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클리온, 카잔차키스 무덤에서

22th. 이라클리온(2)

by 조르바와 춤을


크레타는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땅이었다.
신과 싸우고, 신을 부정하며, 마침내 외부의 기적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기 구원에 도달하려 했던 한 작가의 사유가
이 섬의 바람과 바다, 성벽과 골목에 여전히 살아 있다.

1.

밤새 상처부위가 욱신거렸지만 병원을 가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행이다. J는 혼자 조깅을 나서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다. 괜찮으니 꼭 쿨레스 요새를 지나 방파제 성벽 끝 이라클리온 등대까지 달려보라고,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그 길은 한국에서부터 미리 그려 두었던 코스다. 이라클리온 만을 따라 뻗은 방파제 길은 약 2킬로미터 남짓,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달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게해를 느끼기에 더없이 적당한 길이다. 밖으로 나서는 J의 얼굴에는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비친다.


J가 조깅을 나간 사이, 나는 카잔차키스의 <내 영혼의 자서전>을 꺼낸다. 밑줄을 그었거나 모퉁이를 접어두었던 페이지들을 다시 펼친다. 읽을수록 그의 인생 이력과 문장의 밀도에 감탄하게 된다. 그가 남긴 작품을 모두 쌓으면 1미터가 넘는다는데, 고작 열댓 권의 소설과 기행문을 읽은 내가 그를 얼마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남다르다.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꿰는 해설서이자, 삶의 말년에 이르러 스스로에게 남긴 가장 정직한 고백이다.



카잔차키스의 문학은 언제나 ‘도달’이 아니라 ‘투쟁’의 기록이었다. 그는 완성이나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삶의 충동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신앙의 모순을, 〈미할리스 대장〉에서 민족의 운명 앞에 놓인 개인의 결단을, 그리고 〈오디세이아〉에서 끝없이 떠돌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인간의 여정을 그려내면서도, 그의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는가.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곧 구도의 방식이었다. 수도원의 고요가 아니라, 세계 한가운데서 고통과 욕망, 의심을 끌어안은 채 걸어가는 구도자였다. 그는 신과 싸우고, 이념과 충돌하며, 자신의 한계를 의심했다. <내 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사다리로 비유한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오르고, 흔들리고, 다시 오르며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사다리같은 존재라고.

이곳 이라클리온은 그 사유의 출발점이자 귀환지다. 크레타의 바다는 그가 평생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원점이었다.


2.

J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이라클리온 만의 풍경과 조깅 코스가 흡족한 모양이다. 휴대폰 속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며 아침 바다의 기운을 전한다. 쿨레스 요새의 묵직한 실루엣, 방파제 위를 따라 곧게 뻗은 길,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바다의 표정이 살아있다. 밤새 정박해 있던 배들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항구를 따라 늘어선 카페들은 의자를 정리하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차분하고 싱싱한 아침이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먹은 후, 카잔차키스의 묘소로 향한다. 묘소는 이라클리온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베네치아 성벽 위, 마르티넨고 바스티온(Martinengo Bastion)에 있다. 도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다. 그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출간 이후 교회와 끊임없이 갈등했고, 결국 공식적인 기독교 묘지에 묻히지 못했다. 대신 이 성벽 위, 도시와 바다가 동시에 내려다보는 곳에 잠들었다. 당시의 종교가 그를 배제한 결과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그 다운 자리였다.


묘소에 거의 다다르자 가슴이 뛴다. 베드로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아야 소피아, 그리고 최근의 파르테논 신전까지. 내노라하는 교회와 신전을 적지 않게 찾아다녔지만, 이 순간만큼 설렜던 적은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로 내게 다가와, 부처와 예수, 나아가 신이라는 개념까지 비틀어 보이며 '궁극의 자유'를 일깨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잠들어 있는 곳에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지운다는 차원을 넘어, 삶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워 준 정신적 은인을 만난다는 감정이 벅차오른다.




그의 묘소는 정갈하다. 익히 사진과 영상을 통해 봐 온 모습 그대로다. 낮은 흙무덤 위에 단순한 십자가 하나. 별다른 장식도, 과시도 없다. 주변의 성벽과 바다, 하늘이 모두 이 무덤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무덤의 형태나 방식을 그가 정하지는 않았다. 죽음의 형식을 따질 사람도 아니다. 오직 그는 문장 하나를 유언으로 남겼을 뿐이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다.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자유다.


이렇게 당당하고 명료한 자기 해방의 선언이 또 있을까. 너무 유명한 문구가 되었지만 언제 되뇌어도 묵직한 울림이 전해진다. 무덤 주위를 몇 바퀴 돌자 설렘이 가라앉고, 대신 숙연함이 자리 잡는다.




대작가의 묘소지만 무덤은 권위적이지도 않고 경계도 없다. 무덤 앞에 소박한 나무 십자가를 더듬으며, 나는 카잔차키스가 재해석한 인간 예수를 떠올린다. 《최후의 유혹》 속의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구원(자유)에 이르기 위해 겪어야 하는 끊임없는 내면의 흔들림과 고통을 상징한다. 안락한 삶,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범한 행복, 그리고 신의 아들이라는 '정해진 사명'을 내려놓고 싶다는 유혹 앞에서 그는 누구보다 나약하고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인간적인 유혹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종교적 운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고 성취한다.

카잔차키스는 이 작품에서 '구원은 외부의 기적이나 신성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하여 쟁취하는 고독한 선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는 평생의 가치로 자유를 말했지만, 그 자유는 인간의 굴레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극복하는 자유였다. <최후의 유혹>의 예수도, 이곳에 잠든 카잔차키스도 결국 같은 선택을 했다. 위로받지 않는 길, 그러나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 길을.



그의 묘소로부터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엘레니 사미우의 묘소가 있다. 그의 아내이자 동지였던 엘레니의 무덤 역시 낮고 겸손하다. 그녀가 없었다면 말년의 위대한 카잔차키스도 없었을 것이다. 엘레니는 평범한 배우자가 아니었다. 그의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을 성사시키고, 사후에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세상에 온전히 남긴 실질적인 편집자이자 관리자였다. 세상과 불화했던 작가 곁에서, 끝까지 현실을 감당한 사람. 카잔차키스의 고독한 사유가 문학으로 완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엘레니의 노동과 인내가 있었다.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긴 뒤, 그의 묘소 앞에 다시 선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잠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어제부터 이곳에서 읽으려고 계속 찾아왔던 문장을 꺼낸다. 조르바가 카잔차키스에게 전한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다.

그가 평생의 스승으로 꼽은 다섯 사람, 부처와 예수, 베르그송과 니체 가운데서도 가장 위에 둔 존재가 조르바였다. 그의 무덤 앞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카잔차키스가 가장 좋아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선생, 이리 좀 오시오.

내게 그리스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내가 죽거든 편지로 최후의 순간까지 내가 정신이 말짱한 채 그 친구를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뭔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도 전해 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생전 후회가 없는 인간, 조르바. 이 편지는 그가 자신을 알아봐 준 탄광의 사장이자 소울 메이트에게 보내는, 친밀하고도 장난기 어린 마지막 인사다. 그는 끝까지 낙천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카잔차키스의 무덤 앞에서 내가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무덤을 안고 있는 성벽 아래로 이라클리온 시내와 들판, 그리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도시와 땅, 에게해의 바다를 지독히 사랑한 작가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자리는 없을 듯하다. 바다에서 밀려온 바람이 성벽 위를 스쳐, 그의 무덤을 다독이며 지나간다.



3.

묘소에서 성벽을 따라 아래쪽 이라클리온 시내로 걸어 내려온다. 얼마 전까지 에게해 바다와 하늘, 신과 영혼의 경계를 내려다보던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다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도시 중심부는 생각보다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거리의 폭과 건물의 높이도 적당하고, 골목마다 쇼핑 가게들과 식당들이 들어차 있다. 두세 집 건너 하나 꼴로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관광지 시내의 모습이다.


이라클리온 중앙시장(Herakleion Central Market)에서 중심가로 이어지는 길


대부분의 기념품 샵에는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진공 포장된 치즈와 올리브 오일 병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크레타산 꿀과 허브, 천연 비누와 스킨케어 제품들이 선반을 채우고 있다. 파란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한 엽서와 접시, ‘Crete’라는 글자가 새겨진 자석과 컵, 미노아 문양이 들어간 소품들도 빠지지 않는다. 관광객을 의식한 물건들이지만, 전반적으로 조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 풍의 색감과 디자인이 거리의 활기를 더한다. 기념품 가게 하나를 골라 들어간다. 가게 안은 그리스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포장된 상품들이 가득하다.

“그리스를 대표해서 뭘 사 간다면, 올리브와 연관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J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크레타의 역사와 생활, 그리고 이 섬을 상징하는 첫 번째 품목은 단연 올리브다. 우리는 지중해의 태양을 담은 올리브 오일과 올리브 성분이 들어간 스킨로션, 그리고 냉장고에 붙여두고 크레타 여행을 추억할 작은 대리석 마그넷 하나를 함께 산다. 거창하지 않은 물건들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과 감각을 기억하게 해 줄 표식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성 티투스(St. Titus) 성당 인근의 올리브 나무 (수령 1,000~2,000년 추정) / 기념품 가게의 올리브 가공 식품들



관광지구 내 레스토랑 풍경


4.

기념품 샵을 나와 이라클리온 시내를 조금 더 둘러본다. 도시의 중심에는 사자 분수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베네치아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 모로시니 분수다. 네 마리의 사자가 물을 내뿜는 이 분수는 한때 이 도시의 생명줄이었다. 산에서 끌어온 물을 이곳으로 모아 시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은 그 기능을 다했지만, 사람을 불러들이는 역할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약속을 잡고, 걸음을 멈춰 쉬기도 하며 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조금 더 걷다 작은 서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쇼윈도에는 그리스어 책들이 빼곡하다. 어느 도시를 가든 서점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언어를 몰라도, 오히려 언어를 몰라서 책의 내용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표지와 디자인, 책의 구성은 자연스레 한국의 책들과 비교하게 된다.

J가 한 책 앞에서 오래 서 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얀니스 잔툴리스의 소설이라고 나온다. 표지에는 면도를 하고 있는 아빠와,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어린 딸이 담겨 있다. 어른의 세계를 처음 엿보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정하고 평화로운 장면이다. J는 이 책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번역본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한다.

한쪽 인기 서적 코너에는 카잔차키스와 카바피스,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자기 지역 출신의 문학가를 도시의 일상 속에 두고 살아가는 풍경이 부럽다.




5.

그렇게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였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 이라클리온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한 건물의 벽화가 발걸음을 잡는다. 그림 속에는 거친 바다를 삶의 무대로 삼아온 한 어부가 있다. 그는 지금 바다 한가운데 있지 않다. 그날의 조업도, 파도의 긴장도 잠시 벗어난 듯, 오후의 느슨한 시간 속에 몸을 낮추고 앉아 있다.



그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다. 생업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너무 가볍고 연약한 존재다. 그는 꽃잎을 하나씩 떼어낸다. 무언가를 점치려는 것인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오후의 무료함을 견디는 단순한 몸짓일 수도 있다. 쓸쓸함과 어촌의 서정이 동시에 서려있다.

어떤 면에서 이 장면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호퍼가 그려온 인물들처럼, 이 어부 역시 고독을 과장하지 않는다. 외롭다고 말하지도,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멈춰 있고, 기다리고 있으며,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다. 밝은 오후의 빛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고요.


이 벽화는 어부의 낭만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틈을 보여준다. 노동과 생존 사이에 잠시 열리는 공백, 그 공백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이런 우연이 좋다. 계획하지 않은 길에서, 기대하지 않은 장면으로 마주치는 감동.

벽화 덕분에 도시가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커다란 미술관으로 변한다.


6.

우리는 식사할 곳을 찾아 항구 주변을 기웃거린다. 이왕이면 에게해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마침 이라클리온 항구 옆, 바다를 마주한 해산물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야외 테이블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아마 이 근처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자리일 것이다. 바람이 조금 있었지만, 우리는 실내의 따뜻함보다 바다 풍경을 택한다.



J와 마주 앉는다. 테이블 너머로 에게해가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오늘따라 바다의 파랑이 유난히 짙다. 햇빛을 머금은 파랑이라기보다는, 바다의 깊이를 드러낸 색이다. 문득 에게해 항공의 유니폼 색깔이 떠오른다. 이 바다의 색을 가져다 입은 것이었구나. 이 바다와 빛깔이 그리스의 정체성이었구나.



음식은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큼직한 꼴뚜기를(메뉴판에는 오징어라고 적어 두었지만) 통째로 튀겨낸 요리는 바삭함 뒤에 쫄깃한 식감이 이어진다. 레몬을 살짝 짜 맥주와 함께 먹으니 바다의 짭조름한 맛이 또렷해진다. J가 주문한 도미구이는 살점이 두툼하고 부드럽다. 과하지 않은 굽기로 생선 본연의 단맛을 잘 끌어냈다. 곁들여 나온 야채샐러드도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잠시 먹는 즐거움에 몰입한다.




레스토랑의 음식들


남은 맥주를 천천히 홀짝이며, 펜스 너머 에게해 바다를 본다. 이번 여행을 우리는 ‘에게해 여행’이라 이름 붙였고, 오늘로 22일째다. 6개 도시를 거쳐 크레타섬 이라클리온 중심에 와 있다. 하니아에서 보았던 평화로운 해변의 바다, 이라클리온으로 오는 길에 스쳐 지나간 수많은 해안과 그 앞에서 출렁이던 물빛들, 그리고 다시 이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에게해. 바다는 늘 같은 이름이지만,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이 바다를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산토리니가 있고, 그 너머에는 낙소스가 있다. 그 섬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잠시 상상해 본다. 카잔차키스는 <내 영혼의 자서전>에서 에게해를 이렇게 썼다.


“여행을 하면 기다리는 참을성이 생기리라는 생각에 나는 우아한 에게해의 산토리니,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섬을 순회하는 범선에 몸을 실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부는 봄철에 에게해를 항해하는 즐거움이라고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나는 천국이 어느 면에서도 그보다 더 훌륭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죽음 이후를 말하는 것이나 천국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낸 천국은 대개 지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섞고 과장해서 만든 상상이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 속 천국은 빈약하거나 허황되다. 난 그런 억지스럽고 유치한 천국에는 가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발 디딘 땅 위에 진짜 천국을 보러 다니고 싶다. 죽음 이후는 없거나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에, 최대한 살아있는 동안 감동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경험을 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이미 여러 번 천국에 다녀왔다. 그 장면들은 일부 사진으로 남겨졌으나, 내 감동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내 안에는 대자연과 예술과 생명이 어우러진 천국이 들어 있다. 여행의 전리품으로 꾸며진 나 만의 세상이.


7.

식사를 마치고, 이라클리온 항구의 방파제로 산책을 나선다. 쿨레스 요새를 향해 곧게 뻗은 길 위로 천천히 걷는다. 성벽은 생각보다 낮고 두텁다. 바다는 그 옆에서 꾸준히 숨을 쉰다. 방파제 아래의 돌들은 크고 거칠지만, 파도는 그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방파제 길은 관광객과 현지인이 섞여 있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 난간에 기대 바다를 찍는 사람, 성벽 위를 천천히 산책하는 부부, 관광객을 구경하는 벤치의 노인까지, 모두 바다가 주는 평화를 즐기고 있다.




산책을 마친 뒤, 바다 쪽을 향해 열린 벤치에 앉는다. 에게해가 바로 앞이다. 바람이 세지 않고, 빛도 과하지 않다. 절제된 감정 표현인 듯.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크레타 해안에서 조르바와 함께 지낸 시간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온다.


“나는 행복했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볼 때에만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통 행복은 지나간 뒤에야 알아차린다. 그런데 그 순간을 살면서,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운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이 벤치에 앉아 에게해를 바라보며,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축복받은 시간인지를.


크레타는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땅이었다. 신과 싸우고, 신을 부정하며, 마침내 외부의 기적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기 구원에 도달하려 했던 한 작가의 사유가 이 섬의 바람과 바다, 성벽과 골목에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그 투쟁의 흔적을 따라 걸었고, 그 문장들을 이정표 삼아 여행했다.


비록 몸의 일부에는 상처가 남았지만, J와 함께 지나온 22일의 여정은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길 위에서 나눈 말들, 말없이 보폭을 맞춘 시간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지나온 도시들. 무엇보다 '자유'라는 경지를 몸소 보여준 인생 선배 카잔차키스와 함께했다는 점이 이 여행의 밀도를 더해주었다.




내일은 이른 아침 공항으로 향한다. 그래서인지 오늘이 여행의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괜찮다. 이라클리온에서, 크레타에서, 그리고 에게해 앞에서 나는 충분히 걸었고, 느꼈고, 즐겼다. 여행은 끝나가지만, 이 바다의 색과 문장들은 오래 남을 것이다.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