들의 모습만이 다리를 지킨다. 낚싯대 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아래로 검푸른색 물결이 뒤척인다. 건너편 구시가지 언덕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다. 벽돌의 붉은색과 회색빛 지붕들이 뒤섞여, 마치 시간의 결을 따라 쌓인 도시의 단면 같다. 그 사이로 솟은 모스크의 돔은 하늘과 맞닿은 듯 위엄 있게 서 있다. 도시의 이마에 박힌 왕관처럼, 그 돔은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삶을 내려다보고 있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 돌아올 때는 다리 아래쪽 통로를 지나 카라쾨이(Karaköy) 해안으로 접어든다. 해안 길에서 탁심 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의외로 가파르다. 숨이 조금 가빠질 즈음,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의 발걸음과는 무관하게, 낮은 담 위나 계단 옆에 몸을 뉘인 채 세상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경계도 기대도 없다. 마치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이들의 것이었고, 인간은 잠시 스쳐 가는 방문객일 뿐이라는 듯하다. 좁은 골목 안에서는 식당 주인들이 의자를 꺼내놓고, 빗물에 젖은 바닥을 쓸며 하루를 열 준비를 한다.
까르푸 슈퍼에서 우유, 요거트, 계란, 과일을 사고, 숙소 근처의 작은 빵집에서 백설기처럼 생긴 페이스트리 한 조각을 샀다.(이름은 여전히 모르지만, 튀르키예에서 먹은 빵 중 가장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에그 스크램블과 치즈 샐러드를 만들어 발코니 테이블 위에 차려놓는다. 종이 포장지를 조심스레 벗기자 따뜻한 빵 냄새가 퍼진다. 바삭한 겉면을 포크로 눌러 한 조각 떼어 입에 넣는다. 부드럽고 쫄깃하다. 담백한 고소함이 입안에 퍼지고, 새콤한 요거트에 이곳의 꿀을 섞어 먹으니 별미가 완성된다. 삶은 달걀을 베어 문 J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휴식 후 이스탄불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보스포루스 해협과 건너편 아시아 지구를 둘러보기로 했다. 베식타쉬 선착장으로 가기 전,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춰 카바타스 공원에 들른다. 해변과 도로 사이의 작은 입구를 지나면, 인공 언덕이 천천히 위로 열리는 구조로 아래에는 선착장 터미널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계단을 오를수록 소음은 사라지고, 바람이 달라진다. 위쪽에서 부는 바람에는 바다와 대륙의 냄새가 섞여있다.
낮은 언덕 정상에 이르자, 보스포루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서 바라본 느낌과 확연히 다른 뷰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햇살은 물결 위에 부서지고, 점심 무렵의 바다는 유난히 깊은 청록빛이다. 바람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는 바다의 기운이 섞여 있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베식타쉬 부두 주변으로 페리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하얀 선체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그 너머로 흑해 쪽에서 들어오는 대형 화물선들이 느린 속도로 항로를 따라 움직인다. 거대한 배들이 조용히 미끄러지듯 지나갈 때마다, 해협 전체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듯하다. 왼편의 유럽 해안선은 도로와 건물이 바다의 곡선을 따라 굽이친다. 언덕 위에는 흰색과 연회색 건물들이 층층이 올라붙어 있다. 서울처럼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있지 않다. 대신 높낮이가 제각각인 주택들과 오래된 저택들이 마치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처럼 붙어 있다. 그 사이로는 작은 발코니와 넝쿨이 있는 테라스, 세탁물과 커튼이 오후의 바람을 맞고 나부꼈다. 멀리 건너편, 아시아 쪽 해안선은 더 낮고 부드럽다. 붉은 기와와 베이지색 외벽, 목재 발코니와 파스텔 톤의 창틀이 햇빛을 받아 따뜻한 색감으로 반짝인다.
바람이 불어 J의 머릿결과 옷을 보스포루스 하구 쪽으로 끌어당긴다. 순간 '신화에 나오는 이오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본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치마는 제우스의 시선을 매달고 펄럭였겠지. 바람은 옅은 짠내와 나무 냄새, 그리고 바다의 미세한 미열을 함께 실어왔다. 멀리서 페리의 뱃고동이 울리고, 그 소리가 해협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이 도시는 돌로 쌓인 것이 아니라, 바람으로 이어진 도시다.
우리는 베식타쉬 선착장으로 내려와 페리에 오른다. 배가 부두를 떠나자, 이스탄불의 풍경이 천천히 뒤로 밀려난다. 왼편으로는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얀 대리석 벽이 해를 받아 반짝이고, 바로크 양식의 조각들이 수면에 비치며 흔들린다. 그 뒤편으로 현대식 빌딩들이 층층이 솟아올라 과거의 제국과 현재의 경제가 한 프레임 안에서 겹쳐진다. 이 도시에서는 언제나 시간이 두 겹으로 보인다.
페리는 해협 중앙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얼굴에 닿자, 염분의 냄새가 미세하게 코로 파고든다. 여객선과 어선들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갈 때마다, 그 흔들림이 너울을 타고 전해온다.
이곳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고대 신화에서 제우스가 사랑한 여인 이오가 암소로 변해 건넜다는 길이기도 하고,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이 태어난 자리이기도 하다. 이 짧은 해협 위로 수천 년의 시간과 문명의 무게가 겹쳐 흐른다. 비잔티움의 성벽, 오스만의 돔, 현대의 다리가 한 시선 안에 포개진다. 이 순간 시간은 거슬러 오르며 섞이고 회오리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드문 공간, 지정학적으로 가장 역사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가운데 흑해를 지나 지중해로 달려가는 바람을 맞고 내가 서 있다. 빛나는 여행의 순간이다.
멀리 갈라타탑이 보인다. 유럽 쪽 언덕 위에서 묵직하게 솟아, 마치 시간을 지키는 망루처럼 서 있다. 그 아래로는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와 얇은 골목길이 바다로 이어진다. 벽의 균열조차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반대편 카디쾨이의 풍경은 여유롭다. 언덕이 완만하게 내려가며, 집들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붉은 기와, 크림색 벽, 발코니의 초록 화분들. 형태와 높이, 색이 제각각이지만, 그 불균형 속에 오히려 조화가 있다. 배는 점점 카디쾨이 선착장에 가까워진다. 바닷새들이 낮게 날고, 선착장 터미널 위로 터키의 큰 깃발이 펄럭인다. 해협 건너의 유럽이 점점 작아질수록, 나는 또 다른 시간대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든다.
페리가 카디쾨이 부두에 닿았을 때, 도시의 공기가 달라졌다. 베식타쉬 선장착 주변의 차분한 분위기보다 한결 가볍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보인다. 부두 앞거리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리의 벽엔 낙서와 그라피티가 많이 보였고, 오래된 건물 아래에는 카페와 상점이 늘어서 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는 오후, 도시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하다.
번화가를 따라 걷다 보니 식당마다 “전통 음식”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인터넷 평점이 높았던 한 해산물 식당을 골라 찾아간다. 입구에서 "안녕하세요!" 인사가 들린다. 이곳 상인들은 거의 90% 확률로 한국인을 맞춘다. 이들은 어떻게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구분하는 걸까?
메뉴의 첫 줄엔 ‘Midye Dolma’, 홍합밥이 있다. 밥과 향신료를 홍합 껍데기에 채워 넣은, 이스탄불 거리의 명물이다. 기대를 안고 한 입에 넣는다. 음... 바다 냄새와 향신료의 조합이 기대만큼 깊지 못하다. 껍질 속 홍합은 작고 향은 진하지 않다. 양념한 밥은 물기가 많아 질척거리는 느낌이고, 홍합과 뭉쳐지는 조화로운 맛이 부족하다.
몇 개를 더 집어먹고 나서 나는 잠시 생각한다. 인터넷의 수많은 후기들 - '별 다섯 개', '인생 맛집'과 같은 표현은 어쩌면 ‘공유된 열광’의 신화일지도 모른다. 주인들이 손님에게 평점을 구걸하고, 마케팅 업체가 댓글을 동원해 만들어낸 별점이 맛보다 먼저 평가되는 시대. 그 사이에서 ‘진짜 맛’은 점점 조용히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근처의 유명하다는 코코레치(Kokorec) 식당으로 향한다. 양의 내장을 꼬치에 감아 숯불에 구운 음식이다. 버거 형태로 나온 코코레치를 한 입 베어 문다. 기름기와 향이 강하고, 식감은 조금 질기다. 순수한 구이 형태의 음식을 하나 더 주문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맛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입 베어 물어 씹었을 때 나와야 하는 기본적인 감탄은 배꼽 아래서 꿈쩍하지 않는다. 터키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식당을 잘못 고른 것일까. 거리를 걸으며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식사하고, 카페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맛’이란 결국 문화의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른 언어의 음식을 이해하려 했지만, 그 뜻을 다 읽지 못한 셈이다.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보편의 음식이 아니라 터키의 개성을 나타낸 음식이다. 차이를 느꼈다면, 그 역시 의미 있는 미식 여행이다.
카디쾨이의 남쪽 끝, 모다 해변공원(Moda Sahil Parkı)은 도시의 소음이 잦아드는 곳이다.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에는 여유가 흐른다. 점심의 열기가 가라앉고, 해협을 건너온 바람이 잔잔히 얼굴을 스친다.
우리는 공원을 출발해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멀리 보스포루스의 푸른 수면이 햇살에 반짝이고, 파도는 방파제를 부드럽게 두드린다. 길 중간쯤, 작은 플리마켓이 열려 있다. 테이블 위에는 인형, 팔찌, 자수 천 가방 같은 수공예품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손끝의 정성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그들은 장사꾼이라기보다 자신이 만든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사람들 같다. 현금이 없어 마음에 드는 팔찌를 사지 못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환한 웃음을 나눠 준다.
다시 바다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잔디 공원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어떤 청년은 벤치에서 책을 읽고, 어떤 이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박자를 맞췄다. 방파제에는 연인들이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오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고, 웃음소리가 바다 위로 흩어진다. 그 장면은 도시의 광장이나 공원보다 평화롭고 자연스럽다. 우리는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바라본다. 사람이 풍경이 되는 장면들이 더 빛난다. 바다가 주는 힘일까?
가능하다면, 아침 조깅을 이곳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분명 특별할 것이다. 하지만 숙소에서 이곳까지는 너무 멀어, 생각은 금세 바람에 쓸려 날아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멀리 유럽 쪽의 건물들이 빛에 잠기고, 페리 한 척이 천천히 항로를 따라 움직인다. 카디쾨이의 오후는 그렇게, 조용하고 따뜻하게 흘러가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안의 물결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마음은 잔잔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스포루스를 따라 오래 걷기만 하면 괜찮아진다.”
오르한 파묵이 했던 말이다. 그는 터키 최초로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외로워서,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 쓴다.
...
나는 터키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터키에 대해 터키어로 글을 쓴다는 것도.”
그는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작가다. 현재 70대 초반에 이른 그는 이곳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의 섬 Buyukada에 거주하고 있고, 종종 그가 성장했던 이스탄불의 니샨타쉬(Nişantaşı) 지역을 방문하며 아직도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강행군이란 이런 걸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자 우리의 발걸음은 쉴 줄 모른다. 낯선 도시를 걷는 피로보다, 미지의 장소를 향한 탐험심이 더 크다. 카디쾨이 선착장에서 페리를 기다리며 우리는 지도를 한참 들여다봤다. 원래 계획은 출발지인 베식타쉬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순간의 충동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번에는 구시가지 에미뇌뉘(Eminonu)로 가보기로 한다.
페리가 부두를 떠나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단숨에 졸음을 날려 보낸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물결은 부드럽게 배의 선체를 두드린다. 바다와 강의 중간쯤 되는 이 물길, 보스포루스 해협의 공기는 도시의 향기와는 전혀 다르다. 소금기와 철 냄새, 그리고 어딘가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섞여 있다. 아직 이스탄불의 보물들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이 도시의 다른 어떤 명소가 이 순간의 감각을 능가할 수 있을까? 이스탄불 여행의 정수는 바로 이 보스포루스 해협에 있다!
배가 천천히 나아가자, 구시가지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난다. 왼편으로는 톱카프 궁전의 붉은 지붕이 나무 사이로 보이고, 그 위로 뾰족한 아야 소피아의 돔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Blue Mosque)의 첨탑이 겹쳐 보인다. 그 두 건물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은 마치 두 문명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 이곳이 과거 제국의 심장, 수많은 전쟁과 신앙의 물결이 교차하던 자리임을 굳이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나는 갑판에 서서 눈을 감는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물결 소리가 귓속으로 깊게 들어온다. 그 순간, 도시의 소음도, 피로도 모두 사라진다. 남은 것은 오직 이 바다의 호흡뿐. 페리가 나아가는 방향,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스탄불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에미뇌뉘 선착장 앞 도로를 건너자, 바로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aar)가 나타난다. 아, 시장이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 사람의 냄새, 물건의 냄새, 그리고 삶의 냄새가 한데 섞인 곳. 재미와 활기가 공존하는, 도시의 심장이 뛰는 장소.
바자르는 입구부터 이미 향신료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강황, 육두구, 시나몬, 사프란이 뒤섞여 공기마저 알록달록 해지는 기분이다. 좌우로는 유제품 가게와 건조과일 상점, 옷 가게와 기념품점이 빽빽하게 이어진다. 붉은 피망 분말과 노란 카레 가루, 초록빛 허브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다른 나라의 언어가 흘러나온다. 이곳은 단지 시장이 아니라 세계의 축소판이다. 골목을 한참 따라 들어가자, 진한 커피 향이 퍼진다. 작은 로스터리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현지 사람들이 줄을 선 걸 보니, 그 집은 분명 '진짜'다. 커피 냄새에 이끌려 조금 더 걷자, 이번엔 현지 반찬과 견과류, 말린 과일들이 진열된 상점들이 나온다. 이것은 맛이라기보다 색의 향연이다. 붉은 석류, 금빛 살구, 짙은 초콜릿 빛 호두와 피스타치오... 시장 한복판이 하나의 거대한 팔레트 같다.
그때 골목 모퉁이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음식이 보인다. 철판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낯선 디저트. 처음엔 한국의 빈대떡 같았지만,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내오는 걸 보고 ‘이건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과 식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주문하고 자리를 잡자, 달콤한 향이 퍼지며 금빛 디저트가 은접시에 담겨 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커플이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알려준다. “쾨네페(Kunefe),” 그들이 알려준 음식 이름이다. 이란에서 왔다는 그들은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한단다. 젊고 싱싱한 웃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짧은 인사와 웃음이 오간 뒤, 나는 포크를 들어 쾨레페를 한 입 베어 문다. 바삭한 실면 위로 녹아드는 치즈, 그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섞이며 퍼지는 달콤한 열기. 디저트라기보다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위로의 맛이다. 당분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진짜' 맛을 만난 기쁨 때문인지, 기분이 한결 밝아지고, 몸에 다시 힘이 돈다.
골목은 끝없이 이어진다. 향수 가게와 티 상점, 유리 조각 장식품, 구리 주전자와 나무 그릇들. 상인들의 목소리엔 생기가 넘친다. 흥정의 손짓도, 호객의 웃음도, 그저 살아 있다는 생기로 가득하다. 나는 그 활기 속을 천천히 걷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장에서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삶의 의욕과 생의 온기구나.'
이집션 바자르를 나설 때, J의 손에는 두부를 닮은 치즈 한 덩이와 길게 찢은 모차렐라 한 봉지가 들려 있다.
이집션 바자르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구시가지의 저녁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버스 창밖으로는 낮 동안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건만, 도로는 여전히 빽빽하다. 차들은 느릿하게 앞으로 밀려가며 헤드라이트를 길게 늘어뜨린다. 이스탄불의 도로는 언제나 그렇듯, 멈추지 않는 도시의 심장처럼 쉬지 않고 뛰고 있다. 버스는 천천히 터널을 지나 탁심 광장(Taksim Meydanı) 지하 정류장에 선다. 낯설던 길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오늘 하루를 수없이 오르내린 덕분일까, J는 광장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을 망설임 없이 앞장선다. J의 발걸음에는 자신감이, 그 뒤를 따르는 내 발걸음에는 안도감이 섞여 있다. 여행은 낯선 도시를 익숙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오늘 우리는 그 과정을 한 뼘 더 걸어온 셈이다.
숙소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자, 묵직한 피로가 온몸을 덮친다. 폰을 보니 오늘 하루 3만 보를 걸었다. 숫자보다 놀라운 건 그 피로가 전혀 싫지 않다는 것이다. J와 함께 하루를 복기하며 사진을 정리한다. 화면 속의 장면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바다의 빛, 시장의 향기, 거리의 웃음이 사진마다 묻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스스로 감긴다. 긴 하루의 끝,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피곤함을 베개 삼아 잠든다.
** 이스탄불 2일차 여행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