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무엇일까?

23th. '크레타'에서 '서울'로

by 조르바와 춤을


어디 공기뿐이었을까.
산과 들판, 땅과 나무, 꽃과 사람, 개와 고양이까지.
사실 모든 것이 다르다.
자연이 다르니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의 삶이 달라지니 문화도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결국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너그러움과 겸손이 조금씩 고이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1.

알람은 6시에 맞춰 두었지만, 몸은 한 시간쯤 먼저 깨어 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방 안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린다. 마음이 긴장하면, 몸은 늘 한 발 앞서 움직인다.


J도 이미 깨어 있다. 우리는 나란히 누운 채, 불을 켜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스탄불의 첫 아침, 방문했던 식당의 음식들, 카파도키아의 석양, 안탈리아의 바다, 아테네의 골목 시장, 여러 유적지들 그리고 여기, 크레타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찍혀 남은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 서로에게 건넨다.

이야기의 끝에서 J는 독백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던진다.

“지금 이라클리온 항구 앞의 에게해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여행지여서 그럴까, 크레타를 떠나는 아쉬움은 J를 대신해 아침의 이라클리온 항구를 달리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 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완벽하게 소진되지 않은 아쉬움은 마음 한켠에 다시 돌아올 이유로 숙성될 것이다.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뒤쪽으로 아침 거리를 청소하는 분이 보인다.


2.

한국까지 가는 여정은 길다. 이라클리온을 출발해 아테네, 이스탄불을 거쳐 인천에 도착한 후 KTX를 타고 가는, 약 30시간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동이 길어질수록 변수도 많아진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지연이 귀국 전체를 흔들 수 있다. 택시 타는 곳으로 앞서 걷는 J의 뒷모습에 힘이 들어가 있다.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고 하다가도 돌아갈 때가 되면 악착같은 귀소 본능이 발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라클리온 공항은 지방의 큰 버스터미널을 닮았다. 사람들은 북적이지만, 출입과 대기 시설은 오래되어 실제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인다. 대기실 창 너머로 우리가 탈 이지언 항공 비행기와, 이라클리온 앞바다가 함께 들어온다. 여행의 미련이 없지는 않다. 23일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감 정도만 잡았다고, 맛 정도만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와보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실체감과 안목을 얻어간다는 사실이다. 에게해 바다 빛깔과 파도. 4천 년 동안 크레타 사람들이 바라보았고, 무수한 사건과 이야기가 출렁이는, 카잔차키스가 평생 그리워했던 바로 그 바다를 직접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베풀었다.


“그래도 좀 아쉬워...”


J의 말이 파도 너울처럼, 나에게도 천천히 밀려온다.


이라클리온 공항과 대기실의 그리스 사람들.


3.

아테네 공항에서 세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말차 플라스틱 통을 재활용해 담아 온 볶음밥을 꺼낸다. 그리스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다. 쌀 대신 카무트밀로 지은 밥에 돼지고기, 그린빈, 양파, 김 가루, 올리브유, 데리야키 간장을 넣어 볶은 밥.

여행을 할수록 형식보다 실질, 체면보다 실리를 챙기게 된다. 누군가 나를 여행 노마드로 보든, 부랑자로 보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매너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자유와 만족을 추구한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풍경 사진을 보며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다. (볶음밥에는 말차라테를 만들기 위한 들고 다닌 꿀을 설탕대신 사용했다. 그러니 음식이 '꿀 맛'일 수밖에!) 공항의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이만큼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스탄불 행 비행기를 확인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의 행선지를 훑어보는 J


비행기는 한 시간 반 만에 에게해의 경계를 넘어 이스탄불로 건너온다. 그 사이 이스탄불의 기온은 조금 낮아진 것 같다. 탁심 광장을 조깅하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페리로 건너며, 바자르 골목을 헤매던 때가 지난주 일처럼 떠오른다. 여행의 시작이었던 도시가 이제 마지막 출발지가 된다. A 항공을 타기 위해 B15 게이트로 이동한다. 대기실에는 이미 검은 머리들이 수북하다. 말소리도, 행동도 익숙하다. 아,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이스탄불 공항에서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다.


4.

비행기는 만석이다. 온라인으로 좌석을 미리 지정하지 못해, 우리는 떨어져 앉아야 했다. 기내는 두 개의 통로로 3등분 된 구조다. 우리는 세 좌석이 연결된 줄의 가운데 좌석, 앞뒤 칸에 배치된다. 자리에 앉아 복권을 뽑는 심정으로 옆자리에 앉을 사람을 기다린다. 사실 이코노미는 좌석이 좁다. 옆사람의 체형이 크면 목적지까지 신경 쓰면서 가야 한다. 비행기만큼 빈부의 격차가 극명한 곳도 드물다.


내 행운은 여행에서 이미 다 쓴 모양이다. 내 왼쪽 좌석에 덩치 큰 외국인 50대 여성이 앉는다. 내 왼손과 무릎의 상처를 의식해 팔걸이는 미리 양보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팔짱을 낀 자세로 최대한 잠을 부른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 몸을 움직이며 내 쪽으로 영역을 넓힌다. 자면 괜찮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잠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꺼냈다 넣었다,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두껍고 큰 스카프를 상체에 두르고, 담요까지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계속 꼼지락거린다. 담요는 어느새 내 왼쪽 다리 위까지 덮여 있다. 그녀의 판도라의 상자 같은 가방에서는 끝없이 만질 물건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말이 통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괜히 말을 꺼냈다 더 큰 소란이 생길까 싶어 참는다. 자세를 바꿀수록 상처 부위가 신경 쓰인다. 몸의 왼쪽 전부가 저린 느낌이다. 다행히도, 내게는 책과 펜, 메모패드가 있다. 카잔차키스의 책을 다시 읽어가며, 한편으로 연상되는 이 여행의 인상 깊은 장면을 적어간다. 그러다 졸리면 자고, 또 깨면 읽고 적는다. 책과 펜이 있는 세상은 견딜만하다.


염불 하듯 지도의 지명을 하나씩 세기를 10시간,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5.

인천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공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지중해와는 확실히 대기의 습도가 다르다. 코 안쪽이 촉촉해진다. 반갑다. 발칸반도 남쪽의 아테네와 에게해 아래를 떠받히는 크레타의 대기는 따뜻했지만, 한편 꽤 건조하다. 그곳에서 나는 콧물과 마른기침을 달고 다녔고, 주머니에는 늘 휴지가 대기 중이었다. 머무는 동안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이 고향 땅에 오니 확연히 비교되며 드러난다.


어디 공기뿐이었을까. 산과 들판, 땅과 나무, 꽃과 사람, 개와 고양이까지. 사실 모든 것이 다르다. 자연이 다르니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의 삶이 달라지니 문화도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결국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너그러움과 겸손이 조금씩 고이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6.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다. 대문을 열자 마당에 있던 고양이가 후다닥 펜스 아래로 빠져나간다. 우리가 없는 동안, 동네 고양이가 주인 행세를 했던 모양이다. 볕이 잘 드는 터이니 낮잠 자기 좋았을 것이다. 고양이를 보자 여행이 소환되며, 이스탄불과 아테네에서 마주쳤던 고양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마당 한쪽의 배롱나무는 이미 잎을 거의 떨구었고, 감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감들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잡초가 조금 자라 있기는 하지만, 시골집엔 별 탈은 없다. 다행이다. 집은 우리 없이도 자기 시간을 잘 견뎌냈다.


집 마당의 단감나무는 잎을 거의 다 떨구고, 허공에 주황색 감만 동동 띄우고 있다.


7.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마다, J와는 재미난 질문을 주고받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이번에 J가 고른 메뉴는 의외다. 돼지고기나 두부 요리를 말할 줄 알았는데, 양꼬치란다. 왜냐고 묻자,

“튀르키예에서 케밥을 여러 번 먹어봤지만, 한국의 로스팅 기계에서 바로 구워 먹는 양꼬치나 양갈비만 못해.

우리 방식대로, 편안하게 고량주에 양꼬치 구이로 무사 귀국 축하 파티를 여는 건 어때?”

좋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마침 저녁 공기도 조금씩 차가워지는 시기다. 숯불을 마주하고 앉아 앉아 여행을 추억하기에 그만한 식탁이 없겠다 싶다.


찬바람이 불면, J와 가끔 가는 동네 양꼬치 식당

여행을 다녀오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일리가 있다. 여행의 상황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를 비교하게 한다. 덕분에 한국이라서 좋은 점들이 더 부각된다. 교통 시스템, 음식, 위생, 치안 같은 것들. 게다가 최근 K-컬처의 위상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행이 주는 가치는 한국 문화의 익숙함과 편리, 위상의 비교 우위에만 있지 않다.

여행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그만큼 포옹력과 관대함을 늘려준다. 또 여행을 잘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과정은 몰랐던 지식을 얻고,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들은 실체적 진실로 각인된다. 앞으로 무엇을 더 알아보고 배워야 할지도 분명해진다. 그렇게 삶과 앎의 지평이 조금 더 확장된다.


그래서 여행은 놀이이자 학습이다.

청춘을 유지하는 가장 용기 있는 실천,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 출발 전 신발과 여행 후 신발. 여행의 때가 잔뜩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