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에서 두 달 살아보기-면접을 보다

by 김선애

산이 잘 보이는 작은 집에서 텃밭농사 지으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가슴에 여울진 지도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해 행동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 2023년 봄, 강원도 인제의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열린 ‘흐름’이라는 문화축제에 갔다. 춤 워크숍, 음악 공연 등이 열리고 동산에서 숙식할 수 있는데 모든 음식이 비건으로 제공되는 축제였다. 여행지에 가면 낯선 환경 때문인지 잠을 잘 못 자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숙소에서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동산의 뜰을 산책했다. 뜰은 아름다운 생명으로 가득했다. 자작나무 흰 가지에 싱그러운 푸른 잎. 어린 자작나무 가는 몸이 바람에 흔들렸다. 측백나무 잎에 고요히 앉은 검은 점박이 주황색 무당벌레. 보드라운 연보라 아카시아꽃과 빗물 머금은 반투명 어린잎. 아침이슬 촉촉한 하얀 목단꽃, 주먹보다 약간 작은 봉오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는 뜰을 두 시간 넘게 천천히 걸으며 나만의 비밀의 정원이란 호사를 누렸다. 동산 뒤 산길을 걷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맑은 푸른빛 숲도 아름다웠다. 축제에서 앞으로 인제에 비건 마을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비건을 지향하는 나는 그곳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2024년 가을, 비건 마을이 될 인제 신월리 달뜨는마을에서 ‘두 달 살아보기’를 할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 지원으로 무료로 숙소를 제공받고 농사체험을 포함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관리는 인제군 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가 한다. 참가자는 월 15일 이상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참가 신청서에 자기 차가 있는지, 운전 가능한지를 쓰게 돼 있어서, 차도 운전면허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겠지만 되든 안 되든 일단 지원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얼마 뒤, 9월 말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게다가 전화 주신 담당 직원분은 시외버스를 타고 온 나 그리고 다른 면접자 한 명을 위해 인제터미널에서 신월리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인제터미널에서 신월리로 가는 마을버스가 하루에 한 번만 있어서였다. 면접자에게 차를 태워주는 면접관이라니, 서울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고마운 일이다.


인제터미널에서 차로 20분 걸려 도착한 달뜨는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처음 왔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였고 면접관분들은 모두 반겨주시며, 내가 전에 책을 냈다고 하니 인제에 살면서 책을 한 권 쓰라고 하셨다. 나는 면접을 보러 온 김에, 앞으로 머물 마을숙소에서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20241009_신월리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jpg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숙소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산이 보이고, 숙소 앞으로 논밭이 펼쳐진다. 다음 날 아침 산책길에 들깨밭을 지나 논가를 걷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고개 숙인 채 익어가는 벼를 들여다보는데 가슴이 벅찼다. 드디어, 꿈꾼 대로 산이 잘 보이는 데서 살게 되다니. 달뜨는마을에서는 찰옥수수도 많이 키운다. 숙소 앞쪽에도 옥수수밭이 있다. 키 큰 옥수숫대를 타고 올라간 보라 나팔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을 사무장님이 찰옥수수를 쪄주셔서 아침으로 먹었는데 쫀득하니 맛있었다. 사무장님은 말씀하셨다. “농촌은 풍요로워요.” 부지런히 몸을 쓴다면 먹을 걸 밭에서 넉넉히 거둬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남은 옥수수를 싸주셔서 감사히 받아들고 서울로 돌아왔다.